조카딸 성폭행 사건 계기로 '이머전시 콜' 발명
김성수 서오텔레콤 대표가 '이머전시 콜' 기술을 연구하게 된 계기다. 휴대폰에 있는 비상버튼을 누르면 미리 입력된 구조 연락처로 연결되게끔 하는 기술이다. 지금은 이와 비슷한 기술이 꽤 익숙한데, 김 대표가 최초 발명자다.
김 대표가 '이머전시 콜' 기술을 발명한 것은 지난 2001년이다. 2년에 걸친 연구의 결과다. 다음 숙제는 이런 기술이 널리 쓰이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조카딸의 비극이 재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 그러자면 통신사와 제휴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래서 찾은 곳이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이었다. LG 측 실무자를 만났다. 반응이 괜찮았다. LG 측은 김 대표에게 관련 기술자료 전체를 달라고 했다. LG와 제휴하는 데 몸이 달았던 김 대표는 아무런 의심 없이 자료를 넘겨줬다.
그런데 자료를 넘기고 나니, LG 측 반응이 달라졌다. 처음 상담할 때는 '참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이라더니, '상용화하기엔 너무 앞선 기술'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김 대표는 마음이 초조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국 재벌, '특허괴물' 욕할 자격 있나)
LG, 기술 자료 받은 뒤에는 '시치미'
▲ 김성수 서오텔레콤 대표. |
그래서 다시 LG 측 실무자를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놀랐다. LG 측은 '알라딘 폰'에 쓰인 기술이 자기네 것이라고 했다. 서오텔레콤이 건넨 자료를 베껴다 쓴 게 아니냐는 항변에는 그저 시치미를 뗄 뿐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2년 간 고생해서 개발한 기술을 빼앗겼구나.'
대법원, 중소기업의 손을 들어주다
일단 김 대표는 LG 측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와 함께 특허 등록 무효 소송이 시작됐다. 김 대표가 보기에 LG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법정 분쟁이 시작되자, LG 측은 알라딘 폰 판매를 중단했다. 이에 대해 LG유플러스(옛 LG텔레콤) 관계자는 알라딘 폰 판매를 중단한 것은 서비스의 인기가 떨어졌기 때문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주장과 달리 법정 분쟁 때문은 아니라는 게다.
결과부터 얘기하면, 김 대표는 이 소송에서 이겼다. 2007년 8월, 대법원은 서오텔레콤의 특허가 모두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서오텔레콤은 LG에게 12개 특허기술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은 험난했다. 1, 2심 법원은 LG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다 최종심에서 뒤집힌 것이다. 변호사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더 큰 비용은 시간이었다. 소송 준비를 하느라 다른 일을 하기 힘들었고, 대표가 세세한 업무까지 챙기기 마련인 중소기업의 특징을 고려하면, 이렇게 생긴 기회비용이 너무 컸다. 실제로 서오텔레콤은 보유하고 있던 사옥을 팔아야 했다.
중소기업 특허 빼앗는 매뉴얼 놓고 세미나하는 대기업
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 대표가 배운 것도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특허 분쟁 대응 전략 세미나' 자료를 입수했다. LG그룹에서 부장급 직원들이 참가한 세미나다. 자료의 내용은 적나라했다.
"중소기업 또는 개인발명가들이 많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고 찾아온다. 이때, 그 기술이 좋다는 내색을 하지 말라.
중소기업과 특허 분쟁이 생기면 즉시 특허권리무효 심판 청구를 해놓고 시간 끌기 작전으로 몰고 가라. 그러면 대다수 중소기업은 도중에 포기하거나 헐값에 기술을 넘긴다.
특허 분쟁 때는 특허 청구 범위를 꼼꼼히 살펴보라. 그럼 허점이 보인다. 세상에 허점 업는 특허는 없다. 그 허점을 노려라.
시간을 끌면서 의견서를 많이 제출하도록 하는 것도 작전이다. 제출된 의견서에서도 허점이 보일 것이다.
우리 회사 특허가 쑥스러울 정도로 미약해도, 상대방 특허를 잘 분석하라. 미리 준비하면 오히려 상대방을 반박할 수 있다.
특허분쟁을 하는 기업들의 특허를 못 쓰게 만들어라."
"'중소기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 없이 어떻게 힘든 사업 하나"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걸 보고, 김 대표는 자신이 얼마나 순진하게 사업을 해 왔는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동시에 결심도 굳어졌다. 그는 '중소기업도 기술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신념으로 삼아 왔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꽤 성공했다. 20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일궈낸 기업에 대해 그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대기업이 기술을 뺏는 관행을 내버려둔다면, 그의 자부심에는 금이 간다. 중소기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다면, 무슨 힘으로 고생스런 사업을 한다는 말인가. 김 대표는 LG와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 검찰은 김 대표가 LG를 고소한 데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었다. 대법원이 서오텔레콤의 손을 들어준 뒤, 김 대표는 헌법재판소에 불기소처분취소 헌법소원을 냈다. 재판관 전원은 불기소처분취소를 결정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특허법상의 권리범위 확인 심판의 내용과 효력을 잘못 해석해서 적용한 결과라는 게 헌재 재판관들의 입장이었다.
날짜가 틀렸다
이로써 김 대표는 LG와 다시 싸울 수 있게 됐다.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형사고소도 다시 했다. 민사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문제는 형사고소에서 터졌다. 서오텔레콤이 LG를 다시 서울 중앙지검에 고소한 게 2008년 7월 21일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의 주소지인 서부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됐고, 관할 경찰서인 마포경찰서에서 조사가 이뤄졌다. 경찰은 LG측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봤다. 대법원 판결이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런데 담당 검사의 결정이 이상했다. 검사는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라'고 했다. '공소권 없음'이라는 의견이었다. 검사가 문제 삼은 것은 날짜였다. 검사는 "특허법 위반은 친고죄이므로, 범인을 안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고소를 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고소한 날짜가 6개월이 지난 시점이라는 게다.
김 대표는 '그럴 리가 없는데' 싶었다. 그리고 검사 측 자료를 읽어보니, 곳곳에서 이상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먼저 고소인인 김 대표 측이 휴대폰 서비스 변경을 한 날짜가 이상했다. 대법원 판결로 원상 복구된 특허를 휴대폰 서비스에 반영한 날짜다. 이 날짜는, 특허 침해 사실을 파악한 기준 시점이 된다.
'과연 실수였을까'…재기수사 명령, 그러나 변한 건 없었다
검사 측 서류에는 이 날짜가 2008년 1월 7일이라고 돼 있었다. 이렇게 되면, 그로부터 6개월 뒤인 2008년 7월 7일까지 고소를 해야 한다. 하지만 김 대표가 고소한 시점은 그 뒤다. 이게 검사 측 논리였다.
하지만 김 대표가 휴대폰 서비스 변경을 신청한 날짜는 2008년 1월 27일이었다. 실제로 변경이 된 것은 그보다 훨씬 뒤였다. 그렇다면, 고소 시점이 지났다는 검사 측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2008년 1월 27일'과 '2008년 1월 7일'의 차이. 검사가 실수한 걸까.
이상한 대목은 또 있었다. 검사는 고소 날짜가 '2008년 9월 12일'이라고 적었다. 이 역시 오류다. 이 날짜는 사건이 서울 서부지검에 넘겨진 날짜다.
김 대표는 분통이 터졌다. 그래서 서울고등검찰의 문을 두드렸다. 고검은 사건 담당검사가 날짜를 잘못 적은 사실을 인정했다. 그래서 재기수사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2009년 1월 8일, 서부지검이 재기수사 요청을 접수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담당검사는 지금 진행 중인 손해 배상 소송의 결과를 보겠다며, 수사를 보류했다. 검찰이 대기업의 편을 든다는 김 대표의 평소 생각이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 특허 침해해도 손해 물어줄 필요 없다?
김 대표가 LG 측과 법정 분쟁을 시작한 게 2004년이다. 특허 등록 무효 소송과 형사 소송이 함께 진행됐다. 당시 검찰은 특허 등록 무효 소송 1심 재판에서 LG가 이겼다는 점을 근거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특허 등록 무효 소송 최종심에서 LG가 진 뒤에는 검찰이 기소하는 게 옳지 않은가. 이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검찰이 법원 판결을 대기업에 유리한 방식으로 인용한다고 본다.
결국 관건은 지금 진행 중인 손해배상 소송이다. 하지만 1심과 2심에선 김 대표가 졌다.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법원은 LG가 손해배상을 할 책임은 없다고 봤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재기 수사 명령을 각하했다. 1, 2심 법원과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권리를 침해해도 손해를 물어주지 않아도, 처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게 된다. 김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대법원 재판에 기대를 걸고 있다. 특허 등록 무효 소송 당시에도 1, 2심 법원의 판결이 최종심에서 뒤집어진 사례가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또 최근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한 사례에 대해 징벌적 성격의 보상을 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된 점 역시 고무적이다.
날짜 잘못 적은 검사의 처벌 요구한 이유
손해배상 소송이 최종심에서 어떤 결론이 나건, LG가 형사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올해 4월 국가권익위원회에 탄원서를 냈다. 앞서 고소 시점을 잘못 기재해 '공소권 없음'이라고 판단한 검사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김 대표의 생각은 단호했다. 공권력이 똑바로 서지 않으면, 시장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된다는 게다. 이렇게 되면, 권력층에 '빽'이 없는 사람은 기업을 경영할 꿈이 사라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주문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김 대표가 전하고 싶은 생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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