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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노동자를 배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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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노동자를 배신했다"

[인터뷰] 제프 보그트 AFL-CIO 국제국장

'세계 각국과의 동시다발적 FTA 체결'이 국가전략이 된 지 꽤 지났다. 'FTA 허브' 국가가 되겠다는 구호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렇다면, 우리는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나. 그건 불분명하다.

최근 논란이 된 협정문 번역 오류 사건에서 드러났듯, FTA 체결을 위한 행정 인프라 자체가 열악하기 짝이 없는 탓이다. 번역조차 제대로 못하는 협정문을 정부가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리 없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우리보다 먼저 FTA를 추진했던 나라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거기서 생기는 일을 참고하면, 'FTA 이후의 한국'에 대해 조금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미국 노총(AFL-CIO) 제프 보그트 국제국장을 만났다. 미국 노총은 1955년 미국노동총동맹(AFL)과 산업별조합회의(CIO)가 합쳐져 만든 세계 최대의 노동단체다. 미국 민주당을 공식 지지하며, 조합원 수는 1250만 명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 정부가 추진한 FTA 가운데 대표적인 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다. 이 협정이 미국 노동자들에게 남긴 교훈은 선명했다. 제프 보그트 국장은 "FTA로 이익을 보는 것은, 협정에 서명한 두 나라 가운데 어느 하나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익을 보는 것은 두 나라의 대기업과 투자자들이다. 손해를 보는 것은 두 나라의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 그리고 소농(小農)이다.

요컨대 한·미 FTA라면,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전선이 그어지는 게 아니다. '한·미 양국의 대기업 vs 한·미 양국의 노동자 및 서민'이라는 구도가 생긴다. 이게 우리보다 먼저 FTA를 겪었던 미국 노동운동가의 설명이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한·미 FTA 문제점과 대응계획' 토론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 제프 보그트 국장을 만났다. 다음은 토론회가 끝난 뒤 제프 보그트 국장과 나눈 일문일답.

"한·미 FTA, NAFTA 악몽 떠올린다"

- 한국에서 한·미 FTA가 쟁점이 됐을 때, NAFTA의 경험이 언론에 자주 소개됐다. 그런데 NAFTA의 한 당사자인 멕시코의 경험은 잘 알려져 있지만, 다른 당사자인 미국의 경험은 덜 알려져 있다. 미국인들이 경험한 대표적인 자유무역협정인 NAFTA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

▲ 제프 보그트 미국 노총 국제국장. ⓒ연합뉴스
"1992년 10월,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세 나라가 NAFTA를 체결했다. 그 이후, 미국에서 수십만 또는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정확한 수치는 알기 힘들다. 한 통계에 따르면 68만29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다른 통계에 따르면, 사라진 일자리의 수가 이보다 훨씬 많다. 제조업 분야의 안정적이고 괜찮은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다. 전체 일자리가 줄었다는 데서 드러나듯, 새로 생긴 일자리는 숫자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훨씬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노동자 입장에선 이게 큰 문제다. 캐나다와 멕시코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우리가 검토한 바로는 한·미 FTA와 NAFTA는 여러모로 닮았다. 두 나라 모두 좋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을 경험할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공익을 위한 규제가 해제된다는 것이다. FTA 협정문에 포함돼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대표적인 장치다. 이런 장치는 공공부문을 약화시키고, 결국 노동자 및 사회적 약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한국과 미국의 노동자가 함께 한·미FTA를 반대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다. FTA는 협정에 참가하는 나라들의 대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이롭고, 이들 나라의 노동자와 소농(小農) 등 경제적 약자에게 해롭다. 이게 NAFTA가 미국·캐나다·멕시코 노동자에게 남긴 교훈이다."

"한·미 FTA 미국 내 처리, TAA가 변수"

- 지난해 말, 한·미 FTA 재협상이 진행됐다. 당시 한국 정부가 자동차 부문에서 대폭 양보했다. 이후 미국 자동차 노조가 한·미 FTA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한·미 FTA 반대를 내건 미국 노총으로선 입장이 곤란할 듯하다. 미국 내에서의 한·미 FTA 처리 전망에 대해 어떻게 보나.

"미국 전체 노동운동에서 자동차 노조는 일부일 뿐이다. 미국 노총은 지난 2006년부터 한국의 민주노총과 함께 한·미 FTA 반대 운동을 벌여왔다. 앞으로도 이런 연대는 변하지 않을 게다.

미국 노총은 한·미 FTA의 문제점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을 향해 다양한 선전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단체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NAFTA 이후 미국 노동자들이 겪은 일에 대해 좀 더 널리 알려달라는 것이다.

한·미 FTA 처리를 둘러싼 미국 정치권 상황은 좀 복잡하다. 미국 정부의 계획은 원래 8월 휴가 전까지 한·미, 미·콜롬비아, 미·파나마 등 세 개의 FTA를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16일 변화가 생겼다. 정부는 이날 "의회와 TAA 제도 연장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국, 파나마, 콜롬비아와의 FTA 비준안을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TAA(무역조정지원)란 외국 기업과의 경쟁 과정에서 실직한 노동자들에게 연방정부 차원의 재교육 및 지원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FTA 체결 이후, 노동자들이 겪을 피해에 대비하는 정책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찬성하지만, 공화당은 반대 입장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합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한·미 FTA 처리도 당장은 가능해보이지 않는다."

"대기업에 치우친 오바마, 노동자를 배신했다"

- FTA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은 과거 그가 주장했던 것들과 많이 달라 보인다. 미국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나.

"지난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 것은 노동자만이 아니었다. 기업인들도 폭넓은 지지를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한 여러 집단 가운데 대기업에 치우친 정책을 취하고 있다. 선거 당시 그가 했던 개혁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예컨대 무역 부문에선 과거 공화당 정부와 다를 바 없다. 다른 부문도 비슷하다. 한마디로 미국 노동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배신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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