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말로 정의되던 90년대 홍대 신의 인디 폭발은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많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자본과의 타협점을 모색해 갔다. '잘 팔리는' 음악이 클럽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이곳에서도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점차 뚜렷하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난해 노동절을 맞아 두리반에서 열린 '뉴타운컬처파티 51+'를 통해 두리반을 투쟁의 장소에서 음악생태계로 변모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박다함, 단편선, 밤섬해적단 등 몇몇 뮤지션들은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을 만들고, 조합비를 이용해 음반을 자체제작하기 시작했다. 홍대 신에 대한 독립(인디)의 장이 열린 것이다. 이는 90년대 홍대 신이 탄생시킨 '자생적 태동'에 음악인의 비타협성이 더해진 사건이었고, 보다 과감하게는 80년대 미국 하드코어 신의 태동과도 비교할 법했다.
▲앵클 어택 & 밤섬해적단 [더 스플리트] ⓒ인혁당 |
지난해 밤섬해적단의 조악한 데뷔앨범과 마찬가지로 노골적으로 싸구려 티가 나게 꾸민 아트워크와 위악적인 태도(밤섬해적단), 그리고 넘치는 에너지와 혼돈(앵클 어택)을 담은 이 앨범은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주류 음악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순수한 태도'를 맘껏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컨대 특정 장르로 구분하기 어려운 앵클 어택의 수록곡들은 혼란스럽게 변하는 곡 진행과 종종 발견되는 들어봤음직한 리프 사이에서, 그리고 가끔씩 절규하듯 터져 나오는 보컬과 진득하게 질주하는 연주 사이에서 요 근래 맛보지 못한 '듣는 쾌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음, 언제나 그렇듯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를 실사로 보는 듯한 느낌을 아트워크, 공연 멘트, 가사, 의상 등 모든 물리적 장치를 총동원해 관객에게 계산된 냉소와 혐오스러움, 유머로 안겨주는 밤섬해적단은 이 합작 앨범에서도 예의 파괴력과 뻔뻔함을 힘 있게 풀어내고 있다.
12곡이 담은 (어느 정도) 치기 어린 가사와 (<똥>을 제외하면) 정신없는 질주는 이 앨범도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20대가 아니라면 만들 수 없는 앨범"의 범주에 들어가도록 하는 증거물이 됐다.
완성도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앵클 어택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밤섬해적단이 보여주는 에너지와 초기 그라인드 코어에 대한 유머 넘치는 애정만큼은 이 앨범을 올해 국내에서 발매된 음반 중 단연 주목할 만한 대상으로 만들었다.
두리반의 음악인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동아리 건물의 지하를 '클럽 대공분실'로 만들려 하고 있다. 만일 이 통제되지 않는 열정들이 새로운 신의 분화에 성공한다면, 그건 앞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를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드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앵클 어택과 밤섬해적단은 아마도 그곳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는 이로 떠오를 것이다. 현재도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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