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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불안, 과연 투기꾼 농간 탓이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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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불안, 과연 투기꾼 농간 탓이기만 할까?"

['석유 시대'의 종말, 그리고 한국경제·①] "유가불안, 이번은 다르다"

#첫 번째 에피소드 :

OECD산하의 에너지 전문 국제기구인 IEA는 매년 '세계 에너지 전망(World Energy Outlook)'이란 두툼한 보고서를 발간한다. 작년 11월 발표한 700페이지가 넘는 최근호에서 IEA는 세계 원유생산이 2006년에 생산 정점을 지났으며 앞으로는 더 이상 생산이 증가하지 않아 2006년 수준을 항구적으로 밑돌 것으로 전망하였다.

#두 번째 에피소드 :


금년 2월 영국의 일간지 <가디안(Guardian)>은 위키리크스 공개자료를 바탕으로 사우디 석유회사 아람코의 전직 부사장인 사다드 알 후세이니가 사우디의 석유 매장량은 상당히 과대평가되어 있으며 추가 생산여력도 알려진 것보다 훨씬 작다고 증언한 것으로 보도하였다.

#세 번째 에피소드 :


며칠전 IMF는 <세계경제전망 2011년판(World Economic Outlook 2011 April)>을 발표하였다. 4개 장(chapter)으로 이루어진 이 보고서에서 IMF는 1개 장을 할애하여 석유부족(oil scarcity)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제기하면서 이 문제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지금 겪는 유가불안, 과거 오일쇼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금융위기의 역사를 분석한 로고프와 라인하르트의 명저로, <이번은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라는 책이 있다. 국내에도 번역서가 나와 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금융위기 전의 버블팽창기에 종종 등장하는 '이번은 다르다'라는 주장과 달리, 금융위기들은 거의 비슷한 과정을 거침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 부제목으로 제시한 '유가불안, 이번은 다르다'는 로고프 등이 사용한 반어적 의미가 아닌 직설적 의미의 표현이다. 즉 국내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은 위 에피소드들이 시사하듯이, 최근 세계 석유수급에는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반영한 유가불안이나 향후 예상되는 석유위기는 과거 우리가 경험하였던 유가상승이나 오일쇼크와는 상당히 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글은 좀 더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다르고, 또 다르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글이다.

금년초 튀니지에서 시작하여 이집트 시위사태를 거쳐 최근에 리비아 내전으로까지 확산된 중동 정정불안으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훨씬 넘어서 변동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이번 유가상승은 2000년대 초 이후 이어지고 있는 장기 유가 상승국면의 연장이라 볼 수 있다.



중동 정세, 국제 투기꾼의 농간…"유가불안의 주요 원인은 아니다"

위에 있는 그래프는 국제유가의 장기추이이다. 국제유가는 물가상승을 차감한 실질기준(굵은 선)으로도 2002년경부터 꾸준한 상승세를 지속하여 금융위기 직전에 사상 최고수준에 이르렀다가 금융위기로 일시 급락한 후 경기회복과 더불어 다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유가는 금년 2월 이집트의 시위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서고 있었다. 따라서 중동 정세 불안은 최근의 유가상승 폭을 더 가파르게 한 요인임에는 분명하지만 유가상승 추이의 주된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 국제유가가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상당히 가파른 상승세롤 보이는 현상은 초유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유가 장기상승의 원인은 무엇일까.

국내 언론에도 종종 언급된 적이 있지만, 금융위기 직전 유가가 급등하던 기간에는 투기자본의 농간과 같은 투기적 요인이 유가 급등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의 관련 연구에 의하면 투기적 요인은 유가상승 폭을 다소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정도일 뿐, 이 당시 유가상승의 근본적 원인은 어디까지나 수급 펀더멘탈에 있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즉 2000년대 초 이후 유가가 장기상승하고 있는 원인은 한마디로 말하면 국제 석유수급에 중대한 구조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현실로 다가온 '석유정점'

이 구조 변화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필자는 첫째 석유공급의 제약, 둘째 높은 수요, 셋째 생산비 상승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본다(세 요인을 언급한 순서는 필자가 생각하는 중요도의 순서를 반영한 것이다).

먼저 공급 제약부터 살펴보자. 석유가 상업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850년대부터이지만, 인류의 중심적인 에너지원으로 부상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다. 특히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석유의 가치가 인식되면서 각국은 석유개발에 힘을 쏟아 석유생산은 그동안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왔다. 하지만 석유는 재생불가능한 자원이므로 생산증가세가 무한정 이어질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언젠가는 생산증가세가 멈추고 자원의 고갈을 반영하여 감소세로 돌아서게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과연 언제 석유생산이 증가세를 멈출 것인가이다. 석유는 현재 인류의 중심 에너지원이므로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중요성을 반영하여 석유생산이 증가세를 멈추는 시점, 즉 석유정점(peak oil)을 둘러싸고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석유정점을 둘러싼 이슈는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석유정점의 시점, 즉 정점이 언제쯤 도래할 것인가 이고, 다른 하나는 석유정점 이후에 석유생산이 어떤 추이를 보일 것인가 이다.

그들의 입장 전환…"석유정점론자가 옳다"

흔히 석유정점론자로 불리는 일부 전문가들(주로 지질학자들이 많다)은 석유정점이 임박하였으며 정점 이후에 석유생산은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를 보일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석유정점 비판론자들(주로 석유업계 인사들이나 경제학자들이 많다)은 석유정점이 아직도 수십년 이후의 일이고 정점이 반드시 자원 고갈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가격 상승이나 대체자원의 개발 등에 따른 수요측 요인 중심의 수요정점의 형태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를 들어 정점 이후에도 생산이 급감하지 않고 상당기간 고원 형태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동안 국제에너지 기구(IEA)와 같은 제도권의 공식기관들은 대체로 후자의 관점에 가까워 석유정점론을 대체로 무시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수년전부터 이들 기관도 석유정점을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작년말 IEA가 발표한 세계에너지 전망에서는 재래식 원유(conventional crude oil)의 생산정점이 이미 2006년에 경과하였다는 추정을 제시하였다.

즉 재래식 원유에 관한한 석유정점이 임박한 정도가 아니라 이미 지나갔으며, 따라서 향후에는 원유생산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항구적으로 2006년 수준을 하회할 것이라 전망한 것이다.

석유정점 이후에도 원유생산량 늘어난 이유: 재래식 원유와 비재래식 원유

다만 IEA는 정점 이후에도 원유생산은 급감하지 않고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비재래식 석유의 생산이 증가하여 전체 석유(재래식 및 비재래식의 합계) 생산은 2035년까지 완만한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았다(아래 'IEA의 세계 석유생산 전망' 그래프 참조) (재래식 원유는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석유이고, 비재래식 석유는 오일샌드에서 추출하는 석유 등을 가리킨다).
▲ 자료 : IEA(2010), World Energy Outlook

하지만 재래식 원유는 현재 전체 석유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상대적으로 질이 높기 때문에 재래식 원유만의 생산정점이라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일부에서는 재래식 원유의 생산정점을 인정하면서도 전체 석유생산의 증가 지속을 내다본 IEA의 전망이 여전히 너무 낙관적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일례로 IEA의 전망에서도 현재 생산이 진행중인 기존유전의 원유생산은 자원고갈로 2035년까지 약 80%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원유생산이 큰 감소없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생산이 시작되지 않은 유전에서 현재 원유생산량의 약 80%에 해당하는 추가생산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가정이 필요하다.

비판론자들은 이같은 가정이 너무 낙관적이라 보고 있고, IEA 스스로도 이 부분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다. 또 2000년 이후 IEA의 전망치와 실제 실적치를 비교해보면 IEA가 매년 전망을 하향조정하여 왔음에도 실제 실적치는 계속 전망치보다 더 빨리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 IEA의 전망에 낙관적 편향이 존재한다는 일부의 비판이 근거가 없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더욱 비관적인 전망들…"유전이 마르고 있다"

실제로 최근 들어 더욱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석유정점 관련 연구들은 IEA의 전망보다 훨씬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연구들은, 생산정점을 이미 경과한 유전들이 많아지면서 이들 유전의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보다 정밀한 방법으로 석유정점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예컨대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로벨리우스는 전세계 500여개의 대형유전의 자료를 세밀히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비재래식 석유를 포함한 전체 석유의 정점이 2008~18년 사이에 도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영국의 에너지연구센터(UKERC)는 IEA와 동일한 매장량 추정치 자료를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 역시 전체석유의 정점이 2009~31년 사이에 도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요컨대 IEA를 포함한 이들 기관의 전망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석유정점의 위협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원유 생산증가가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유가 상승에도 석유 생산은 침체, 무엇을 뜻하나

그렇다면 이들 기관이 세계 석유공급 상황을 이처럼 심각하게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여기서는 가장 간단하고도 알기 쉬운 것으로 세계 석유생산추이를 언급하고자 한다.



위에 있는 그래프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자료를 토대로 한 세계 석유생산추이이다. 그래프에서 보듯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석유생산은 정체상태이다. 가격이 상승하면 공급이 증가한다는 것은 경제의 기본원리이다. 그런데 유가가 사상최고 수준으로 급등세를 보인 기간에 석유생산이 정체상태였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한 현상이다.

물론 석유는 개발투자가 생산증가로 실현되기까지 긴 시차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생산정체가 투자부족에 따른 일시적 생산부진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반적인 증거는 그보다는 항구적 성격을 갖는 생산능력의 한계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非OPEC 산유국, 뚜렷한 생산 감소 추세

그 이유로는 먼저 이 시기를 전후하여 주요 산유국이 생산정점을 경험하면서 생산감소세로 전환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영국, 노르웨이 등 주요 북해유전이 2000년을 전후하여 생산정점을 거치면서 이후 빠른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또한 세계 최대의 해상유전이라는 멕시코의 칸타렐 유전도 2005년경에 정점을 경과하여 이후 빠른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이같은 현상을 반영하여 비(非)OPEC 산유국의 전체석유생산은 2000년경 이후 감소세로 전환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과거 미국 등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일단 생산정점을 경과한 국가는 유가 상승이나 채굴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생산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OPEC산유국의 경우는 아직 생산정점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생산증가세의 둔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의 석유자원 보유국이자 가장 많은 공급여력을 갖고 있다고 간주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사우디는 소위 swing producer(생산조정자)라 하여 공급여력을 바탕으로 하여 유가상승시에는 생산을 늘리고 하락시에는 생산을 줄이는 식으로 유가와 수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 왔다.

사우디는 왜?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의 생산은 늘어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사우디의 전략 변화 가능성과 사우디의 공급여력도 한계에 달했을 가능성의 두가지 추측이 존재한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 제시한 두 번째 에피소드는 공급여력 한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아직은 어느 쪽이 맞는지 단언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OPEC 산유국의 생산여력도 한계에 달했을 가능성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제기된다는 점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변화라 할 수 있다.

이상이 원유수급구조 변화중 공급제약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석유생산 증가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어서, 생산증가세가 크게 둔화되거나 나아가서는 더 이상 생산증가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 '석유 시대'의 종말, 그리고 한국경제
☞<1> "유가 불안, 과연 투기꾼 농간 탓이기만 할까?"
☞<2> "경제성 없다"던 유전, 다시 파헤치는 이유?
☞<3> "'금융위기'보다 무서운 '석유위기'가 온다"
▲ 리비아 반군들이 나토군의 오폭으로 목숨을 잃은 동료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는 장면. 중동 정세가 불안해진 지 오래 됐다. 이런 상황이 유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경제계의 관심도 뜨겁다. 그러나 중동 정세는 유가 불안의 작은 원인일 뿐, 주요 원인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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