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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수의 '오랑캐꽃']<298>

키 큰 베트남인이 얼굴이 하얘져서 왔다.

사연을 들어본 즉,
불법체류자 친구에게 외국인등록증을 빌려주었는데, 그 친구가 그 등록증으로 차를 사서 몰고 다니는 바람에 불안해 죽을 지경이란다. 더구나 며칠 전에 자기 앞으로 9만 원짜리 범칙금 고지서까지 날아왔으니 환장하지.
키다리는 울상이 되어 말했다.
"목사님, 도와주세요. 그놈 행방을 알 수 없거든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하나다.
외국인등록증을 빌려줄 때, 차를 살 걸 알고 빌려주었느냐, 모르고 빌려주었느냐?
1. 모르고 빌려주었으면 그 친구를 문서 위조, 사기, 주민등록법 위반 등으로 고소할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은 책임을 면한다.
2. 그러나 알고 빌려주었으면 차 사서 몰고 다니는 놈과 똑같은 놈, 즉 공범(共犯)이다.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내가 물었다.
"차 사는 거 알고 빌려주었어요? 모르고 빌려주었어요?"
"알고 빌려주었어요."
"알면서도 왜 빌려줘?"
"무지하게 거친 놈이라 무서웠거든요."
"아무리 무서워도 NO ! 라고 말해야지."
"맞을지도 모르는데요?"
쯧쯧. 키값도 못하고.
"차라리 맞는 게 낫지. 내 쯩을 빌려주면 안 되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러게요. 마음이 이렇게 불안할 줄 몰랐어요. 도와주세요."
나는 솔직히 말했다.
"도와줄 수 없어."

베트남 통역 요안이 무척 섭섭한 모양이다.
"왜 못 도와줘요? 불쌍한 노동자가 도와달라고 왔는데!"
"도와줄 방법이 없어요."
"도난 신고나 분실 신고를 하면 안 될까요?"
"안 되죠. 그러면 그 친구가 차를 훔친 걸로 되니까."
"그렇군요."
요안은 비로소 이해가 가는 모양이다.

나는 조근조근 설명했다.
"외국인도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해요. 일단 잘못을 저지르면 값을 치러야 합니다. 베트남 사람만 그런 게 아니에요. 한국 사람도 똑같습니다."

요안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친구를 찾아가 잘 말해서 차를 처분하는 수밖에 없죠."

요안이 키다리에게 설명했다. 그 친구를 찾아보라고.
그러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 동안에 사고 나면 어떻게 하죠?"
나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책임져야지."

이제 키다리도 알았을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면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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