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에서 또 번역 오류가 확인됐다.
앞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한·EU FTA 비준안 협정문 한국어본에서 207곳의 번역 오류를 찾아내 이를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공식 사과했었다. 그러나 외통부가 치밀한 재검독 과정을 거쳤다면서 내놓은 수정안에서 또 오류가 확인된 것이다. 외통부는 앞서도 번역 오류를 이유로 두 차례나 비준안을 철회했었다.
송기호 변호사가 지난 2월 21일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한·EU FTA 비준안 협정문 한국어본의 번역 오류를 처음 지적한 뒤, 외교통상부의 총체적 무능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기고 바로 가기)
"통상관료들이 세계 각국과 추진하는 '동시다발적 FTA'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영어번역도 제대로 못하는 통상관료들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게다. 아울러 통상교섭본부 소속 관료들의 전횡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엔 진보정당에서만 이런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젠 보수정당도 같은 목소리를 낸다.
또 'or' 번역 오류
12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이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재상정될 예정인 한·EU FTA 비준안 한국어본에 번역 오류가 있다. 외통부가 이날 보도자료에서 시인한 내용이다.
예컨대 협정문 영문본에 있는 'fair trade practice'이라는 대목이 '공정한 무역관행'으로 번역돼 있다. 그러나 문맥을 살펴보면 '공정한 거래관행'으로 번역하는 게 옳다.
더 황당한 대목도 있다. 'laser or other light'라는 문구가 '레이저는~'으로 번역됐다. '레이저 또는~'이 옳다. 아예 통째로 빠진 낱말도 있다. 'X-ray'라는 낱말이 한국어본에선 빠졌다.
외통부가 오류를 시인한 것은 이렇게 세 가지다. 그러나 한국어본을 살펴본 전문가들은 오류가 더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게 'or'의 번역이다. '또는'으로 번역해야 하는데 '그리고'로 번역한 대목이 더 있다는 게다. 포도주스에 관한 내용에서 '농축된 것 또는 주정'이라고 번역해야 하는 것을 '농축된 것과 주정'으로 번역했다. '곡물과 종자, 과실'로 번역해야 하는 것을 '종자, 과실'로 번역한 사례도 있다. '곡물'을 빠뜨린 것이다.
번역 오류 처음 지적했을 때와 같은 반응 보이는 외통부…"사소한 오류다"
외통부는 이런 번역 오류가 심각한 것은 아니라면서 국회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비준안 재상정과 의결은 예정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다. 지난 2월 21일, 송기호 변호사가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번역 오류를 처음 지적했을 때와 똑같은 반응이다. (☞송 변호사의 기고에 대한 외통부 반응 "단순 오류일 뿐…국회와 협의 중")
그러나 당시 외통부 내부에선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결국 비준안을 철회했었다. 이런 과정이 두 차례나 반복됐다. 이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이런 소식은 외국 포털 사이트에서 '엽기뉴스'로 분류됐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비준안을 철회한다면 세 번째 철회가 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초유의 일이다.
박선영 "통상교섭본부, 심각한 국회 모욕"
번역 오류가 통상교섭본부의 '무능'을 드러냈다면, 그들의 '전횡'을 드러낸 사례 역시 주목받고 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12일 보도자료를 내고 "국회가 한·EU FTA를 비준하기 전에 국내 환경기준에 미달하는 유럽차가 수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국회를 모욕하는 처사", "국민건강을 위협한 것", "용서받을 수 없는 만행" 등의 표현을 쓰면서 격렬히 비판했다.
이런 내용은 앞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발표한 것과 사실상 똑같다.(☞관련 기사: 미발효 한·EU FTA 따라 푸조 자동차 200대, 이미 국내 수입)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하는 통상교섭본부의 '전횡'에 대해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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