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그 중에서도 이우학교는 다른 어떤 곳보다 자기 발견의 계기가 많은 곳이다. 그것은 학생과 선생님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학생도, 교사도 '자기 발견'의 길을 따라서**
지리산을 종주하며, 도난 사건으로 학년 총회를 열면서, 일상 속에서 학교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농촌 봉사기행을 가며, 저 멀리 인도의 오르빌 공동체를 방문하며 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등의 생각을 한다. 즉 학교의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경험들이 자아와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언젠가 한 학생이 편지를 통해 '선생님은 자신의 혼란한 사춘기를 지켜보며 충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껴주는 어른이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사실, 아이들이 하는 고민을 나도 하고, 내가 하는 고민을 아이들도 한다. 이렇게 학생들 앞에서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생각하며 성장할 수 있어서 기쁘다. 자신의 체험 속에서 스스로 알아가지 않고, 단순한 말이나 지식으로 무언가를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어쩌면 선입견의 씨앗을 또 하나 늘리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교사가 해야 할 일을 경험으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말은, 어쩌면 그만큼 좌충우돌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발끝으로 더듬으며 길을 찾거나, 풀섶인 줄 알면서도 우리가 다니면 길이 될 것이라는 심정으로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선생님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이들과 함께 가는 길**
특히, 학습자 중심의 새로운 수업 내용을 기획하면서 학생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를 구분하는 것은 교사의 전문성일 텐데 이것이 참 어렵다. 배웠다는 기억만이 아니라,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느꼈는지 알 수 있도록 선명하게 깨어 있는 수업을 하고 싶지만 아직은 지혜와 용기가 부족하다.
그래서 학교 내에서의 교과협의회도 열심히 하고 전국 단위의 교과모임에 가급적이면 빠지지 않으려 하지만, 밀려 있는 현안들을 처리하다보면 쉽지가 않다.
이렇게 수업 준비뿐 아니라, 학생 상담과 수업 외의 학교 업무에서 두세 사람의 일을 해야 하는 선생님들은, 많은 대안학교 선생님들이 그러하듯, 개인시간과 여유가 없을 때가 많다. 생각이 건조해지기도 하고 아이들을 대하는 표정이 지쳐 있을 때도 있다. 한 학생에게 누군가 "학교 선생님께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우리 선생님들이 아프지 말고, 힘들어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부끄러움과 미안함이란….
***"이 아이들로 인해 나를 돌이켜 보다"**
자기 기쁨으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특히 사람을 대하는 일,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대하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사적인 공간이나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생활은 창조적이고 통찰력 있는 표현과 행동이 나올 가능성이 적은 생활임에 틀림없다. 즉 일상에서 깨닫는 생각들이 우리만의 표현으로 모아지고 다듬어질 사색과 소통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요즘 우리 교사들의 고민이다.
그래서 교사 동아리를 만들어 취미와 문화생활을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진단하여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별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교사의 일과 놀이와 삶도 조금씩 일치되어 가는 건 아닐까.
처음 이 학교에 지원했을 때가 생각난다. 나 역시 도시에서 자랐으며, 경쟁의식을 부추기는 학교 안에서 일종의 열등감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껴가며 자랐고 소비주의와 상업주의에 물들어 가던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그러나 이우학교에 지원할 때나 지금이나 나를 움직이는 생각은 '변화하고 싶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경우엔 내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어서 이 곳을 선택했던 것 같다. 내가 바뀌지 않은 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을 속이는 일이다.
***"'작은 실천'이 감동과 변화의 씨앗"**
그러나 여전히 작은 실천들을 하지 못하고 변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대안학교 선생님으로서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느낀다. 게다가, 학생들이 이런 선생님을 닮는 것인지, 말이 앞서며 작은 실천을 하지 못하는 면들을 볼 때면 화가 나면서도 미안하다.
얼마 전에 한 학생이 나눔터에 "화장실에서 휴지를 쓸 때 한 칸씩만 아껴 쓰자"는 이야기를 어눌한 말로 짧게 올린 글을 읽었다. 학생들이 일상에서 보여주는, 그렇게 소박하지만 큰 행동이 나를 일깨운다. 이렇게 나와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 결국 우리의 삶이 바뀌어간다는 생각이 지친 마음에 다시 씨앗을 뿌리게 하는 힘이다.
***"오늘도 묻는다. '나는 행복한가?'"**
이렇게 학교에서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확산 가능한 공교육 대안학교의 모델을 만들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자는 희망을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나 같이 아직은 부족한 교사들은 그러한 사회적 책무가 버겁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 중요함에 공감한다. 이렇게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밝은 불빛 아래서 뜨거운 마음으로 삶과 희망과 꿈과 행복, 그리고 괴로움과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칸트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은 어떤 일을 할 것, 누군가를 사랑할 것, 그리고 희망을 가질 것, 이 세 가지라고 한다. 대안학교 교사 1년 반의 경험을 말하며 나는 지금도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행복이라는 말은 너무나 말랑말랑한 말이어서 조금 부끄럽지만, 가장 중요한 말이다. 우리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가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것이 우리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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