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발표된 3.22 방안에서 정부는 3월말로 예정되어 있던 DTI(총부채상환비율) 자율적용 종료를 확정하는 대신 금융부문, 세제부문, 가격규제 부문으로 나누어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우선 금융부문에서 △고정금리·비거치식·분할상환 대출에 대해서는 DTI 비율을 최대 15%포인트까지 확대, △DTI 면제대상인 소액대출 한도도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확대, △이달 말 끝내기로 한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 대출 지원도 연말까지 연장 운영하는 대책을 담았다. 세제부문에서는 취득세율 50% 인하 대책을 담았다. △9억 원 초과 1인 1주택자나 다주택자는 현행 4%에서 2%로 인하하며, △9억 원 이하 1인 1주택자는 2%에서 1%로 인하하기로 하였다. 가격규제 부문에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분양가상한제 폐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했다.
정부가 3.22 방안을 내놓으면서 주택시장 게임의 룰이 다시 변경되자, 시장은 갖가지 반응과 함께 일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건설업계는 분양가상한제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내심 반기는 눈치고, 금융업계는 새로운 주택대출 상품을 내놓겠다고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지방정부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방 재원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취득세 세율을 인하할 경우 재원 감소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 초 주택 구입자들도 작년 12월에 종료된 취득세율 50% 인하 정책이 되살아나면서 이들만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얼핏 800조 원 규모의 가계부채 관리가 핵심처럼 보이는 이번 대책의 중점은 정부의 발표대로 "가계부채를 선제적으로 관리해 나가면서 주택거래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에 있다. 이번 발표는 가계부채를 늘리지 않으면서도 주택가격을 올려 거래를 활성화하려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정부는 그동안 주택담보대출 활성화를 통해 주택가격을 상승시켜 주택거래를 활성화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가계부채 800조 원이라는 마지노선 앞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럼 주택담보대출을 규제하면서도 주택가격을 올려 주택거래를 활성화할 수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이번 3.22 방안을 다시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우선 정부는 DTI 규제를 부활하면서도 가계대출 한도를 확대 또는 연장하는 방책을 마련하였다. 여기서 이러한 혜택을 누리는 대상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바로 주택 실수요자이다. 고정금리·비거치식·분할상환 방식으로 대출하려는 주택투기자가 있는가? DTI 규제가 면제되는 주택투기자가 있는가?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는 주택투기자가 있는가? 3.22 방안은 DTI 규제 부활을 통해 역으로 주택투기자를 보호하면서, 다른 금융 대책들을 통해 주택 실수요자만 주택투기 시장에 진입하도록 유도하는 성격이 강하다. 실수요자에게만 특별 입장권을 준 격이다.
세제부문 역시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9억 원을 초과하는 1인1주택자나 다주택자의 취득세를 50% 인하하기 때문에 주택 실수요자가 아닌 주택투기자도 혜택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무주택자 중에서 갑자기 9억 원짜리 주택을 구입할 능력이 있는 이들이 있는가? 그리고 이미 실수요자 시장으로 변해버린 주택시장에서 9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을 사려는 다주택자가 있는가? 세제부문의 혜택은 결국 9억 원 이하의 주택을 구입하는 실수요자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정부의 배려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주택 실수요자들 역시 투기적 동기를 가지고 주택을 구입한다. 대출을 허용해 주고 취득세를 감면해 준다고 해서 주택가격이 오르지도 않는데 구입에 나설 실수요자들은 많지 않다. 이들도 주택가격이 올라야 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실수요자의 이러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건설업계의 숙원이기도 한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기로 하였다. 이제야 실수요자를 주택투기 시장에 끌어들이기 위한 삼박자가 갖추어지게 되었다.
▲ ⓒ프레시안(조형·사진=손문상) |
주택 실수요자를 주택투기 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세 가지 방안에 힘을 실어주는 든든한 지원병이 하나 있다. 바로 100주째 연속으로 상승하고 있는 전월세값이다. 전월세값이 꾸준히 급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합리적인 실수요자라 하더라도 주택투기 시장에 떠밀려 들어갈 수 밖에 없게 된다. 주택시장의 마지막 수요자인 주택 실수요자를 동원하여 거래를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보며 3.22 방안이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활성화하려는 마지막 비상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주택 실수요자들이 마지막 상투를 잡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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