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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하거나, 세밀하거나, 혹은 화려하거나

[화제의 음반] 더 히치하이커, 아이언 앤드 와인, 루페 피아스코의 신보

더 히치하이커 [Insatiable Curiousity]

▲더 히치하이커 [Insatiable Curiousity] ⓒThe Hitchhiker
김환욱, 이상우, 우영진, 권민수의 4인조로 구성된 더 히치하이커(The Hitchhiker)의 데뷔 앨범 [인세이셔블 큐리어스(Insatiable Curiousity)]에는 웅장한 사운드가 거친 녹음, 섬세한 멜로디와 잘 융합돼 그려진 비장한 어둠(죽음)의 세계가 있다.

포스트 록, 고딕, 다크 앰비언트 등 다양한 하위 장르에서 가장 매력적인(팝적인) 부분만이 뽑혀 올라온 감상용 앨범이다. 지금은 2인조 그라인드 코어 밴드 밤섬해적단으로 더 유명한 폐허(장성건)의 앨범과 마찬가지로, 두꺼운 소리의 벽이 만들어내는 음압은 밴드가 만들어낸 소리를 청자가 머릿속에서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히든 트랙을 포함해 총 9개의 트랙이 수록됐으나 콘셉트 곡의 성격을 지닌 <더 자이언트(The Giant)>가 총 네 개의 파트로 나뉘어 여섯 개의 트랙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네 곡이 수록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로울링도, 파워코드도 없지만 첫 곡 <The Giant>의 강렬함은 듣는 이를 곧바로 압도한다. <창세기>의 6일 동안의 천지창조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으로 추측되는 첫 파트 <헥사메론(Hexameron)>은 역설적으로 세상의 종말을 그린 듯한 곡인데, 오히려 거칠게 녹음된 음감은 마치 세상의 외부에서 종말 후의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을 가지게끔 한다.

이처럼 어두운 기운은 웅장한 두 번째 파트 <기간테스(Gigantes)>, 주술적으로 읊조리는 보컬이 매력적인 세 번째 파트 <베리얼 어브 윌리엄 블레이크(Burial of William Blake)>에서도 이어진다.

공포를 그리고(Hexameron)-이를 더욱 고조시킨 후(Gigantes)-비탄에 빠져 조용히 절규하는(Burial of William Blake) 곡의 흐름은 절정인 <홀리스트 그레일(Holiest Grail)>에서 넘실대는 엇박으로 끝난다. 리듬감이 두드러지는 퍽퍽한 드럼 연주를 바탕으로 질주하는 이 곡은 싱글로도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앨범의 후반부 세 곡은 상대적으로 더 어쿠스틱한 질감의 연주와 앰비언트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엄숙함은 잃지 않아 콘셉트적 성격을 끝까지 이어가는데 충분한 힘을 지녔다.

사운드의 큰 줄기 사이로 귀를 잡아채는 다양한 효과음이 듣는 재미를 준다. '어두운' 거대한 덩치의 곡을 듣는데 거부감이 없는 이라면, 아담 앤드 디 앤츠(Adam And The Ants)를 감상할 때의 기분을 갖고 이 앨범을 접해도 좋으리라 여겨진다. 프로그레시브 록만큼 복잡하지 않지만 감상하기 좋고, 귀가 즐거우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덕을 갖췄다.

나도원 음악평론가는 "2000년 전후로 유럽에서 많은 수작을 배출한 다크 웨이브, 다크 앰비언트의 양식과 감흥에 도달한 음악"이라고 평했다. 국내 주류음악 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소중한 음반이다.

아이언 앤드 와인 [Kiss Each Other Clean]

▲아이언 앤드 와인 [Kiss Each Other Clean] ⓒ워너뮤직
이제 모던 포크 신에서 중요한 이름이 된 샘 빔의 일인 프로젝트 아이언 앤드 와인(Iron & Wine)이 서브 팝(Sub Pop) 시절을 뒤로 하고 발표한 메이저 데뷔 앨범이자 통산 네 번째 앨범 [키스 이치 어더 클린(Kiss Each Other Clean)]이 지각 라이선스됐다.

이미 팬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대로, 이 음반은 그가 추구해온 특유의 속삭이듯 조용한 시절을 뒤로 하고 풍성한 효과음을 꽉 채운 팝 앨범이다.

멀게는 비치 보이스(Beach Boys)와 엘튼 존(Elton John)과 70년대 소울, 훵크(funk)에서부터 가까이는 그리즐리 베어(Grizzly Bear), 서프잔 스티븐스(Sufjan Stevens), 칼렉시코(Calexico) 등을 떠올릴 수 있는 이번 앨범은 샘 빔이 인터뷰에서 표현한 대로 "부모님의 차에서 들었음직한 사운드"가 가득하다.

이런 변화는 전작 [더 쉐퍼드 독(The Shepherd's Dog)]에서 이미 감지되기 시작했다. 풀 밴드를 구성해 기존보다 더 복잡한 사운드와 세밀한 프로듀싱의 힘을 보여준 이 앨범은 샘 빔을 소박한 음악의 대변자에서 대형 음반사의 스타로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Kiss Each Other Clean]은 전작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최신의 조류를 보다 적극적으로 껴안았다. 전자음의 루프가 샘 빔의 보컬 뒤에서 떠다니고, 심지어 훵키한 곡들마저 들을 수 있다. 따라서 데뷔앨범의 내밀한 세계에 만족하던 팬과 더 풍성한 사운드에 적응해간 팬 사이의 양극단을 오가는 평가가 이번 앨범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근의 전자음악 신에서마저 영향을 받은 듯한 효과음과 겹겹이 깔리는 코러스가 돋보이는 첫 싱글 <워킹 파 프럼 홈(Walking Far From Home)>은 전작처럼 흘러넘칠 듯한 소리의 향연을 펼쳐놓지만, 보다 내밀하고 따듯한 느낌으로 충만하다.

샘 빔이 말한 "70년대 초중반 에프엠(FM) 라디오" 음악의 영향은 이 곡처럼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익숙한 정서에서 드러난다. 가볍게 들으면 좋은 팝송이며, 주의를 더 기울이면 켜켜이 층을 이루는 효과음과 연주의 두께를 즐길 수 있다.

대표적인 변화의 양상은 <래빗 윌 런(Rabbit Will Run)>이다. 훵키한 기타가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가운데, 아프리카 음악이나 레게에서 쓰일법한 다양한 효과음이 곡을 주도하고, 샘 빔의 목소리는 악기의 하나처럼 흩뿌려져 있다.

<빅 번드 핸드(Big Burned Hand)>, <유어 페이크 네임 이즈 굿 이너프 포 미(Your Fake Name Is Good Enough For Me)>는 전작에서처럼 시카고 사운드의 영향을 받은 듯 색소폰 소리가 귀를 자극하는 가운데, 잘 조율된 코러스와 훵키한 리듬 기타가 잘 어울리는 곡이다.

<피치포크>는 이 앨범을 두고 "전체적인 면에서는 [The Shepherd's Dog]만큼의 일관성을 보여주지는 못한다"면서도 "당장 당신을 잡아채지는 못하겠지만, 다시 되찾게 만들기 충분한 미스테리와 멜로디를 갖고 있다"고 호평했다. 들을수록 더 좋은 앨범이다.

루페 피아스코 [Lasers]

▲루페 피아스코 [Lasers] ⓒ워너뮤직
지난해 낙산해수욕장에서 열린 서머위크앤티 페스티벌에 참여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힙합 뮤지션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가 세 번째 정규앨범 [레이저스(Lasers)]를 발표했다.

패배자(Losers)의 스펠링을 고쳐 쓴 앨범 재킷은 갱스터 래퍼의 으스댐 대신 따듯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다양한 음악인들과 교류한 그의 이력이 확실하게 묻어나오는 앨범이다. 유로 디스코 사운드는 물론이고 린킨 파크, 림프 비즈킷 등을 떠올리게 만드는 로킹한 사운드가 상당히 강하다.

앨범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은 두 번째 싱글 <워즈 아이 네버 세드(Words I Never Said)>다. 린킨 파크의 지난해 앨범 [어 사우전드 선즈(A Thousand Suns)]를 연상시키는 신시사이저는 큰 폭으로 출렁이고, 음의 파고에 따라 루페 피아스코의 래핑이 유려하게 흐르는 곡이다. 무엇보다 곡의 절정을 만드는 후렴구는 곧바로 귀를 잡아채는데, 전반적으로 '거대한' 소리의 집합은 대형 스타디움 공연에서 더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역시 이른바 '하이브리드 록 밴드'와 대중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따왔으리라 생각되는 <스테이트 런 라디오(State Run Radio)>, <더 쇼 고즈 온(The Show Goes On)>은 비단 힙합팬이 아니라 할지라도 누구나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이처럼 매끄럽게 다듬어진 열 두 개의 트랙은 그러나 힙합 사운드가 가진 가장 매력적인 특징인 투박한 리듬감을 상당부분 깎아먹는 치명타로 작용한다. 잘못된 타이틀 트랙이라 판단되는 <The Show Goes On>에서 루페의 랩은 마치 한국 대중가요에 양념처럼 착취되곤 하는 랩을 보여주는 듯 안이하며, <아웃 오브 마이 헤드(Out Of My Head)>는 과도한 전자음의 남발로 두 명의 걸출한 목소리(루페 피아스코, 트레이 송즈)를 모두 잠식해버린다.

결과적으로 [Lasers]는 단숨에 귀를 잡아채는 매력적인 훅을 가진 트랙을 다량 보유했음에도, 대형 공연에 대한 욕망을 반영한 과잉된 사운드로 인해 청자가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실수를 범했다. 지나친 욕망이 앨범을 산만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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