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 관련 정책 당국자들이 낸 목소리와 다른 것이어서 주목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김동선 중소기업청장 등은 지난 14일과 15일 '초과이익공유제'의 취지에 공감하는 발언을 했었다. 그리고 16일, 정 위원장은 언론 기고를 통해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하지만 같은 날, 최 장관은 이를 맞받아쳤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상생 정책을 놓고, 정부 안에서도 입장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최중경 "초과이익공유제, 지극히 비생산적"
최 장관은 16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초과이익공유제는 지극히 비생산적"이라며 "더 이상 얘기 안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초과이익공유제는 애초 기업 내 사용자와 노동자간 성과배분 개념이다. 따라서 기업 사이에 적용되는 개념은 아니다. 또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도 없고 정의하기도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동차 협력기업만 1만개인데 어디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말했다.
최 장관은 "초과이익공유제는 사회구성원간에 합의가 안 됐다"라며 "동반성장 취지는 이해하지만 최근 하도급법이 중소기업에 유리하게 개정되는 등 그런 개념(동반성장)을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이런 제도를 차곡차곡 실천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위원장은 위원회에서 위원들 간에 논의된 얘기를 대표해서 발언하는 것이지 위원장이 톱다운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 위원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동선 중기청장 "대기업 경쟁력은 협력업체의 힘이 보태진 것"
그런데 최 장관의 이런 발언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동선 중소기업청장 등 관련 정책당국자들이 최근에 한 말과 묘하게 엇갈린다.
윤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서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취지는 살려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음날인 15일에는 김동선 청장이 비슷한 말을 했다. 김 청장은 이날 남산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연구원 조찬강연에서 "최근 이익공유제가 많은 논란을 빚고 있는데, 이념적인 문제를 떠나서 기본적 취지에 많은 공감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기업들이 성과 발표를 할 때마다 협력업체 운영자들은 '대기업에 비해서 중소기업의 수익이 너무 떨어진다'고 불만을 터뜨린다"며 "이익이 나면 그 혜택은 대기업과 협력업체 등 참여한 모든 주체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현재 대기업이 가진 경쟁력은 그 기업만의 경쟁력이라기보다는 성과를 내는 협력업체들의 힘이 보태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협력업체의 품질관리나 기술개발, 인력관리 등에 소홀히 한다면 대기업도 지속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사례도 소개했다. 현대중공업이 협력업체와 공동으로 조성한 R&D(연구개발)펀드다. 이 펀드를 통해 개발한 기술은 협력업체의 소유가 된다. 기술 개발을 위한 의지와 능력은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협력업체에게 유익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정운찬 "소나무 아래엔 풀이 자라지 않는다"
한편, 정운찬 위원장은 16일자 <조선일보> 기고를 통해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그는 "중소기업도 성장기회 누려야 공정사회"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소나무숲'이라는 비유를 꺼냈다. "다른 숲에는 온갖 잔풀과 크고 작은 나무들이 함께 어울려 자라지만 소나무 아래엔 풀이 자라지 않는다"라는 것. 중소기업의 성장 기회를 박탈하는 대기업을 다른 풀이나 나무를 못 자라게 하는 '소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이 글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를 좋아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소나무에 비유된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오랜 지지를 비유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이런 내용도 있다.
"경제학에서는 누구든지 자기이익을 극대화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전체의 후생(厚生)이 극대화된다고 했다. 대기업들은 '하도급 기업에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이런 경제학 원리를 원용해 '우리는 단지 이윤 극대화라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따를 뿐인데 뭐가 잘못되었느냐'는 식으로 대응한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면 경제학을 잘못 배웠다. 경제학은 결코 자기 몫만 악착같이 챙기는 게 선(善)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최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 경제학 공부를 해 왔다"면서, '초과이익공유제'를 가리켜 "들어보지도 못했다", "도대체가 경제학 책에서 배우지도 못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 등의 말을 쏟아낸 것을 겨냥한 내용으로 보인다. 경제학 교수 출신인 정 위원장이 보기엔 "(이 회장이) 경제학을 잘못 배웠다"라는 것.
삼성, 동반성장은 현 수준으로?
정작,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에 불을 지른 삼성그룹 측은 이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김순택 삼성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이날 삼성수요사장단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회장이 최근 지난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서 정부정책을 평가한 부분에 대해 진의가 그것이 아닌데 매우 당혹스러워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그동안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정책을 펼쳐 경영활동에 상당한 도움을 받아왔다"고 평가하며 "향후에도 정부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동반성장에 대해서도 이 회장의 뜻이 강하니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입장은 하루 전인 지난 15일, 삼성이 일부 일간지에 낸 전면광고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이 광고에서 삼성은 "대한민국 중소기업과 함께 세계인의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갑니다"라고 밝혔다.
이런 흐름을 보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낙제는 아니"라던 이 회장의 최근 발언을 수습하려는 삼성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현 정부가 온갖 비판과 부작용, 다수 국민의 부담을 무릅쓰면서까지 재벌을 지원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이 회장은 유죄 판결에 대한 '사면'이라는 선물까지 받았다. 이런 상태에서 이 회장이 현 정부에 매정한 평가를 한다면, 정책 당국자들이 불쾌해 하는 게 당연하다. 실제로 그랬다. 윤증현 장관은 지난 14일 "정부 정책의 지원을 받는 대기업의 총수가 낙제점 운운하는 것이 서글프다"라며 "어떤 정책이 낙제 점수를 겨우 면할 정도인지 잘못된 것을 알려주면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 현직 장관이 작심하고 반박한 것이다. 이는 결국 삼성에게도 결국 부담이다. 김순택 실장의 말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삼성이 구체적으로 '초과이익공유제'를 지지하기로 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 한 삼성 관계자는 "굳이 정부 정책이 아니더라도, 삼성은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을 오래 전부터 강조해 왔다"라며 "협력업체가 건실하게 성장해야 삼성에게도 결국 이롭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지금까지 해 왔던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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