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메이든은 1980년대 '영국 헤비메탈의 새로운 물결(NWOBHM)'을 이끌던 밴드로, 1976년 영국 런던에서 스티브 해리스(베이스)의 주도로 결성됐다. 펑크(punk) 폭발이 시작하고, 동시에 지하로 숨어들어가 인디 신을 형성하던 당시 이들은 펑크의 거칠고 빠른 리듬과 헤비 사운드를 섞어 오늘날 헤비메탈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아트 록에 염증을 느끼고 펑크 운동에는 거리감을 보인 대다수 노동자들은 아이언 메이든과 주다스 프리스트가 보여주는 단순하고도 흉폭한 소리에 열광했다.
신화와 악몽, 현대사의 비극 등에서 끌어온 소스로 만든 콘셉트 얼개와 흉측한 마스코트 에디(Eddie)의 활용 또한 이후 헤비메탈 밴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스래시 메탈과 북유럽 스피드 메탈은 물론, 데스 메탈 등 일군의 '무거운' 장르음악에서 아이언 메이든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초기 앨범의 거칠고 단순한 노동자성을 버린 후 성공의 길을 달리면서 행한 거대한 규모의 투어는 록스타의 자기과시형 홍보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헤비메탈 라이브의 명반으로 꼽히는 이들의 [라이브 에프터 데스(Live After Death)]는 1984년부터 1년여 간의 '월드 슬레이버리 투어(Wolrd Slavery Tour)' 하이라이트를 모았는데,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당시 영미권의 음악인으로는 드물게 동구권 투어를 감행한 결과물을 담아냈다.
이와 같은 시도는 소련 체제 붕괴 후 모스크바에서 열린 '몬스터즈 어브 록' 라이브에서 보여지듯, 영미권이 동구권에 가졌던 문화적 우월감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됐다. 아이언 메이든을 비롯한 헤비메탈 밴드의 무대는 특유의 마초성을 과시했고, 이를 통해 밴드는 관중으로부터 숭배받는 존재로 격상됐다. 동구권 국가의 팬이 이들에 환호하는 순간은 '우월한' 서구 문화에 대한 동구권 사람들의 동경으로 대체 가능한 부분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추구하던 헤비메탈은 냉전 종식 후 자연스럽게 생명력을 잃어갔다. 다시 록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힙합과 전자음악이 음지에서 머리를 들이밀자, 평론가들이 혐오하곤 하던 이들의 '단순한' 음악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역으로 보면 이들의 무대가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의 과장된 무대,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의 대중음악과는 거리가 있는 단순·호쾌함은 대중음악 마니아라면 반드시 찾아들어봄직한 매력을 갖고 있다.
▲재발매되는 아이언 메이든의 초기작들. 이제는 '귀여운(?)' 느낌마저 풍기는 에디는 아이언 메이든을 대표하는 마스코트가 됐다. ⓒ프레시안 |
워너뮤직은 때맞춰 이들의 초기 음반 여섯 장의 재녹음반을 라이선스했다. 여기엔 동명타이틀의 데뷔작부터 (미국 근본주의 개신교도들의 행동이 도움이 돼) 이들을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더 넘버 어브 더 비스트(The Number of the Beast)]는 물론, [Live After Death]까지 포함돼 있다.
이들 음반은 그간 라이선스 되지 않아, 마니아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획득 가능했는데, 이번 라이선스로 값이 크게 떨어졌다. 아이언 메이든의 초기 음악을 모르는 이라면 다른 앨범은 차치하고라도 [Live After Death]는 미리 들어보는 것도 좋다.
작년의 밥 딜런 내한 공연 홍보카피는 이랬다. "봐야만 하는 공연." 아이언 메이든의 이번 라이브 역시 마찬가지다. 헤비메탈 팬이라면 무조건 갈만한 공연이다. 어느덧 멤버 나이 예순대인 이들의 공연을 지금 보지 않는다면, 아마 영영 이들을 못 볼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회식자리가 몰리는 목요일 저녁에 열린다는 게 유일한 흠이다.
ⓒ워너뮤직 제공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