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협정문의 번역 오류는 지난 21일 송기호 변호사의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한·EU FTA 국회 비준동의안, 번역 오류…"원본과 달라") 송 변호사가 지적한 번역 오류 가운데 하나는 완구류와 왁스류의 원산지 판정 기준 문제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비준동의안 661면에는 완구류의 '비원산지 재료의 최대 사용 가치'가 40%로 규정돼 있으나, 원문(영문본)에는 50%로 표기됐다. 또 왁스류의 경우에도 국회 제출본에는 20%로 표기됐으나 원문은 50%로 적시됐다.
이에 대해 통상교섭본부는 "5000가지가 넘는 품목을 번역하다 보니, 생겨난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관련 기사: FTA 협정문 번역 오류, 정부도 시인, '묻지마 FTA', 불도저식 강행에 <조선>까지 비판 가세) 하지만 이런 해명은 거꾸로 정부 관료들의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준 사례가 됐다. 협정문의 얼개를 직접 살펴보면, 금세 드러나는 거짓말인 탓이다.
송 변호사가 지적한 오류는 협정문 프로토콜(의정서)인 '원산지 제품의 정의 및 행정협력의 방법에 관한 의정서'의 부속서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 열거된 품목은 263개다. (☞바로 가기)
이는 "5000가지가 넘는 품목"이라는 정부 당국자의 말과 다르다. 정부 당국자의 말은 송 변호사의 지적이 관세 양허표(☞바로 가기)의 내용을 가리킨 것으로 착각한 데서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번역 오류 사태는 정부가 추진하는 FTA가 말그대로 일방통행식이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계기였다. 이런 면모는 정부가 외부 전문가 및 언론의 지적을 대하는 태도에서만 드러난 게 아니다. 국회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났다.
송 변호사가 번역 오류를 지적한 직후, 통상교섭본부는 "오류가 있는 협정문(한글본과 영문몬을 포함해 23개 언어본)을 유럽의회에서 지난 17일 이미 승인했기에 한국만 오류를 고치면 기술적 문제가 생긴다"며 기존 비준 동의안을 철회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상교섭본부가 한글본과 영문본이 아닌 나머지 21개 언어본의 협정문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한 것은 지난 23일이었다. 지난 21일 송 변호사가 <프레시안>을 통해 번역 오류를 지적하고, 언론이 취재에 나서자 국회와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한 것이다. "유럽의회가 협정문을 이미 승인했으므로 한국만 고칠 수 없다"라는 해명이 정당성을 지니려면, 최소한 유럽의회가 승인하기 전에 한국 국회에 협정문 전체를 제출했어야 했다.
통상교섭본부의 납득하기 힘든 일처리 때문에, 한국 국회는 협정문 속 오류를 찾아내 정정을 요구할 기회를 놓쳤다는 이야기다.
일단 국회 외교통상통일위는 다음달 3일 한·EU FTA 비준 동의안을 상정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그러나 관련 업계의 이익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번역 오류가 발견된 상태여서 논란이 필연적이다.
- 한·EU FTA 국회 비준동의안 오역 사태 ☞ 한·EU FTA 국회 비준동의안, 번역 오류…"원본과 달라" ☞ 번역 오류, 정부도 시인 ☞ '묻지마 FTA', 불도저식 강행에 <조선>까지 비판 가세 ☞ 한·EU FTA협정문 번역 오류, 정부 해명도 '거짓투성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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