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이라며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사건에 대해 10일 고등법원에서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말 공장 점거 파업이 일어나는 등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커지는 계기가 될지 관심이 쏠인다.
서울고법 행정3부(원유석 부장판사)는 지난 2005년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병승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심판정취소 청구소송 파기 환송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에 이어 최 씨가 소속된 하청업체의 작업량, 작업 방법 등을 현대차 측이 직접 지휘하고 지시했기 때문에 직접 노무 지휘를 받는 파견 근로자임을 재차 인정한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이날 입장서를 내고 "다시 한 번 우리의 요구가 맞았음을 확인했다"며 "사측은 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불법 파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정규직화 이행 책임을 외면하지 말라"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성명에서 "법원 판결의 의미는 단시 소송 당사자 몇 명에게만 해당될 일이 아니라 현대차 비정규직 사내하청노동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내용"이라며 "제조업의 불법파견은 극히 일부라는 엉터리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은 노동부도 자신들의 직무유기와 사용자 편향성을 반성하라"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 사건을 다시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입장서에서 "재판부가 울산공장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했다면 충분히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대법원 상고와 함께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해 현대차 사내도급이 파견관계가 아니라는 판단을 받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 협의 성과없이 끝날 듯…지회장은 조계사 단식농성 돌입
지난해 12월 초 공장 검거 농성을 해제하고 사측과 특별 협의를 벌였던 비정규직지회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분위기가 전환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별 협의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판결이 또 한 번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검거 해제 후 진행된 협의에서 노사는 고소‧고발 및 손해배상 철회, 해고자 고용보장 및 승계,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를 위한 특별 협의체 구성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약 두 달간 진행된 논의 끝에 지난달 25일 나온 합의안은 파업 주도 간부 30명 퇴사, 고소‧고발‧손해배상 최소화, 해고자 취업알선 등 기대에 미치지 못해 사실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비정규직지회는 "사측이 지난해 말 2000여 명이 집단으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고 공정별, 직무별 대표소송을 진행하자고 했다"며 "하지만 최병승 조합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이미 대표소송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에서 다시 '대결 모드'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비정규직지회는 지난 8일 대의원대회에서 2차 파업을 조직하자는 결의문을 채택하면서 12일 울산‧아산‧전주공장 3지회가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26일부터는 본사 앞에서 4박5일 철야 집회도 벌일 예정이다. 파업 주도 혐의로 수배 중인 이상수 비정규직지회장은 9일 서울 종로 조계사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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