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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버린, 그러나 여전히 분노하는 늙은 사자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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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버린, 그러나 여전히 분노하는 늙은 사자의 절규

[화제의 음반] 펄잼 [Live on Ten Legs]

펄잼(Pearl Jam)의 두 번째 공식 라이브 앨범 [라이브 온 텐 레그스(Live on Ten Legs)]는 지난 1998년 발매됐던 첫 라이브 앨범 [라이브 온 투 레그스(Live on Two Legs)]의 후속격이다.

제프 에이먼트(베이스)의 아이디어로 이 앨범은 펄잼의 오랜 팬들을 타깃으로 뒀던 지난 라이브 앨범에 빠진 수록곡들로 채워졌다. 이는 이들의 히트작인 <제레미(Jeremy)>, <스테이트 어브 러브 앤드 트러스트(State of Love and Trust)>, <얼라이브(Alive)>, <리어뷰미러(rearviewmirror)>, <옐로 레드베터(Yellow Ledbetter)> 등이 포함됐음을 의미한다. 근작인 [라이어트 액트(Riot Act)], 셀프타이틀 앨범과 [백스페이서(Backspacer)] 등에서도 적잖은 곡이 채택됐다.

앨범의 수록곡들은 지난 2003년부터 작년까지 이들이 가졌던 투어에서 발췌한 것이다. 당연히 라이브 부틀렉(비공식적 녹음 앨범)보다 현장성이 떨어지지만 곡들의 연주 완성도는 더 높다.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질문 하나. 그렇다면, 이 음반에서 당대에 "라이브 잘 하기로 소문난 밴드"라던 이들의 전성기 모습마저 느낄 수 있을까.
▲펄잼 [Live on Ten Legs]. ⓒ유니버설뮤직

속된 말로 이들은 '이미 끝났다.' 1998년경까지의 라이브 부틀렉을 어떻게든 구해서 들어본 열혈 팬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에디 베더(보컬)는 1992년 엠티비(MTV) 뮤직비디오 어워드에서 터뜨리던 야수성을 더 이상 드러내지 못한다. 매력적인 중저음은 여전하지만, 고음부에서 온 몸의 에너지를 태우는 듯 질주해 "짐 모리슨 록 가수 교습소 생도"라 불리던 정신병적인(미국적인)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힘겹게 과거를 재현하려는 늙은 록 스타의 오늘이 비춰질 따름이다.

따라서 이 앨범은 가슴 속에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다짐하던 마지막 '로큰롤 정치 세대'의 초라한 모습을 담게 됐다. 이는 평단이 대규모 팬들을 운집시키는 대형 스타디움 공연 뮤지션을 버리고 파편화된 인디 록 뮤지션으로 비평의 자리를 대체한 오늘날에 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사라졌음을 상징한다.

<월드 와이드 수어사이드(World Wide Suicide)>, <애니멀(Animal)>, <더 픽서(The Fixer)>의 고음부는 펄잼의 오늘을 비추는 중요한 부분이다. 마치 목에서 피가 나올 듯 치솟던 에디 베더 특유의 절규가 사라지고, 연주에 맞춰 힘겹게 원곡의 느낌을 되살리려는 한 '늙은 사자'의 모습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는 가장 큰 분노의 감정을 실어야 할 이 곡들의 하이라이트 부문에서 분노 대신 즐거움을 불어넣는다. 정규앨범에서 듣는 이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던 성난 감정이 라이브 앨범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결정적 원인이다(이 앨범에서 변화를 느끼기 힘든 이라면 1994년 펄잼의 도쿄 라이브 부틀렉, 1996년 미국 투어 부틀렉 등을 들어보시라.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앨범은 스톤 고사드(기타)와 마이크 맥크레디(기타)가 만들어내는 힘 있는 리프(반복음절)에도 불구하고, 그간 펄잼의 변화 과정을 착실히 따라가지 않고 [텐(Ten)]에서 [바이탈로지(Vitalogy)]로 이어지던 이들의 이십여 년 전 전성기 시절만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적잖이 낯선 경험을 안겨주게 된다.

진작에 그랬지만, 펄잼은 이 흐름에 적응하기를 포기하고 여전히 라이브 무대를 가득 채워주는 팬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과거의 열혈 청년은 이제 수려한 중년이 되어 팬들과 자연스럽게 호흡하기를 택했다. 충실한 팬에게도 이 음반은 마치 "의자에 점잖게 앉아 로큰롤을 즐기는(플리)" 나이 든 롤링 스톤스 팬이 가질 법한 감정 이상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여전히 분노를 버리지 못한 펄잼의 음악과 변해버린 라이브는, 불행히도 같이 늙어버린 팬에게도 불편함을 안겨주게 된다.

사실 이는 나이 들어가는 밴드라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앨범을 '아름답게 늙어가는 밴드의 멋진 모습'으로만 칭송하기에 주저하게 되는 요인은 딴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시대 흐름과 유리된 이들의 정체성, 에디 베더의 기력이 떨어져가는 목소리 못지않게 듣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은 바로 매트 카메론(드럼)의 드러밍이다.
▲이제 쉰을 바라보는 에디 베더는 여전히 당대의 중요한 보컬리스트다. 그러나 펄잼이 만들어내는 노래는 여전히 다시는 재현이 불가능한 과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이 무리하지 않고 '오늘'과 호흡할 수 있는 앨범을 발매하길 희망하는 이유다. ⓒ유니버설뮤직

사운드가든(Soundgarden)의 재결합으로 두 밴드 살림을 하게 된 매트 카메론은 지난 1998년 잭 아이언스의 후임으로 펄잼의 라이브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의 등장으로 펄잼의 사운드는 본격적으로 삐걱대기 시작했다. 당대의 누구보다 뛰어난 리듬감과 애드리브를 자랑했던 매트 카메론의 드러밍은 특유의 변박과 리듬감을 자랑하던 사운드가든의 음악에 특화되어 있었지, 진득한 아메리칸 록을 구사하던 펄잼과는 맞지 않았다. 매트 카메론이 합류하기 전인 1998년 시애틀 라이브와 그의 합류 직후 녹음된 같은 해 호주 라이브는 드러머가 밴드 음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해주는 교과서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큰 질감의 차이를 가져다준다.

매트 카메론의 개성이 워낙 뚜렷했던 탓에 펄잼은 5집 [일드(Yield)] 이후 내리 삐걱댔다. [바이노럴(Binaural)]의 블루스, 아메리칸 록과 매트 카메론의 결합은 어울리지 않았고, [Riot Act]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들의 융합은 평단의 큰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Live on Ten Legs]에서도 문제는 확인된다. <포치(Porch)>, <도터(Daughter)>, <위시리스트(Wishlist)> 등 일부 트랙에서만 애드리브를 하고 나머지는 원곡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게 펄잼의 라이브 방식인데, 매트 카메론의 속도감이 넘치는 드러밍은 나머지 곡들의 절정부에서 툭툭 튀어나와 몰입을 방해한다. 온 몸을 불사르는 라이브 현장에서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관객의 소음을 제거하고 인위적으로 '현장감을 살린' 라이브 앨범에서 이는 큰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펄잼의 팬들에게는 올해도 특별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에디 베더가 곧 발매될 알이엠(R.E.M.)의 신보에 참여했고, [Ten]에 이어 전성기 시절의 정수인 [Vs]와 [Vitalogy]의 리마스터(재녹음) 확장판도 발매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의 전성기 시절 라이브 음원이 깨끗하게 녹음돼 발매되길 바란다. 팬들이 뇌리에 박아둔 펄잼의 모습은 시애틀 록이 폭발하던 1990년대 초반의 것이고, 이는 다시는 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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