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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썼던 삼성 朴대리 "나는 왜 살아서 싸우기로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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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썼던 삼성 朴대리 "나는 왜 살아서 싸우기로 했나"

[현장] "삼성의 진실 밝혀내 자살 노동자 유가족에게 힘 실어 줄 것"

"삼성전자 탕정사업장 기숙사에서 업무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자살한 사람들이 나왔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유가족은 힘들어한다. 나는 살아있는데도 진실을 알리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유가족은 오죽하겠나."

삼성전자에 노조를 만들자는 글을 사내 전산망에 올렸다가 해고된 박종태 씨가 지난 11일 삼성전자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김주현 씨에 대해 입을 열었다. 박 씨는 "이번 자살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삼성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유가족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지를 다졌다. (☞관련 기사 : "아들이 회사에서 죽었는데, 삼성은 돈 얘기만…")

박 씨는 "(사측의 괴롭힘에 못 이겨) 나도 지난해 두 차례 유서를 쓴 적이 있다"며 "유서를 썼을 때부터 이미 내 영혼은 죽었고 육체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너무 부당한 처우를 받았기에 끝까지 싸우게 됐다"며 "법으로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벌위원회 회부 당시 녹취록 및 유서 공개

박 씨는 지난 18일 회사 관리자와 벌인 공방을 담은 녹취록과 유서를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유서는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며 "청춘의 절반을 삼성(에서 보냈지만) 정신적 고통과 억울함만 남았다"고 시작됐다.

▲ 자택에서 녹취록과 유서를 공개하는 삼성전자 해고자 박종태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박 씨는 "(삼성의 노사협의체인) 한가족협의회에서 '사원들을 너무 대변했다'는 이유로 해외 출장을 강요당하다 끝내 해고됐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유서에 "출장 강요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며 "사원과 가족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다른 곳에서는 고통 없이 만나서 살자"고 적었다. 징계 및 추가 출장 강요 등 극단의 선택을 하도록 한 담당자들을 조사해 문제점이 생기면 처벌해 달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박 씨는 녹취록과 유서 등을 공개하며 "삼성에는 여사원들이 유산하고 부당하게 인사이동을 당하는 현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에도 불리한 점을 말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며 "(이러한 현실은) 한가족협의회 협의위원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어용노조 말고 '진짜 사원을 대변하는' 민주노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종태 홀로 싸울 때 도움 못 줘 속상하다"

그동안 박 씨에게는 사원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한 여사원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저희를 위해 홀로 싸우실 때 아무 도움 드리지 못해 정말 속상하고 죄송하다. 현실은 정의 앞에서 너무나 냉혹한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답답함과 억울한 사람이 정말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저 또한 이 회사가 싫어지네요. 힘 있는 자만이 모든 걸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걸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못난 내 자신이 바보스럽고 창피하고… 진짜로 무서운 회사네요. 회사가 대리님이 무서워서 미리 싹을 자른 거니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외부의 지지도 이어졌다. 시민단체 회원들의 연대 일인 시위가 잇따르더니 최근에는 <한겨레> 기획위원 홍세화 씨가 박 씨와 일인 시위에 동참하기도 했다. 홍 기획위원은 "박 대리님의 승리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시기 바랍니다. 꼭 승리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으시기 바랍니다"라는 격려 메시지를 보냈다.

박 씨는 "지난해 4월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삼성은 '초일류기업문화실천'이라는 이름으로 전 사원에게 노동조합의 폐해를 교육했다"며 "이건희 회장은 국민이 정직해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회사가 보다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어 말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18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중앙문에서는 박종태 씨와 그의 두 딸이 함께 일인 시위를 했다. "아빠 혼자 추운 데서 고생하게 할 수는 없다"며 아빠를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 18일 아빠와 함께 일인 시위에 나선 박종태 씨의 두 딸. ⓒ프레시안(김윤나영)
박은희(가명‧16), 박은지(가명‧12) 양은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아빠 더 이상 아프지 마세요! 아빠의 소중한 딸"이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나왔다. '아빠'라는 단어에는 넥타이를 맨 아빠 곰과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피켓에 서로 더 많은 내용을 적겠다고 티격태격했던 딸들이었다.

이건희 회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박은지 양은 "죄 없는 사람은 왜 잘라요?"라고 당차게 말했다. 박은희 양은 "노란 봉투에 징계장이 집으로 날아왔을 때 아빠가 불쌍했다"면서도 "하지만 아빠가 옳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난생 처음 일인 시위를 해본 은희 양은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며 쑥스러워 하기도 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도 날마다 아빠를 돕겠다던 큰딸은 박 씨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박 씨는 "매일 나오겠다는 아이에게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렸다"며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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