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저축은행 해법, 결국 은행 팔 꺾는 '관치금융'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저축은행 해법, 결국 은행 팔 꺾는 '관치금융'

"예금보험공사 공적자금 투입해야"

결국 해법은 관치금융이다. 수년간 금융시장 최대 불안 요인으로 꼽혀 온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뒤늦게 나선 정부의 대책은 완전히 과거 관치금융을 빼닮았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저축은행 회생 방안이 다시 논란이 된 계기는 지난 5일 김석동 신임 금융위원장의 신년사다. 당시 김 위원장은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채권 해소를 위해) 정부가 세심하게 시장을 지켜보고 있다"며 "기본 방향은 이미 결심이 서 있다"고 말했다.

민간 은행 맞나

논의된 해법은 시중 대형은행들이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방안이다. 국가 금융시스템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저축은행 문제 해결을 위해 시중은행들이 나서는 모양새다.

공교롭게 이날(5일) 시중은행지주 회장들은 입을 맞춘 듯 "저축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말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신년사에서 저축은행 한두 곳을 인수하겠다고 말했고,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거대 금융그룹도 금융시스템 유지를 위한 노력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화답하듯 김 위원장은 "금융권 인사들도 저축은행 문제가 시스템 리스크로 연결되면 안된다는 데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해 이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모두 대표적인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인사로 꼽힌다. 어 회장은 고려대 총장 재직 후 현 정부 들어 국가브랜드 위원장을 지냈고, 이 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온갖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이들 세 회장은 모두 고려대를 졸업했다.

절묘한 타이밍에다 대통령과도 강한 교감대를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 관치 의혹을 낳는 부분이다. 실제 김 위원장은 "취임 후 주요 금융권 인사들과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며 이번 은행장들의 발언이 정부와 사전 교감 이후 나온 것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비상식적 관치 금융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6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 SK미소금융 금천지점을 방문했다. 취임 후 첫 현장 방문지다. ⓒ뉴시스
결국 '문제가 있는'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대형은행과 고위험의 서민금융을 전담하는 저축은행은 업무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대형 은행이 발 벗고 나서는 모양새 자체가 관치의 냄새가 짙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7일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대형 시중은행이 서민금융 시장에서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하는 경우가 없다"며 "서민금융은 결국 지역에 밀착된 작은 시장에서 철저한 모니터링을 하는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그간 정부의 감독 실패를 민간에 떠맡기는 정책이라는 게 문제다.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경영개선약정 체결 △예금보험기금 공동계정 설치 △회생가능한 저축은행 정상화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부동산 시장 부실화로 상황이 시급한데도 미온적인 대책에만 그쳤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번 대책은 정부가 은행의 팔을 비틀어 부실은행을 인수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저축은행의 부실화는 결국 경영실패와 감독실패 때문인데, 이번 대책은 제대로 된 책임추궁이 없어 도덕적 해이를 몰고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미 대형금융기관의 서민금융사업은 실패한 전력이 있다. 정부는 서민가계가 어려워지자 대형 은행을 대상으로 희망홀씨대출 사업을 벌였으나 이는 사실상 실패한 정책으로 판가름났다. 워낙 사용자가 적자, 은행권은 새 희망홀씨대출 상품까지 내놔야 했다.

실제 이번 대책은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가 추진한 부실 상호신용금고 강제 인수와 똑같다. 1974년 정부는 재정이 부실해진 13개 상호신용금고를 국민은행과 부산·전북은행 등에 떠넘겼으나, 대부분 신용금고의 부실은 전혀 해소되지 않아 경제에 큰 부담을 지웠다. <한국경제>는 7일자 기사에서 "부실 상호신용금고 중 정상화된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은행 경영에 큰 부담만 지우다 퇴출됐다"고 보도했다.

"예금보험공사가 공적자금 투입해야"

결국 해법은 공적자금 투입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중요한 건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아니라 예금보험공사가 구조조정 주체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캠코는 예보와 마찬가지로 부실채권을 인수할 때 일정 정도의 구속력을 가진 양해각서(MOU)를 맺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후정산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지만 않으면 별다른 제약을 가하지 않는다. 경영실패를 철저히 감시할 구속력은 떨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예보는 경영권까지 넘겨받아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한다. 경영실패를 근본적으로 묻는 조치다.

캠코의 구조조정은 이미 현 정부 들어 실패한 전력도 있다. 지난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금융감독 당국은 캠코의 고유계정을 통해 저축은행의 부실 PF 채권을 1조7439억 원에 매입했다. 그럼에도 작년 6월 25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발표를 보면 PF 대출 잔액 12조5000억 원 가운데 '정상'은 26.4퍼센트인 3조3000억 원에 불과했다. 경영실패를 전혀 제어하지 못한 것이다.

김 교수는 "예보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가능성이 없는 저축은행은 청산시키고, 나머지는 구조조정해서 예보 산하 기관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근본적인 재무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그리 높지 않다. 지난 2009년 4월 2014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용될 40조 원 규모의 금융기관 구조조정기금 사용에 관한 법안(공적자금관리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 기금의 운용처는 캠코다.

따라서 캠코가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에 나서는데는 법적인 하자가 없지만, 예보가 구조조정에 나서려면 다시 법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예보가 공적자금에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예보는 110조9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각 금융기관과 기업에 투입했으나 이 자금은 이미 다 바닥났다. 다시 예보에 돈을 채워넣는 건 정치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뒤따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설리 만무하다.

김 교수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정부 관료들이 그간 금융위기 이후에도 예보를 통한 구조조정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들에게 상황의 위급함을 알리고 공적자금관리특별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