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직원들과의 대화는 채 세 문장을 넘기지 못했다. 홀로 있는 사람도,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도 삼성전자 해고자인 박종태 씨 이야기가 나오면 몸을 사리기 일쑤였다. 누군가는 "난감해서 노코멘트"라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이런 데 엮이면 골치 아파진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수많은 사람이 점심을 먹으러 오가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중앙문 앞 풍경이었다.
"일인 시위하느라 수고한다며 두유 건네주기도"
박 씨는 삼성전자에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글을 사내 전산망에 올렸다가 해고됐고, 지난달 23일부터 복직을 요구하는 일인 시위를 벌여왔다. 하지만 그가 완전히 혼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의 곁에는 같이 일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간혹 그가 든 손팻말을 유심히 바라보며 지나가는 삼성 노동자들이 있었다.
▲ 삼성전자 해고자 박종태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
어제는 한 직원이 저한테 고생한다고 말을 걸어왔어요. 수고한다면서 두유를 손에 쥐여 주고 가는 직원도 있었어요. 일인시위를 끝내고 집에 가려는데 나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박 대리다'라고 얘기하면서 삼삼오오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박종태 씨는 마음속으로 동조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힘이 난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얼마 전에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복수 노조가 허용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지 왜 그렇게 서둘는지 질타하더라"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멋쩍게 웃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기자도 박 씨의 행동에 지지를 보내는 삼성 노동자를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원재욱(가명‧32) 씨는 "(복직을 위해 일인 시위하는 박 씨가) 힘들겠다"며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게 많다. 삼성에 노조를 만드는 데 같이 할 수는 없어도 심정적으로 동조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다른 삼성 노동자 임정남(가명‧34) 씨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노동조합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서도 "(박 씨가) 추운데 해고돼서 고생하니 안 됐다는 생각은 든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는 "나는 조직에 순응하는 편이라서 지금 당장은 노조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지만 회사에 좀 더 있다 보면 나중에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이 감시하는데 어떻게 회사 바로 앞에서 홍보물 받나"
박 씨가 선 자리 근처에서 일인 시위를 했던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는 동조할지 몰라도 겉으로 몸을 사릴 만도 하다"며 지난 2004년 삼성SDI 측이 노동조합을 만들려던 직원들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했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
"사건이 터지고 관련 홍보물을 나눠줄 때였습니다. 길목에 삼성이 설치해 놓은 CCTV가 있으니 직원들이 1m쯤 뒤에서 몰래 홍보물을 받더라고요. 나중에서야 저한테 '회사에서 다 감시하고 있는데 회사 바로 앞에서 어떻게 홍보물을 받느냐'고 말하더군요. 홍보물을 받은 게 CCTV에 찍히기라도 하면 그 다음 날 관리자가 불러서 '홍보물 받을 때 무슨 얘기 했느냐'고 꼬치꼬치 물었다고 합니다. 결국 정문에서 조금 벗어나서 나눠줬더니 직원들이 그제야 받았죠."
김 위원장은 "삼성 직원들은 삼성이 자기가 하는 일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종태 씨 또한 "삼성에서 가장 큰 건물에 CCTV가 있는데, 렌즈가 보통 렌즈가 아니라 일거수일투족까지 확대할 수 있는 커다란 렌즈다. 지금 내가 일인 시위하는 것도 회사는 다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러한 박 씨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일인 시위가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과 영통구청 직원이 나타났다. 경찰은 박 씨에게 다가와 "삼성 측의 신고를 받고 왔다"며 "한 명 이상이 하는 일인 시위는 집회이므로 신고하라"고 경고했다. 구청 직원도 "현수막을 쓸 수 없다"며 일인 시위를 제지하면서 이들 사이에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 ⓒ프레시안(김윤나영) |
구청 직원과 경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박 씨의 일인 시위 현장에는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전국일반지역노조협의회 최만정 의장은 박 씨의 일인 시위 소식을 듣고 충청남도에서 경기도 수원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최 의장은 "시간 되는 사람은 일인 시위에 함께해달라는 광고를 보고 나왔다"며 "박 대리가 노조 만들자는 이유로 해고된 게 부당한데, 혼자 싸워서는 안 될 것 같아서 힘을 실어주고자 왔다"는 참가 동기를 설명했다.
또 다른 참여자 채미정(가명‧53) 씨는 양심수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박 씨와 연이 닿았다. 채 씨는 "노동 운동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들도 양심수"라면서 "감옥 밖이나 안이나 (세상이 냉혹하기는) 노동자에게 다를 바가 없다"며 '감옥 밖에 있는 양심수'인 박종태 씨를 지지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자본권력의 꼭짓점에 있는 삼성이 자신들이 한가족이라고 말하는 노동자를 살인적으로 해고했다"고 분노하기도 했다.
김성환 위원장은 "박 대리의 해고는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하면서 지금까지 써왔던 수법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삼성이 써왔던 수법'이란 "특정 사원이 관리‧통제되지 않으면 다른 꼬투리를 만들어서 해고하는 것"이라는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박 대리는 삼성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잘린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측의 '본보기'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현장에 남은 다른 노동자들은 의외로 담담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된 사람들에게 현장 동료들은 호의적이었다"며 "노조를 건설하자는 박 대리의 힘은 미약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에게도 나름대로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삼성 앞에서 일인 시위가 있는 것도 지난 2004년 휴대전화 위치추적 사건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라며 "이러한 박 대리의 모습이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울림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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