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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얻은 교훈…"'헛똑똑이 경제학'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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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얻은 교훈…"'헛똑똑이 경제학'의 허구"

[이정전 칼럼] "토끼처럼 평화로운 경제를 기대하며"

꽤 오래 전 시골에 살 때의 일이다. 하루는 동네 이장이 동네 사람과 함께 느닷없이 우리 집에 찾아 왔다. 마을 도로를 확장하고 포장하는데 필요한 돈을 걷으려 왔다는 것이다.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어떤 근거로 그런 큰 금액을 걷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필요한 경비를 마을의 가구 수로 나누었더니 그런 금액이 나왔단다.

그 길은 마을 아래쪽으로 난 길이고 그 쪽 사람들이 주로 쓰는데, 그 길을 자주 사용하지도 않는 마을 중간과 오른쪽 가구들이 왜 똑같은 금액을 내야하느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결정이 나왔느냐고 물었다. 이장은 그 길이 우리 마을의 길이니 마을 사람들이 똑같이 나누어야 하지 않겠느냐, 마을 사람 몇이서 의논해서 그렇게 결정했노라고 대꾸했다.

나는 그런 모임을 듣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큰 돈을 분담하는 문제를 그렇게 마을 사람들 몇이서 적당히 결정할 수 있느냐고 가볍게 힐난했다. 일단 그건 그렇다 치자. 비용분담에 관해서는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따라 이익에 비례해서 비용을 분담해야지 이렇게 똑같이 나누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진 다음 분담금을 합리적으로 다시 계산해보라고 주문하였다.

마침 지나가던 이웃집 양반도 내 주장에 맞장구 쳐주었다. 그 양반은 도시에서 사업을 하던 분이니 수익자부담의 원칙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원칙을 들먹이니까 할 말이 없는지 이장은 머쓱해서 돌아갔다. 정치판도 아니고, 무슨 일을 저렇게 촌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웃 집 양반과 나는 혀를 끌끌 찼다.

며칠 후에 서울에 일보러 올라갔던 아내가 돌아왔다. 아마도 돈 걷는 문제를 동네 사람들로부터 들은 모양이다. 문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화부터 냈다. 당신은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느냐고. 그래서 나는 동네 사람들의 그런 억지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한 다음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분담해야지 똑같이 돈을 낸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냐고 아내에게 되물었다.

아내는 더 큰 소리로 나에게 막 쏘아댔다. 아니, 당신은 이 촌 구석에서 무슨 놈의 얼어 죽을 수익자부담의 원칙이냐,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누가 더 이익이고 누가 덜 이익인지를 굳이 따져야 하겠느냐, 손바닥만한 마을에 길이 많은 것도 아니고 셋 밖에 없는데 그 중에 제일 큰 길을 확장한다면 마을 전체의 일이니 마을 사람들이 똑같이 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등.

문득 대화가 안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무식한 마누라와 더 이상 얘기를 더 해봐야 내 입만 아프지, 나는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더욱이나, 눈치를 보니 이미 돈을 내고 온 모양인데 더 이상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동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는 사뭇 무덤덤한 표정이요 사무적이었다. 반면에 아내는 인기가 상당히 좋은 것 같았다. 서너 달이 지났다. 볼 일이 있어서 아내와 서울에 올라왔는데, 저녁쯤 되니 갑자기 한파가 몰아치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TV를 켰더니 밤 새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겠으니 농가에서는 채소가 얼지 않도록 각별히 대비하라는 뉴스가 들렸다.

우리 밭 배추가 다 얼어 죽으면 어쩌나, 아내가 갑자기 걱정을 했다. 그러더니 쪼르르 전화통으로 달려갔다. 시골의 우리 앞집에 전화를 거는 눈치였다. 시종 화기애애한 대화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우리 밭 배추가 얼지 않도록 잘 손보아 둘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앞집 아주머니가 얘기 했다며 안심하는 표정으로 TV쪽으로 돌아앉더니 아내는 어느 새 졸고 있었다. 어떻든 아내가 전화한 덕분에 우리 밭 배추는 무사히 잘 자랐고 그 해 겨울 우리 집과 우리 형제들 집은 맛있는 김장 김치를 먹을 수 있었다.

문득, 만일 아내가 없었더라면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를 생각해봤다. 아마도 나는 깜깜한 밤중에 고속도로와 시골 산길을 너덧 시간 달려 내려가서 우선 거적을 주워 모으느라 진땀을 뺀 다음 우리 밭의 배추에 씌워주는 생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깜깜한 오밤중에 거적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아내는 서울에 앉아서 전화 한방이면 깨끗하게 해결할 문제를 나는 생고생을 지독히 해야 하고 진땀을 흘려야 한다. 수익자부담의 원칙을 들먹이는 내가 과연 합리적인가.

나는 이 사건을 요즈음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가끔 얘기해주곤 한다. 얼마 전 제자들과의 모임에서도 이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나서 자네들은 제발 나 같은 못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훈계까지 하였다. 그랬더니 어느 제자의 말이, "그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선생님을 자주 뵈어야 하겠네요." 아무렴, 나를 보고 교훈을 얻는다면 백번이라도 만나야지.
▲ 무상급식이 이뤄지는 한 초등학교 풍경. ⓒ프레시안(이경희)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이니 효율이니 경쟁력이니 하는 경제논리에 앞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 좋은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부터 먼저 생각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의 지도계층부터 우리 사회에 좋은 인간관계의 형성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더라면 과연 무상급식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벌어졌을까? 4대강 사업을 그처럼 무모하게 강행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올해가 토끼의 해라고 하는데, 토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평화롭게 풀을 뜯는 장면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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