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를) 될 수 있는 대로 넓게 하고 싶다"라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발언이 구체화됐다.
삼성 사장단 후보군 넓어져…'3세 경영' 앞둔 포석인 듯
삼성그룹은 8일 사상 최대 규모의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부사장급 이하 470명 규모다. 이 회장의 둘째 딸인 이서현 제일모직 기획담당 전무가 이번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사장은 제일기획 부사장도 겸한다. 이 부사장의 남편인 김재열 제일모직 경영기획 담당 전무도 이번에 함께 부사장이 됐다. 김 신임 부사장은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다만, 이 회장의 첫째 사위인 임우재 삼성전기 전무는 이번 승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의 자식과 사위들 가운데서 임 전무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승진한 셈이다. 임 전무는 삼성물산 평사원 출신으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결혼해서 화제가 됐었다.
삼성 창사 이래 최대 규모라는 이번 인사는 삼성 사장단의 후보군을 넓히는 작업으로 풀이된다.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오너 입장에서 선택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라는 것.
이번 인사를 놓고, 삼성의 보수적인 조직문화가 조금 희석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오너 일가가 아닌 30대 나이 임원이 처음 등장했기 때문이다. 39세로 삼성전자 상무가 된 양준호, 문성우 씨, 38세로 삼성전자 상무가 된 이민혁 씨 등이 그들이다. 또 여성 임원도 늘었다.
'책임 없는 절대 권한' 문제는 여전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누가 어떤 자격으로 삼성 계열사 전체의 인사를 결정하느냐'라는 문제다.
옛 삼성 전략기획실을 이어받은 삼성 미래전략실 구성, 삼성 사장단 인사에 이어 이번 임원 인사로 삼성 그룹 지배구조는 완벽하게 과거로 회귀했다. 지난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이 있기 전으로 말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3일 논평에서 "삼성그룹은 '그룹 회장-그룹 컨트롤 타워(미래전략실)-계열사 사장단'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삼각 축이 그룹 경쟁력의 원천임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다. 놀라운 것은, 이들 삼각 축 중에서 그나마 법적 실체를 갖고 있는 것은 계열사 사장들뿐이라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주주총회 등 형식적인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채 삼성 계열사 인사가 결정되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이나 삼성 미래전략실이 삼성 계열사 인사 결정에 참여할 자격은 모호하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이에 따른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 후진적 지배구조"라며 비판했다.
"'김순택 미래전략실', '이학수 전략기획실'과 뭐가 다른가?"
그리고 경제개혁연대는 이번에 복원된 그룹 컨트롤 타워(미래전략실)에 대해 "그룹경영의 시너지 효과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컨트롤 타워의 존재는 불가피하다"라면서도 "문제는, 이번에 신설된 미래전략실도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는 조직이라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과거 이학수 부회장 중심의 전략기획실이 정보와 의사결정권을 독점한 상태에서 온갖 불법부당행위를 통해 총수일가의 사적이익을 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신설된 김순택 부회장 중심의 미래전략실 역시 동일한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는 삼성그룹의 가장 심각한 지배구조 위험요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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