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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초월한 '참인간' 리영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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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초월한 '참인간' 리영희 선생님

[리영희 선생님을 보내며]

리영희 선생님을 생각하며

행당동 인문 대학을 에워싸고 있는 진달래가 서서히 붉은 빛을 발하던 1981년 4월 어느 날이었다. 어두컴컴한 화장실에서 선배가 건네준 누런 봉투로 감싼 책, 그것은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대학 1학년인 나와 리영희 선생님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상의 은사'라고 그 분을 부른다. 선생님으로부터 사상적 세례를 받은 사람이 어찌 하나 둘이랴. 나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 과의 대화>는 유신체제만이 민족의 살 길이라고 배웠고 믿어왔던 우리 들, '81 학번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그 이후 진실은 결코 편하게 오지 않으며, 피와 땀을 흘려 얻는 것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내 몸 속에 채워나갔다.

대학 시절, 선생님과의 인연은 책을 통해서만 이뤄졌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선생님께서 해직교수였고, 복직하셨을 때 나는 군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그 분의 말씀과 삶의 흔적을 존경했지만, 동시에 어렵고 두려운 분이었다. 광기가 지배하던 시절, 모두가 동굴 속에 숨어있을 때 불의와 거짓에 맞서 대항할 용기를 어찌 쉽게 갖겠는가.

90년 후반부터 선생님과의 본격적인 만남은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대학을 정년퇴임 후 산본 아파트로 이사하셨다. 김승수 선배, 심흥식 선배, 예진수 선배, 그리고 친구 창빈, 영묵과 함께 선생님 집을 3개월에 한번씩 방문했다. 선생님께서는 다른 누구들 보다도 후학들을 반겨주셨다. 처음 승용차를 구입하셨다며, 애마를 몰고 운전하는 것이 그리 즐거우시다고 소년 같은 웃음을 짓던 모습이 선하다. 함께 집 뒤편의 수리산에 등산도 하고 막걸리도 즐겼던 건강하신 시절이셨다. 흥이 겨우면 기꺼이 노래도 부르시고, 후배들을 편하게 해주시던 그런 분이었다. 불의 앞에서는 단 한치의 타협도 없이 싸웠지만,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수 운전하는 차를 타고 비봉 저수지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단골 매운탕 집에서 해 주시던 말씀들을 잊지 못한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가시밭 길을 걷는 것을 아쉬워하고 미안해 하셨다. 자신의 세대에서 굴종과 분단의 역사를 끝내지 못하고 후학들이 고난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선생님은 안타까워 하셨다.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다. 어렵고 두렵기만 했던 선생님의 참모습을 보았다.

수습기자 연수에 언론계 선배로서 강의를 부탁 드렸다. 선생님은 불편하신 몸에도 불구하고 그 강의는 꼭 해야 된다며, 산본에서 광화문 프레스센터까지 나오셨다. 강의실에서 선생님을 소개했을 때 수습기자들이 모두 일어나 선생님을 박수로 모시자, 어느 자리의 환영보다 기분 좋다며 환하게 웃곤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후배 기자들에게 '다른 모든 것의 타협은 필요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진실을 대상으로 한 거래와 타협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 자리에 있던 수습기자들은 대부분 80년 후반에 태어난 세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리영희' 석자는 시대의 양심과 지식인을 대표하는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20년을 다닌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을 정한 후, 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선생님은 '어려운 상황인 것은 알지만 조금 더 생각한 후 결정하는 것이 어떠하겠나. 하지만 세익군이 마음을 정했다면, 나는 그 선택을 믿는다'고 격려해 주셨다. 선생님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뵙지 못할 것 같다고 인사드렸다. 그런데 12월 4일, 후배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리영희 선생님 부음을 전해 주었다. 하늘이 노래진다는 표현이 글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닥에 무너지듯 주저 앉았다. 이제 정말 다시는 선생님을 뵐 수 가 없구나.

선생님을 기리는 말은 많다. 그 모두가 옳다. '사상의 은사', '마지막 지식인', '영원한 기자'등이 우리 시대에 남긴 그 분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내가 아는 리영희 선생님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오직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거짓과 타협하지 않고 진실만을 위해 복종하는 것. 그것이 지금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일 것이다.

▲ 올 초에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 봉투이다.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잡고 쓰신 글자 하나 하나가 사무치게 다가온다. ⓒ천세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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