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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사망 확인해준 '아일랜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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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사망 확인해준 '아일랜드 스토리'

호랑이에서 고양이로…영욕의 20년

아일랜드 몰락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예견됐다. 시간이 지나 터진 것뿐이다. 아일랜드는 미국, 영국, 한국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받아들인 나라다. 그로 인해 이 나라는 지난 20여년 간 극적인 성공과 비참한 몰락을 겪었다. 신자유주의의 허망한 패배를 세계가 목도하고 있다.

감세! 감세!

과거 아일랜드는 대구 어획과 목축업·농업에 의존하는 가난한 나라였다. 19세기 중반 그 유명한 감자 기근이 발생한 후 대규모 이민이 일어나면서, 아일랜드계 미국인은 최근까지도 '하얀 흑인'이라 불릴 정도로 괄시를 받았다. 지금도 아일랜드는 170여년 전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일랜드 국민의 수는 약 400여만 명으로, 19세기 당시(800여만 명)의 절반에 불과하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이 나라에 희망이란 없어보였다. 정부는 예산의 35%를 이자를 갚는데 썼다. 실업률은 20%에 육박했고 경제는 역성장했다. 오일쇼크 여파로 1979년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25%까지 치솟았다.

변화는 1987년 시작됐다. 노사정 대타협으로 이른바 '국가경제사회평의회(NESC)'란 협의체를 구성한 아일랜드는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국가 정책은 일관성있게 유지하자는 큰 틀의 국가비전을 만들었다. 찰스 호이 공화당 신임 당수는 비전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국가 비전이란 간단했다. 신자유주의화였다. 찰스 호이의 롤 모델은 바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였다.

각종 복지예산을 삭감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며, 대규모 감세를 실시하고 국가 차원에서 기업의 연구개발을 돕자는 게 골자였다. 40%대에 달했던 법인세는 세계 최저 수준인 12.5%로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파업으로 유명하던 아일랜드의 노동유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미국,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 다음으로 높아졌다. 노조의 협조에 따라 임금상승률은 두자릿수에서 5% 미만으로 낮췄다. NESC 합의에 따라 노조도, 야당도 전반적인 비전에는 반기를 들지 않았다.

성공 스토리가 이어졌다. 두자릿수 실업률은 아일랜드 경제가 정점에 달했던 2007년, 4%대로 뚝 떨어졌다. 1988년 1만 달러를 겨우 넘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한 때 5만 달러를 넘을 정도로 불어났다. 십여년 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7%에 가까울 정도였다. 유럽 최악의 빈국이 세계 최고 부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1984년부터 2002년 사이 벨기에의 실질경제성장률 합계는 42%에 불과했으나, 아일랜드는 무려 167%에 달했다. '강산이 변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감세 효과가 톡톡했다. 영어가 완벽히 구사되는 노동시장, 세계 최대 소비시장(유럽연합)을 지척에 둔 입지를 갖춘 나라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장해주고 법인세를 대폭 깎아주자 미국 등 선진국 기업의 직접투자(FDI)가 줄을 이었다. 1990년 379억 달러에 불과했던 해외직접투자는 2003년 2227억 달러로 여섯 배 증가했다.

아일랜드 국민들은 불과 이십 여년 만에 세계의 부자가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더블린 시내 한가운데에 기념첨탑을 세웠다. 온 세계가 아일랜드를 배우자고 했다. 거기엔 허브 국가론과 금융시장 개방을 추구하던 한국도 포함돼 있었다.

▲브라이언 코웬 아일랜드 총리는 결국 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키로 했다. 과거 한국처럼, 아일랜드 경제는 무너졌다. ⓒ로이터=뉴시스

살찐 고양이였던 셀틱 호랑이

그러나 이 모델은 서서히 내부로부터 붕괴돼 갔다. 세계는 2008년 금융위기를 몰락의 시발점으로 꼽고 있으나, 이전부터 아일랜드는 재앙을 키워왔다.

우선 아일랜드식 모델을 다른 나라가 적극 차용하기 시작했다. 갓 개방한 동유럽과 중국 등이 세계의 새로운 생산기지가 됐다. 아일랜드보다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노동력을 갖춘 나라들이 국제적 기업에 문호를 개방했다. 아일랜드의 해외직접투자 유치액은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아일랜드 정부로서는 새 성장모델을 마련해야 했다.

대안은 증권화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아일랜드로서는 내수팽창이 유일한 해답이었고, 이는 금융기업 강화로 이어졌다. 미국의 몰락 스토리와 같다.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자산을 증권화했다. 신용팽창을 위해 정부는 다시 재정적자를 무릅쓰고 유동성을 늘렸다. 돈이 돈을 벌도록 해 통화유통속도를 높이자는 심산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이 정책 역시 효과적으로 먹혀들어갔다. 금융화는 부동산 붐을 일으켰다. 1995년 3만 가구에 불과했던 연간주택 공급량이 2006년에는 9만여 가구로 늘어났다.

중앙은행의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5%까지 늘어났다. 이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은 무자본으로도 자기 집 장만 가능했다. 전액 대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아일랜드식 모델의 예고된 패망을 앞당겼을 뿐이다. 세계적인 침체가 이어지자 이미 증권화된 부동산 시장이 무너졌다. 금융산업과 함께 내수를 떠받치던 건설업체들이 무너져내렸다. 은행이 부실에 빠지자 정부는 더 많은 빚을 내 위기를 벗어나려했다. 그 결과가 올해 GDP의 32%에 달하는 막대한 빚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결국 최대 은행인 앵글로 아이리시를 작년 1월 국유화했고, 지난 9월에는 2위 은행 얼라이드 아이리시를 또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집값은 30% 폭락했고, 빈집은 30만 채에 달했다.

미국처럼 달러를 무한정 찍어낼 능력이 없는 아일랜드가 택할 길은 국제통화기금(IMF)에 약 1000억 유로에 가까운 대규모 구제금융을 신청받는 것 밖에 없었다. 아직 정확한 액수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1997년 한국이 IMF에 빌리던 돈(100억 달러)의 열 배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아일랜드 국민들은, 십여 년 전 한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긴 고통의 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은 "셀틱 호랑이(아일랜드의 별명)인 줄 알았더니 살찐 고양이었다"고 조롱했다. 호랑이는 '돼지(PIIGS)의 하나로 전락했다.

한국 정부는 뭘 하나

아일랜드 모델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부의 위기대응책은 여기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듯 보인다.

당장 여권 내에서 논란이 되는 감세만 하더라도, 청와대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의 대척점처럼 보이는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내놓은 대안도 법인세를 건드리진 않았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아직도 한국 사회에선 신화에 가깝다.

환율전쟁, 해외투기자금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정부는 금융시장 추가 과세를 머뭇거리고 있다. 한국은행의 때늦은 기준금리 인상은 정책당국이 '유동성팽창-내수활성화-경제성장률 상승'의 논리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느냐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아일랜드 사태는 이제 서서히 대안을 찾아갈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몰락에 따른 패망 스토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 등은 여전히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한국이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할지, 아일랜드는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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