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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vs 현정은…국민 돈으로 살린 회사, 왜 재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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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vs 현정은…국민 돈으로 살린 회사, 왜 재벌이?"

현대건설 본입찰 마감…16일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현대건설 입찰 서류 제출이 15일 오후 마감됐다. 현대자동차 그룹과 현대그룹이 입찰에 참가하는 입찰이다. 현대건설 채권단은 하루 뒤인 16일 오후 우선협상대상자(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업체)를 발표한다. 15일 밤, 입찰에 참가한 두 그룹 고위 관계자들은 잠을 설칠 듯하다.

'왕자의 난', 현대건설 부도, 그리고 정몽헌 회장의 자살

현대그룹 매각 과정을 이해하려면, 200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른바 현대그룹 '왕자의 난'이 벌어졌던 때다. 이 시기를 거치며 고(故) 정주영 회장이 창업한 현대그룹은 셋으로 쪼개졌다.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회장이, 현대중공업은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현대건설과 현대상선, 현대아산 등은 정몽헌 회장이 갖게 됐다. 현대그룹의 모태였던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이 애착을 보였던 현대아산 등이 맏이인 정몽구 회장 대신 정몽헌 회장에게 넘어간 것을 놓고 당시 말이 많았다.

그런데 다시 변화가 생겼다. 2000년 하반기, 현대건설이 부도가 났다. 당시 정몽헌 회장은 형인 정몽구 회장에게 간절하게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은 동생의 요구를 결국 거부했다. 한때 현대건설에 자금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지만, 빈말이었다. 결국 현대건설은 2001년 8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여기에 겹쳐 현대아산의 대북사업까지 지지부진하자 정몽헌 회장은 심리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다. 결국 정몽헌 회장은 2003년 8월 투신자살했다.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이끌게 됐다.

희미한 '기업 논리', 뚜렷한 '가족 논리'…"누가 현대家 적통인가?"

그리고 3년 뒤인 2006년, 현대건설은 워크아웃에서 벗어났다. 이때부터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 의지를 공공연하게 밝혔다. 여기에는 기업 논리가 일부, 가족 논리가 일부 작용했다. 현대그룹의 간판기업은 이제 현대상선이다. 그런데 해운업은 경기에 몹시 민감하다. 그룹의 간판으로는 아무래도 안정감이 떨어진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확실한 현금 창출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게 '기업 논리'다.

하지만 이보다는 '가족 논리'에 더 무게를 두는 이들이 많다.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을 갖고 있어야만, 현대가(家)의 적통이 될 수 있다는 게다. 여기에 겹쳐 현대건설이 부도나도록 내버려둔 정몽구 회장에 대한 감정도 무시할 수 없다.

이와 달리,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 의지를 줄곧 감춰왔다. 현대건설 인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계속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고, 이는 최근 현대그룹이 쏟아내는 광고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현대차 그룹이 말을 바꿨다는 광고다.

하지만 현대제철 일관제철소가 완공됐을 때부터 시장에선 이미 현대차 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드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살아있을 때 몹시 탐냈던 게 일관제철소였다. 이걸 마무리 짓고 나서, 현대가(家)의 적통성을 상징하는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리라는 관측이었다. 역시 '가족 논리'에 따른 예상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예상은 사실로 드러났다.

물론, '기업 논리'도 있다. 제철소에서 만든 철강을 소비하려면, 자동차업체만으로는 부족하고 건설업체가 필요하다는 게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하나의 재벌이 모든 산업을 다 거느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설득력이 없다.

▲ 올해 3월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제사에 참석한 정몽구 회장(사진 위)과 현정은 회장(사진 아래) ⓒ뉴시스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현대건설…"친환경차 개발은 어쩌려고"

그렇다면, '가문의 적통'이라는 상징성, 오로지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현대차 그룹이 무리한 인수를 한다는 걸까. 그건 아니다. 더 강력한 '가족 논리'가 있다.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현대건설이 요긴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잠시 현대차 그룹의 지배구조를 살펴야 한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제철을 지배하고 있고, 이를 통해 현대자동차를 지배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이를 통해 다시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이런 구조에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하려면, 막대한 현금이 필요하다. 재계에선 정몽구 회장 측이 현대건설 인수를 이 문제를 푸는 돌파구로 여긴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현대차 그룹에는 이미 건설업체가 있다. 현대엠코다. 그리고 정의선 부회장이 이 회사 지분을 많이 갖고 있다. 현대건설을 인수한 뒤, 현대엠코와 합병해서 우회상장하면 정 부회장은 천문학적인 상장차익을 챙길 수 있다. 이걸 밑천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한다는 게다. 실제로 많은 재벌가(家) 2, 3세들이 이런 방식을 쓴다.

최근 현대그룹 광고에 자주 나오는 "기업을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쓰지 않겠다"는 표현은 이걸 가리킨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현대차 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시나리오를 좋은 눈으로 볼 수 없다. 게다가 최근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지만, 친환경차 연구개발 투자에는 인색하다. 현대자동차가 자동차 기업으로서의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현대그룹 광고 내용은, 분명한 근거가 있다.

적자 그룹이 알짜 회사 인수한다?

그렇다면,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주는 게 옳은가. 그것도 아니다. 현대차 그룹과 현대그룹의 인수전이 달아오르면서, 현대건설 입찰가 역시 뛰어올랐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현대건설 채권단은 이번 입찰에서 현대건설 보유주식 약 4277만4000주(총 발행주식수 대비 38.87%) 가운데 3887만9000주(34.88%)를 매각한다. 인수 가격은 최소 3조5천억~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인수전이 달아올랐다는 점을 고려하면, 입찰에 참가한 두 그룹은 여기에 1조 원쯤은 더 써 냈으리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여기서 불거진다. 현대차 그룹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문제다. 현대자동차가 갖고 있는 현금만 8조5000억 원이다. 여기에 그룹 차원 여유자금까지 끌어 모으면, 10조 원은 가볍게 넘긴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사정이 다르다. 올 상반기, 현대그룹은 당기순이익에서 8375억 원 적자를 봤다.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 반면, 현대건설은 3311억 원 흑자를 기록한 알짜 기업이다. 부실기업이 건실한 기업을 인수하려고 하는 셈이다. 실제로 현대그룹은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와야 했다. '재무 건전성'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아무래도 현대그룹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조선일보>도 인정하는 대안

그렇다면, 현대건설은 누가 갖는 게 옳다는 건가. 사실, 간단한 질문이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이미 합의된 대답이 있기 때문이다.

송희영 <조선일보> 논설 주간은 지난달 2일 칼럼에서 "흙탕물 뒤범벅인 양복을 말끔히 다림질해 놓으면 챙겨입고 나가는 사람은 늘 따로 있다"고 지적했다. 한때 부도났던 현대건설을 누구나 탐내는 건실한 기업으로 살려낸 주체는 국민이라는 게다. 송 주간은 이 칼럼에서 "왕회장(故 정주영 회장)의 며느리와 아들이 다투고 삼촌·사촌들은 갈라져 편을 짰다"고 현 상황을 설명한 뒤, "구경꾼들마저 현대건설 살리기에 3조 원가량 특별 지원된 행적을 잊어버렸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중에는 국민 세금과 마찬가지인 9000억 원의 공적자금(정책금융공사 지분)도 들어 있다"라며 "부실에 빠진 10년 세월 동안 국민의 기업으로 주인이 바뀐 줄 몰랐던가"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꼬집었다.

"현대건설이 가쁜 숨을 헐떡일 때 자식들 중 누구도 '제 피를 뽑고 제 살점을 떼어내 살려보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연간 매출 10조원, 국내 랭킹 1위 종합건설사로 번듯하게 올라서자 비로소 혈통을 찾고 적손(嫡孫)을 따진다."

"현대건설은 왜 포스코가 될 수 없나"

대안도 명쾌하다. '포스코, KT, KT&G' 모델이 대안이다.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해서 독립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끔 하는 것이다. 송 주간은 호주 커먼웰스(Commonwealth)은행이나 싱가포르 텔레콤을 예로 들며 저소득층에게 주식을 할인 판매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칼럼은 더 신랄한 표현으로 마무리 된다.

"멀쩡한 회사를 재벌에게 넘길 때마다 잡음 없이 끝난 적이 없다. 최고 권력자의 측근과 동창, 정치권 실력자들까지 거간꾼으로 등장, 떡고물을 둘러싸고 다툰다. 이대로 가면 재벌에게 뭔가 선물하지 못해 안달하는 정권이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잠 못 드는 밤을 보낼 정몽구 회장과 현정은 회장에게 권하고 싶은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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