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국내 주식시장을 뒤흔든 외국인의 대량 주식매도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이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국내 자산시장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후폭풍 만만찮네
이른바 '옵션쇼크'가 일어났던 지난 11일 이후 나흘이 지났지만, 15일 현재도 여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장 11일 당일 코스피200지수 상승을 예견해 풋 매도 포지션을 잡았던 와이즈에셋자산운용은 이날만 890억 원의 손실을 봤다. 운용 규모가 2조4000억 원대인 이 자산운용사는 파산 가능성이 나올 정도로 피해규모가 크다.
불똥은 하나대투증권에도 튀었다. 와이즈에셋이 증거금을 납부하지 못해 760억 원을 잃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15일 한화증권은 '옵션쇼크' 여파로 자기자본을 투자한 증권사와 투자중개사에서 추가 손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정보승 연구원은 "일부 기관투자가가 대규모 매도 포지션을 유지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이를 중개한 증권사의 손실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단 하나의 외국인 투자주체의 날갯짓이 수조 원대의 추가 피해를 키우는 셈이다.
"관련 제도 손 봐야"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증시 관련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후증거금 제도, 동시호가 제도의 손질, 외환거래세 신설 등이 주요 대상이다.
당장 와이즈에셋자산운용의 피해가 하나대투증권으로까지 번진 사후증거금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후증거금은 지난 2002년 도입된 제도로, 한국거래소의 회원이 주문시마다 증거금 충족 여부를 체크하지 않고, 장 마감 후에 남은 미결제 약정에 대해서만 사후 납부하는 방식을 말한다. 파생상품 투자는 일정액의 증거금을 채우고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 제도는 일종의 외상거래다.
위험성이 큰 상품을 외상으로 투자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거래소는 회원이 인정하는 적격 기관투자자에 한해 증거금이 없이도 선물옵션 거래가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 제도를 사전증거금을 납부하도록 바꿔야 한다는 지적은 그간 줄곧 제기됐다. 그러나 거래소는 지난 6월 선물거래 감소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적격 기관에 대해 지수선물거래시 현금증거금을 면제하도록 규제완화를 더 강화했다.
동시호가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초 시가, 종가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이 제도를 역이용해 외국계투자자가 대규모 자금을 쓸어갔다는 주장 때문이다. 11일 외국계투자자는 장 막판 동시호가 시간에만 1조6000억 원대의 매도물량을 쏟아내 증시를 급락시켰다.
시민단체 등에서 줄곧 제기한 외환거래세 도입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외국계 투자자는 현물 매도로 주가손실 여부와 관계없이 환차익만으로 11%대 수익을 올렸으리라는 추정이 나오는데, 외환거래세만 매겼어도 기대수익률이 떨어져 이와 같은 대규모 매도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이유다.
"규제 좋은 것 아냐"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규제가 강화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장참가자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창규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는 차익거래 시장에서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참여율이 낮아서 일어난 일"이라며 "외국인의 매물을 받아줄 국내 자금이 컸더라면 그처럼 시장이 휘청이진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기관투자자의 시장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현재 국내 차익거래 시장에서 국내 기관투자자의 비율은 약 52%, 외국인 비율은 48%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연구위원은 "미국처럼 동시호가 제도를 평균가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오지만, 대규모 저가매수를 할 여력이 있는 투자자가 많았다면 그날(11일) 외국인의 매물로 시장이 출렁이진 않았을 것"이라며 개인투자자의 간접투자를 더 강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투자자에 외환거래세를 물리는 방안에 대해서는 "현재 외국인과 국내 기관투자자에 물리는 증권거래세가 동일하게 0.3%여서, 환차익을 감안하면 외국인이 좀 더 유리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정부가 그 정도 규제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이번 사태를 조사중인 금융감독원 조사1국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조사 정황을 확인해드릴 수 없다"며 "결과가 나오는대로 시장에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사태 이후 증권가에서는 "도이치증권 런던지점을 이용한 미국계 투자자금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는 등의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다.
한 시장관계자는 "11일 차익거래 자금 내역을 보면 주식은 2조 원 정도가 쏟아졌는데, 선물ㆍ옵션에서는 절반인 1조 원 정도밖에 거래되지 않았다. 나머지 1조 원은 단순히 주식만 매매하는 자금쪽에서 이탈이 발생했을 것"이라며 "거래 네트워크 쪽을 이용해보니 (시장에서 거론되는) 미국계 헤지펀드가 만든 1조 원 규모의 펀드가 도이치증권 쪽에 정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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