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장 교수는 주류 경제학 논리에 젖어 있던 사람들에겐 놀라운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그는 부자 감세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자유무역협정(FTA)이 공정하지 않은 이유, 서비스업 육성론이 허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 등을 갖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장 교수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순희 옮김, 부키 펴냄)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1980년대 이후 주류가 된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절대 설명하지 않는 진실을 들춰내, 일반 독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쓴 책이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큰 부를 이룬 자들이다.
경제에 문외한이라도 쉽게 내용을 따라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장 교수 특유의 문체는 이 책에서도 빛을 발한다. 장 교수는 간담회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실이 아닌가를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의 신작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가디언>은 사설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정치인이 읽어야 할 책"이라며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가 장 교수에게 점심을 한 번 사야 한다고까지 표현했다. 이 책은 영국과 한국을 비롯한 9개 나라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경제학). ⓒ부키 |
한국은 아직 15등 국가
장 교수는 경제학은 어디까지나 상식을 논하는 학문인데, 경제학자들의 전문적인 서술로 인해 보통 사람들이 거짓에 현혹되기 일쑤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르겠다'하고 지내도 되지만,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문제는 (조금만 알기 쉽게 설명하면)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다"며 "파생상품이 정확히 뭔지는 잘 몰라도, 위험도가 높다면 규제를 강화하는 게 맞다. 경제학 박사학위가 없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런 얘기를 책에 썼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장 교수는 대표적인 거짓말로 △FTA △서비스산업국가 △복지정책 △감세정책 등 네 가지 예를 들었다. 자유무역협정은 결코 자유롭지 않고, 서비스산업국가로 선진국이 되긴 어려우며, 복지정책은 경제를 오히려 살찌우고, 감세정책은 경제에 해가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장 교수는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자유무역하면 손해보다 서로 득을 보는 게 많다고 본다. 초기 EU의 통합은 좋았다"면서도 "수준 차이가 있는 나라들이 무역을 하면 장기적으로 후진국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5등 하는 학생을 1등짜리만 있는 반에 집어넣으면 그 학생이 자극 받아서 1등 할 수도 있다"며 "그러나 15등짜리를 그 반에 넣으면 성적이 더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아직 15등에 가깝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그러나 정부의 FTA 추진기조가 바뀌진 않을 것이라며 "아직도 제조업부문의 평균생산성이 미국, 유럽의 40~50%에 불과한데,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서비스산업이 신성장동력이 되리라는 주장도 따라서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게 장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참여 정부 때도 강조한 '동북아 금융허브'론을 두고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모델이 전부 망했는데도 여전히 정부는 서비스업 강화를 바란다"며 "심지어 산업은행은 리먼브라더스가 망하기 두 달 전에 그걸 사려하지 않았나"고 비판했다.
또 "중국이 제조업 부문에서 쫓아오니 서비스업으로 가야 한다고 하는데, 왜 도망가는 사람을 무서워하진 않는지 모르겠다"며 "서비스업을 강화하면 미국, 영국이 한 자리를 내줄 것 같나"고 되물었다.
복지 강화하면 경제성장률 올라
신자유주의식 처방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굽히지 않았다.
장 교수는 우선 '복지병'을 비난하는 이들의 허구를 공격하며 "영국이 복지병에 시달던 시대로 비판하는 60~70년대의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지난 20년간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며 "스웨덴, 핀란드는 복지규모가 대단히 큰데도 경제성장률도 높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보편적 복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누구든지 아프고 돈이 필요할 수 있는데, 필요할 때마다 타 쓰는 '전 국민 계'라는 생각으로 보편적 복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성장을 위해 강조하는 감세논란 또한 그는 명쾌하게 반박했다. 감세로 인한 '낙수효과(트리클 다운 효과)'는 일어난 적도, 일어날 수도 없다는 얘기다.
장 교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부자감세는 '자유시장적 스탈린주의'다. 투자할 사람에게 돈을 몰아줘야 파이를 키운다는 논리"라며 "소련이 그런 방식으로 농업을 죽이고 제조업을 키웠으나 오히려 투자와 성장이 떨어졌다. 한 번도 증명된 적이 없는 정책을 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케인스주의가 실패한 후 그에 대한 반동으로 신자유주의가 나왔는데, 그렇게 하고서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며 "그렇다면 최소한 신자유주의는 유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폐해가 피폐해지는 국민들의 삶이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점차 기업가정신을 잃고 보수화되어간다고 장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고 수준이던 비정규직 비율이 외환위기 이후에는 60%대까지 늘어났다. 고용 자체가 불안해진만큼 삶의 질이 굉장히 낮아진 것"이라며 "이런 일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변한다. 상위권 학생의 80%가 의대로 몰리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고 비판했다.
또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기업은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단기성과에 집착하기 때문"이라며 "(사회) 전체가 불안해지면서 수요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비판적으로 보라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 ⓒ부키 |
그는 이어 "모든 것의 양면을 보고, 뒤집어보는 게 중요하다"며 "내 책의 구체적인 내용보다 모든 사안을 비판적으로, 다면적으로 보는 방법을 독자들이 배웠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편 장 교수는 다음달 서울에서 열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선진국 모임인 G7에서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개도국까지 포함시킨 것은 의미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요한 결정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에서 이뤄진다"면서 "G20에 포함되지 않은 나라들의 이해는 누가 대변해주느냐"고 반문했다.
장 교수는 특히 남북통일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독일이 지금도 구 동독 지역에 국민소득의 5%를 지원한다"며 "한국은 남북한의 생활수준을 맞추기 위해 GDP의 25% 정도는 써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서 통일은 심각한 위협이라는 뜻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남북한의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비슷해진 뒤에 합쳐야 하는데 그런 정치적 여건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며 "점진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나쁜 사마리아인>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후, 헌법재판소도 합헌 판결을 내린데 대해서는 "요즘 같은 사회에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설사 그걸 통제하는 게 맞다고 하더라도 시대에 맞지 않는 방법인 것 같다. 착잡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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