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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한두 명은 비정규직…기륭, 남의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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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한두 명은 비정규직…기륭, 남의 일 아니다"

[기고] 바람부는 포클레인 위에서 송경동 시인, 김소연 분회장을 만나다

포클레인 위 한뼘만한 공간에 민들레꽃 두 송이가 뿌리를 내렸다. 거대하고 단단한 포클레인도 민들레꽃 두 송이를 밀어내진 못했다. 세상은 민들레꽃 두 송이의 존재를 잘 알아채지 못했지만 민들레꽃 두 송이는 별빛처럼 향긋한 빛을 세상에 퍼트리고 있었다.

민들레꽃 두 송이는 포클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송경동 시인과 김소연 분회장이다. 이들이 안락한 지상을 떠나 포클레인 위에 위태롭게 매달린 이유는 무엇일까.

싸움은 2005년 기륭전자 사측의 불법파견으로 시작됐다. 이후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노조 결성, 파업과 해고, 직장폐쇄로까지 이어졌다. 법원은 기륭전자 사측의 불법파견을 인정했지만 아직까지 이들의 복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6년째 지독하고 끔찍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100일에 가까운 단식과 1800일이상의 농성…. 그들 스스로 "죽는 것 빼고는 다 해봤다"고 말한 그대로다.

▲ 포클레인 위에 민들레꽃 두송이가 피었다. 민들레꽃 두송이는 단단하고 무시무시한 포클레인에 뿌리를 박고 별빛보다 향긋한 빛을 세상에 퍼트리고 있다. ⓒ이주노동자방송(배문희)

진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간 사측과의 교섭으로 1년 반 안에 조합원 1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내용으로 최종타결하고 서명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희망은 다시 무너졌다. 최동렬 회장이 조인식을 하루 앞두고 돌연 뒤집어 버린 것.

▲ 김소연 분회장과 송경동 시인이 포클레인 위에서 촛불을 들었다. 이들이 포클레인 위에 올라간 후 이윤엽 판화가를 비롯한 미술인들이 포클레인을 치장했다. 송경동 시인은 "이 포클레인이 서민의 삶을 밀어버리는 흉기가 아니라 희망의 포클레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방송(배문희)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심정이다. 10월 13일 기륭분회원 두 명은 경비실 옥상에서 단식을 시작했고 15일 아침 포클레인과 용업업체 직원, 경찰병력이 구 기륭전자 사옥으로 들이닥쳤다.

이에 맞서 송경동 시인과 김소연 분회장은 포클레인을 몸으로 막고 위에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이 목숨까지 걸면서 지키려고 하는 요구는 간단하다.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원으로 채용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목숨까지 걸어야할 만큼 과도한 요구인걸까.

지난 25일 농성 중인 송경동 시인과 김소연 분회장을 만나기 위해 포클레인 위로 올라갔다. 포클레인 위는 생각보다 높았고 위태로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포클레인에 매달린 리본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때마침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어 발 아래로 촛불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더는 갈 곳 없는 포크레인 위, 세 시간 동안 눈과 입을 닫고 눈물만 흘려"

"1800일 넘게 힘들게 싸워온 사람들에게 최소한 남은 공간이 천막 한두 갠데 그것들을 포클레인으로 무너뜨리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외치는 사람의 말을 믿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짐승과 같은 마음만 가지고 동원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그런 절박한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포클레인 위에서 전깃줄만 붙잡고 45도 각도로 몸을 누인 채 눈과 입을 닫고 3시간 동안 버티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흘렀고 이 세상이 서글펐고 원망스러웠습니다. 만약 강제진압을 했다면 전깃줄을 놓았을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송경동 시인은 포클레인 위로 올라가 경찰과 대치하던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송 시인은 포클레인 위에 올라오니 용산에서 망루에 올라간 이들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지더란다.

"올라가고 싶어서 올라간 것이 아니라 떠밀려서 올라간 것이죠. 누구나 평지에서 평화롭고 편안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죠. 저라고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삶을 빼앗겨서 평지에서 쫓겨난 것이죠. 철거민은 건설자본에 의해서 삶터에서 쫓겨나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일터에서 쫓겨나고."

"전태일 분신 40주기, 비정규직 제도를 다시 고민하는 시민입법 노력이 필요하다"

얼마 후면 전태일 40주기다. "우리도 인간이다"를 외치며 절규했던 전태일의 얼굴 위로 기륭전자 노조원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그는 "40년이 지났어도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더 후퇴했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86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2개월, 6개월, 길어봤자 2년 안에 다 잘리는 목숨들이지요. 이래서는 어떤 미래도 설계할 수 없고 꿈조차 꿀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기륭전자 농성은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인 것이죠. 기륭전자의 경험을 토대로 파견노동, 비정규직 문제가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고요. 비정규직 제도를 다시 고민하고 제고할 수 있는 시민입법을 만드는 노력을 범사회적으로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송경동 시인은 노동자의 잘려나간 손가락에서, 노숙인의 구멍난 양말에서, 쫓겨나는 이들의 한숨 속에서 시어들을 찾는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투쟁하는 시인', '몸으로 쓰는 시인', '행동하는 시인'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하지만 '시인이 꼭 펜을 놓고 투쟁까지 해야하는가'하는 안타까움이 고개를 든다.

이에 대해 송 시인은 "시인, 소설가가 되는 것은 급하지 않다"며 "먼저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나와 나를 둘러싼 이웃들과 나의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겁니다. 시를 쓰면서 인생을 알게 되는 것 같진 않고요. 현장에서 투쟁하고 꿈꾸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음악이 뭔지, 시가 뭔지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에 집중하라는 말을 하시는데 이런 모든 과정이 시를 찾고 써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륭농성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율동을 하고 있다. 기륭농성장은 어둡고 무거운 절망의 공간이 아니라 즐겁고 유쾌한 연대의 공간이다. ⓒ이주노동자방송(배문희)

"집집마다 한두 명은 비정규직기륭 사태는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다"

김소연 분회장은 인터뷰 내내 소녀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웃음이 나올 수 있느냐"는 물음에 '희망'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번도 싸우면서 포기하겠다거나 주저앉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항상 잘 될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힘들긴 하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고 소박한 거니까 당당함이 있죠."

하지만 움푹 패인 볼과 메마른 피부에서 100일에 가까운 단식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리고 그는 다시 포클레인 위에 올라선 것이다. 부디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면서.

그는 "노동자들이 그렇게까지 힘들게 농성을 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일부의 싸늘한 시선에 대해 입을 열었다.

"농성을 할 시간에 다른 곳에 취업했으면 더 좋았을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함께 싸웠던 노조원 중에는 다른 곳에 취업을 한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그들은 파견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취업했고 또다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다시 버림받을까 하루하루 불안에 떨고 있어요. 다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한 순간이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희망 때문에 긴 시간 싸우고 있는 겁니다."

"MB, 기륭 대표가 우수중소기업인? 노골적으로 자본의 편 들었다"

김소연 분회장은 기륭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최동렬 회장이 이렇게 뻔뻔하게 약속을 뒤집을 수 있었던 건 뒤에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이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구체적입니다. 2008년 기륭조합원들이 고공단식을 할 때였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방문을 하면서 누구를 데려갔는지 아세요? 최동렬 회장을 우수중소기업인 대표라고 해서 데리고 갔어요. 심각한 노사문제를 일으키고, 불법파견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사람을 경제사절단으로 참여시키다니요.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고용전략2020을 발표하면서 대다수의 노동자를 파견으로 만들겠다고 얘기했어요. 지금도 가정마다 한두명은 비정규직인데. 이제 비정규직 문제는 다른 동네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포클레인 위에서 더이상 발을 내디딜 곳이 없다"고 말한다. "날개가 있다면 하늘로 올라갈 일밖에 없다"는 말에서 참담한 심정이 느껴졌다.

"한 사람의 악질 사업주 때문에 조인식 직전까지 갔던 교섭이 틀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없는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가진 양심과 용기는 공권력이나 자본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륭의 조합원들이 안전하게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시민 모두가 힘을 모아 주셨으면 합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 지난 26일 저녁 송경동 시인이 포클레인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좁은 포클레인 위에서 일어서다 중심을 잃은 탓이다. 다행히 다리부터 떨어졌지만 발목을 다쳐 병원치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시인은 병원에 가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고 포클레인 위에서 계속 싸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여기서 물러서면 더는 갈 곳이 없다"는 말을 신음처럼 내뱉으면서.

27일 오전 안부를 묻는 기자의 전화에 송 시인은 "걱정해주신 모든 분들께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기륭전자 농성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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