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서 네이버 뮤직 '이주의 발견'에 참여하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 뻔하디 뻔한 발라드가 너무도 많이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다. 멜로디, 구성, 편곡, 다 똑같다. 심지어 어딘가에 이런 발라드를 양산하는 거푸집이라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 앨범들을 접할 때마다 딱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골치를 썩곤 한다. 고민 없이 만든 음악이 듣는 이를 고민에 들게 하는 아이러니다.
그중에서도 이 글에서 문제 삼을 것은 가사다. 사랑 이야기는 얼마든지 해도 된다. 문제는 다 똑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났고 사랑했으며 이별했고 돌아와 달라고 울부짖는다. 대체로 이런 공식에 의거해 수박 겉핥기식 가사를 늘어놓는다. 지옥이 있다면 여기일까. 감흥이 전해질리 없다.
그래서 대안을 제시한다. 아니, 대안까지는 못 될지언정 귀기울여주었으면 좋겠다. 한국 주류 발라드는, 자신의 위태로운(?) 생명 연장을 위해 '알앤비 스타일 가사쓰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알앤비 스타일 가사라는 것이 따로 체계화되어 정립되어 있지는 않다. 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고 편의점에서도 살 수 없다. 그러나 그 '실체'는 분명히 존재한다.
흑인음악 애호가로서 알앤비를 즐겨 들어온 내가 알앤비 스타일 가사의 대체적인 특징을 자의적으로 몇 가지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구체적이다. 즉 '디테일'이 관건이다. 알앤비 스타일 가사는 그것이 특정한 관계든 특정한 상황이든 감정이 일렁이고 장면이 그려지는 가사다. 둘째. 비유와 돌려 말하기가 수준급이다. 가로지르지 않고 적당히 돌아서 가는 길은 무언가 더 운치 있고 낭만적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유치하다. 정확히 말하면 '유치한 진심'이 배어 있다.
놀라지 말 것. 한국 가요계에서 이러한 알앤비 스타일 가사 쓰기를 꽤 꾸준히, 그것도 준수하게 고수해온 사람이 있다. 바로 휘성이다. 휘성의 2008년작 [With All My Heart And Soul EP]는 재평가 받아야 한다. 이 앨범은 (신승훈이 그랬던 것처럼) 급변한 음악시장 속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했던 EP라는 앨범형식을 음악적으로 적절하게 활용해낸 서사 작품이라는 면에서도 호평할 만하지만, 동시에 음악과 가사 양쪽 면에서 모두 한국 알앤비 역사에 그 마땅한 자리를 비워 놓아야 할 결과물이다.
수록곡 <완벽한 남자>를 보자. 제목부터 이미 유치함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완벽한' 남자라니. 하지만 속는 셈 치고 한번 들어보자. 한 여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해낸 이 곡은 위에서 언급한 알앤비 스타일 가사의 특징을 모조리 다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이 곡의 가사는 구체적이고 비유적이며 무엇보다 유치한 진심을 절절하게 담아낸다. 노래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후반부에 나오는 '완벽한 남자가 되면 돼/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해/ 네 사랑 흔들릴 걱정 없게/ 철저하게 철저하게'라는 구절은 더 이상 유치함이 아닌, 그 어떤 '숭고한 절박함'으로까지 와 닿는다. 멜로디와 보컬의 힘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뻔하고 표피적인 발라드 가사들과 궤를 달리 하는 가사의 힘이다.
휘성은 알앤비 스타일 가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이 글을 쓰기 위해 휘성과 몇 가지 문답을 나누었다. 답변에 응해준 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유치하지만 진심이 담긴 표현을 써야 한다. 사랑한다는데 굳이 '너의 향기란 우주 저편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을 닮았어' 같은 정체불명의 표현이 아닌, 진심을 보여주기 위한 '순수한 허세'가 양념된 가사가 흑인 특유의 '끈적함'을 잘 드러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완벽한 남자>나 <Choco Luv> 등이 내가 지향하는 알앤비-슬로우 잼의 느낌이다.
휘성 본인도 언급했듯 <Choco Luv> 역시 훌륭한 슬로우 잼이다. 밀폐된 공간 속 정지된 상황의 모든 디테일이 살아 움직이며 듣는 이의 숨소리마저 재워버리는 이 곡은 가히 한국 제일로 아름다운 품격을 갖춘 남녀상열지사(?) 트랙이라 할만하다. 감상하고 넘어가자.
그런가 하면 전군도 있다. 휘성과 전군이 여러 번 같이 작업한 관계(심지어 <Choco Luv>의 편곡자는 전군이다)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국의 알앤비 스타일 가사 쓰기는 이 둘이 이끌어가는 셈이다. 전군의 경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예가 있다. 바로 그가 작사, 작곡한 태양의 <I Need a Girl>이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산다라박이 비록 카라의 강지영보다는 못하지만 꽤나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제쳐두도록 하자. 주목할 것은 이 노래의 가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가사가 '유치하다'고만 느꼈다면 그 사람은 그냥 가요를 듣는 사람이다(폄하의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 곡의 가사를 가리켜 '알앤비 특유의 정서를 구현하기 위해 단어 선택이나 표현 방법을 의도적으로 조절했다'고 느꼈다면 그 사람은 말 그대로 알앤비를 들어온 사람이다. 예를 들어 '가만 있어도 남자 놈들 전화길 내밀지만/ 자랑스럽게 내 사진을 꺼내 보이는 그런 girl'같은 은근한 간접화법이 과연 주류 발라드 가사 중에 얼마나 있었나.
사실 알앤비 가사의 특징과 매력을 말로 온전하게 모두 풀어낼 수 없어 답답하다. 부족한 내 능력 탓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들의 노랫말이 기존 주류 발라드 문법과 확실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사심?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알앤비 세상이 도래할 경우 흑인음악 애호가인 내가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란 제로에 수렴한다. 하지만 중학교 때 전교 부회장을 역임했던 나는 그 때 이후로 항상 공과 사를 구분해왔다. 학우들에게 지우개 하나 돌리지 않은 깨끗한 선거를 치렀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회장이 못 됐나? 아무튼, 내가 알앤비 스타일 가사 쓰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공적이다.
▲휘성 [With All My Heart And Soul] ⓒ비타민 |
알앤비는 한국 정서와 맞지 않아 안 된다고? 그렇다면 지금의 그 못난 발라드들은 대중의 취향과 수준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지난 산이 글에 이어 반복하자면, (대중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하나의 일관된 주체로 당연시하는 오류를 저지르려는 것은 아니나) 대중의 취향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미디어가 내보내는 음악에 양적으로 정복당하고 질적으로 학습당한 것에 가깝다.
본토 알앤비의 정서와 느낌을 그대로 한국에 뿌리내리기 어렵다면 그 방법론만이라도 좀 들여다보자. 알앤비 스타일 가사의 방법론과 한국 발라드의 정서를 잘만 조화시킨다면 가요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나는 이영표가 아니므로 헛다리는 짚지 않으니 나를 믿어라. 한 번도 누군가를 믿어보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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