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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시리즈는 놓쳐도 스타일은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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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시리즈는 놓쳐도 스타일은 지켰다

[프레시안 스포츠] 패자도 기억되는 '가을야구'

일본 프로야구의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은 '비운의 명장'이다. 8번이나 일본시리즈에 팀을 진출시켰지만 정상에는 단 한 번도 서지 못했다. 1960년 일본시리즈를 앞두고 그는 상대 팀 감독에게 물을 먹었다. 같이 TV 대담 프로그램에 나가기로 했지만 상대 감독은 나오지 않았다.

이에 격분했던 니시모토 감독은 시리즈에서 복수를 다짐했다. 하지만 심리전에 말린 탓인지 복수는커녕 힘 한 번 못써 보고 참패했다. 패한 뒤에는 구단주에게 '바카야로(멍청이)'란 말까지 듣고 감독 자리를 떠났다.

이런 게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가을야구' 패자들의 운명이었다. 그래서인지 '가을야구', 특히 한국시리즈 하면 승리를 위해 감독과 선수들이 초긴장 상태에서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먼저 연상된다. 승리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13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에서 박석민의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6-5로 한국시리즈 진출이 확정된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뛰어나오고 있다. ⓒ뉴시스

"인천 출신 심판 안 빼면 보이코트 하겠다"

야구란 종목이 원래 태생적으로 판정 시비, 무리한 작전 구사, 심리전과 같은 것들을 수반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더 크게 부각됐다. "누구 때문에 졌어"라는 얘기가 "누구 때문에 이겼어"라는 말보다 더 설득력을 얻을 때도 많았다. 감독도 조바심을 많이 냈다. 시리즈 패배 위기에 몰린 감독들은 늘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배수의 진을 치고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을 해왔다.

해태 시절 한국시리즈에서 패배를 모르던 김응룡 감독은 1996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4차전에서 상대 투수 정명원에게 노히트 노런을 당해서다. 당시 해태는 에이스 이대진을 내세웠지만 경기를 놓쳐 현대에게 시리즈의 흐름이 넘어간 상태였다.

그러나 김 감독은 심리전에서도 대가였다. 이 경기를 담당한 허운 구심이 인천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편파판정 시비를 제기했다. "인천 출신 심판을 제외하지 않으면 경기를 보이코트 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해태는 똘똘 뭉쳤고, 5·6차전을 내리 따내 우승을 차지했다.

김 감독은 후에 편파판정 시비를 제기한 이유가 "이기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했다. 승리를 위해 필요했던 전략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김응룡 감독의 선택은 꽤 많은 팬들로 하여금 '승자독식주의'의 어두운 면도 보게 했다.

'야신'의 탄생과 가을야구의 패자

2000년대 들어 한국시리즈에서는 패자가 깊은 인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먼저 3패를 당한 두산이 내리 3연승을 거두고 승부를 7차전까지 몰고 갔다. 결국 패권은 현대의 차지였지만 당시 '부상병동'이었던 두산의 끈질긴 추격은 팬들을 사로잡았다.

▲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 ⓒ뉴시스
지금까지 패자로서 가장 큰 인상을 남긴 팀 중 하나는 2002년의 LG다. 아직까지 한국시리즈 우승만 없었을 뿐, 절대강자였던 삼성은 마해영과 이승엽의 연속홈런으로 정상에 올랐다. 역시 '우승청부사' 김응룡 감독이라는 말이 울려 퍼졌다.

그런데 김응룡 감독은 시리즈가 끝난 뒤, 당시 LG를 이끌던 김성근 감독을 추켜 세웠다. "(전력이 약한 팀을 갖고) 어떻게 저렇게 야구를 하는지 모르겠다. 신이 아닌가 싶다."

패자였지만 김성근 감독은 이 때부터 '야구의 신'이 됐다. LG가 김성근 감독을 사임시킨 뒤, 팬들은 야인이 된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항상 약팀을 지도해왔고, 재일교포로 '반쪽발이'라는 얘기를 들어가며 야구에 평생을 바쳐 온 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오늘'이 아닌 '내일'을 위해 뛰는 가을야구

13일 끝난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 이번 플레이오프는 매 경기 피말리는 1점차 승부라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두 감독 모두 '오늘'이 아닌 '내일'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완쪽)과 선동열 삼성 라이온즈 감독 ⓒ뉴시스

두산 김경문 감독은 4·5차전에서 패한 뒤 한결같이 "정규시즌 동안 못 본 선수들의 장점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어려운 순간마다 타선의 놀라운 응집력으로 기적처럼 다시 일어섰기 때문이다. 창단 때부터 구단의 모토였던 곰 특유의 끈기를 충분히 보여줬다.

특히 플레이오프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됐던 이용찬을 엔트리에 기용하지 않은 점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이미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불펜을 소진시켰던 두산은 마무리 투수 이용찬이 필요했다. 하지만 음주운전 물의를 일으킨 이용찬은 부름을 받지 못했다. 구단의 이미지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산은 시리즈는 놓쳤지만 스타일은 지켰다.

3차전에서 삼성 선동렬 감독의 선택도 의미심장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위기에 몰린 정인욱 투수를 왜 바꾸지 않을 걸까? 선 감독은 대답은 확고했다. "차우찬이 자원해서 불펜에 나가 몸을 풀었지만 만류했다. 오늘만 야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승부에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선 감독은 정규시즌에서 2위를 차지한 것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아직 팀이 리빌딩 과정에 있기 때문에 진짜 삼성 야구는 적어도 1~2년 뒤에나 가능하다는 입장을 여러 번 피력했다. 그래서 삼성 선수들이 플레이오프에서 아쉬운 장면을 연출할 때도 "이런 경험을 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상수 등 삼성의 어린 선수들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제 실력을 낼 수 있었다.

가을야구의 패자는 기분 좋게 부는 가을바람도 칼바람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1년 내내 잘 했던 팀이, 아무리 가을야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몇 경기 졌다고 패배자가 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그렇다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매번 승자가 되기는 매우 힘든 게 프로야구다.

그래서 패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앞서 소개한 니시모토 감독은 "내가 비운의 감독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선수들이 잘 해준 덕분에 나는 8번이나 일본시리즈에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운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잔인한 승패의 이분법은 가을야구 감상에 절대요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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