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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춧값 파동,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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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배춧값 파동, 끝나지 않았다"

[이정전 칼럼] "'농협 바로 세우기'가 해법이다"

정부 얘기가 나오면 으레 튀어나오는 불만이 두 가지 있다. 그 하나는 "정부는 왜 이렇게 귀찮게 굴고 못 살게 구는가"이다.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이나 기업하는 사람들이 이런 불만을 아주 자주 토로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도대체 기업 못해 먹겠다"고 이들은 밥 먹듯 말한다.

정부에 대한 다른 종류의 불만은, "정부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라는 불만이다. 이번 배추 값 파동이 터지자 이런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일본 방송은 물론이고 <CNN>이니 <월스트리트 저널>이니 하는 유명 외국의 언론매체도 우리나라 배추 값 파동을 보도하였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정부는 배추 값 폭등이 올해의 폭염, 폭우, 태풍 등 이상기후로 인한 흉작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상기후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10월 4일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이 지적한 바에 의하면, 올해 8월 말 채소류 생산량은 전년 대비 불과 13% 정도 감소하였다. 배추는 30% 정도 감소하였다는데, 그 정도로 배추 가격이 5배 내지 10배 가까이 치솟았다는 것은 무언가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있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농민단체는 4대강 사업 때문에 채소 재배면적이 줄어든 것을 의심하고 있다. 경상대학교경제학과 장상환 교수가 지난 4월에 "4대강 사업으로 하천둔치 경작지가 줄면 시설채소 재배 면적이 16.4% 감소해 채소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이미 예측까지 했다는데, 이 예측이 적중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것 같다. 농민단체에서는 10~20% 줄었다고 보는 반면 정부는 1~2% 줄어들었을 뿐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허나, 시장을 탓하는 목소리도 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10월 3일 "배추 중간 유통 과정에서 사재기를 하는 업자들이 있다"며 배추 값 폭등을 유통업자들 탓으로 돌렸고, 국세청도 유통업자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산지에서 농민들이 1천원에 출하했던 배추가 소비자에게 1만5천원에 팔렸던 까닭은 중간유통과정에서 폭리를 취하는 이들이 있었던 때문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농산품의 유통과정이 매우 복잡하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유통과정을 단순화하고, 악덕 유통업자들을 철저히 색출해서 엄벌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 출하가 끝난 배추밭. ⓒ프레시안(이경희)

그러나 배추 값 파동은 그런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악덕 유통업자를 들먹이는 것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우려가 다분히 있다. 이번 배추 값 파동은 농산물 생산 및 유통과 결부된 고질적 문제의 한 단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파동이 어디 이번뿐이었던가. 불과 몇 년 전에 양파가격 파동이 있었다. 어느 해인가는 배추풍작으로 가격이 폭락했다고 해서 화가 잔뜩 난 농민들이 멀쩡한 배추밭을 갈아엎어서 배추를 땅속에 파묻어버렸다.

단순히 유통과정을 탓하기에 앞서 왜 악덕 유통업자들이 판을 치는지, 왜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는지부터 근원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산지에서 농민들이 재배한 채소는 대부분 '산지유통인'이라고 불리는 상인들에게 '밭떼기' 형식으로 팔린다. 산지 농민이 배추 한포기에 1000원에 팔았다고 하니, 밭떼기 할 때 유통 상인이 계산해본 가격은 아마도 바로 그 정도였을 것이다. 이 가격은 배추를 수확했을 때의 가격이 아니라 수확량이 어느 정도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추정된 가격이다. 농민들은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가격이라고 불평한다. 그러나 비료값, 농약 값, 재료값 등 각종 비용은 치러야 하지만, 막상 현금을 갖고 있지 못한 농민들 입장에서는 이런 불리한 거래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산지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 방식이 권장되고 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욱이나 나이 많은 농민들이 대부분인 우리 농촌의 현실에서 직거래는 비현실적인 처방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을 놔두고 왜 굳이 그런 비현실적인 대안을 권고한단 말인가.

엄밀히 경제논리로만 따진다면, 유통업자들에게도 욕을 할 이유가 없다. 시세에 밝은 유통업자들은 벌써 두어 달 전부터 금년의 작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을에 배추가격이 오르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가격상승이 뻔히 예상되면 투기를 위해서 배추를 매점매석하는 것은 당연하다. 유통업자들은 경제학자들의 가르침대로 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런 그들을 무슨 이유로 탓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원래 농산물에는 가격파동의 문제가 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경제학 교과서에도 가격 폭등과 폭락의 예로 농산물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바로 이런 어려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농협이라는 것이 만들어졌고 그리고 그 뒤에는 농림부가 있지 않은가? 농협의 본래의 책무가 무엇인가? 산지농민들로부터 농산물을 적정가격에 매입해줌으로써 이들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해주는 한편, 매입한 농산물을 저렴하게 시장에 공급함으로서 국민들에게 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번 경우에도 농협이 본래의 책무에 충실해서 '밭 떼기' 상인들 대신 농협이 직접 산지농민으로부터 적정가격에 배추를 대량 매입해 두었다가 가을에 이윤을 붙이지 않고 적정가격에 시장에 풀어놓았더라면 아마도 배추 값 파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농협은 영리단체가 아니다. 설령, 이상기후 탓으로 물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농협직원이 배추 유통상인 만큼만 사태파악에 주의를 기우렸다면 틀림없이 가격상승을 예상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농림부의 지원을 받아 이미 오래 전에 돈을 싸들고 중국으로 뛰어 들어가서 질 좋은 배추를 매입해서 일찌거니 시중에 풀어놓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배추 값 파동을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 농협은 이런 일을 실제로 하지 못했을까? 아니, 왜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까? 농협이 농민의 복지나 국민의 밥상은 안중에도 없고 은행놀이에만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농민은 날로 말라가는데 농협은 돈놀이로 날로 비대해지고 있다는 말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나돌았다. 그래서 농협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지도 퍽 오래 되었다. 농협은 신용사업에서 번 돈을 경제사업에 대폭 투입함으로써 본래의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방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얘기도 늘 나돌았다. 어떻든 개혁을 해야 하는데 왜 개혁이 그다지도 안 되고 있는가? 농협의 로비활동이 그렇게 센가?

배추 값 파동으로 여론이 들끓자 농림부도 농협개혁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농림부가 과연 농협을 진짜 농민을 위하는 기관으로 전면적으로 개혁할 수 있을 것인지는 농림부의 과거 행적에 비추어 볼 때 극히 의심스럽다. 쌀이 철철 남아도는 판국에 농림부는 과거 새만금간척지에 서울시 면적에 버금가는 광활한 논을 조성해야 한다고 우겼던 부서가 아닌가. 그리고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새만금방조제 건설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던 부서가 아닌가. 새만금간척지는 쌀농사 이외의 용도로 전용되는 일은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부서도 농림부다. 그 새만금간척지가 산업용지로 전용되고 있는데도 한 마디 반대도 못한 부서가 또한 농림부다. 그러니 그런 농림부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뜻있는 우리 국민들이 진실을 파악하고 농협과 농정의 철저한 개혁을 촉구하며 그 결과를 철저하게 감시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어 보인다. 우리 국민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배추 값이 조금씩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 일이 절대 아니다. 이번 배추 값 파동이 농협과 농정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면 너무 허황된 기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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