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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만난 미친 거리의 전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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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만난 미친 거리의 전도사들

[화제의 음반]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포스트카즈 프롬 어 영 맨]

대형 기획사에서 꾸준히 앨범을 내며 공산주의, 혹은 무정부주의를 설파하는 뮤지션은 존재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다. 그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다면 더욱 그렇다.

"왜 독립레이블이 아니라 대형 자본과 결탁했나"는 질문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이론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만큼 돈은 더 많이 벌겠지. 존재 자체로 체제를 농락하기 위해? 대가는 돈이지. 세계 각지에 흩어진 동지(?)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그 돈은 모두 그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겠지.

어떤 대답도 대규모 자금 거래를 약속한 계약서에 남은 그들의 사인을 온전히 정당화하지 못한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유투 등의 밴드가 모두 이 굴레에 갇혔다(심지어 유투는 대규모 탈세를 적발당해 망신을 샀다). 핑크 플로이드는 어느새 음악산업의 공룡이 돼 버린 자신 스스로를 조롱하는 노래(Have a Cigar)를 부르기도 했다. 역시 잘 팔린 앨범에서. 갱 오브 포(Gang Of Four)와 같은 길을 걸은 뮤지션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음악산업에서 이상은 이상의 영역으로만 남아있는 게 가장 안전했다. '잘 팔리는 아이템' 이상을 바라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 역시 마찬가지 딜레마에 빠졌다. 그들은 태생부터가 감탄과 선망의 대상이 아닌, 조롱과 비판의 대상으로 몰락하기 쉬운 존재였다. 방송에 나와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쇼를 하든, 어느 인디밴드보다 더 신랄한 비판적 가사를 쓰든 매체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파시즘을 방관하면 다음 차례는 당신의 아이들'이라는 외침에 대중은 차가운 비웃음, 혹은 우상을 바라보는 선망의 시선으로 그들을 에워쌌다. 2008년 들어서야 사망신고된 리치 제임스(기타)가 진정성을 보이겠다며 행한 자해도 가십난을 채울 뿐이었다. 그들은 '주목받는 스타 아이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미 출발부터 그들은 체제 안으로 들어왔다.

대형 제작사가 그들에게 구애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이들이 데뷔앨범 [제너레이션 테러리스츠(Generation Terrorists)]를 발매하며 공언하던 "최고의 앨범 한 장만 내놓고 사라지겠다"던 약속은 애초에 지켜질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왜 긴 세월을 견뎌 지금껏 살아남았는가, 왜 평단의 호응까지 얻는 대형 밴드로 우뚝 섰는가. 이들은 선명한 태도가 던지는 불편함과 시크함을 넘어서는 무기를 갖고 있었다. 듣는 이를 한 방에 무너뜨리는 사운드의 힘이었다. 되짚어보면, 소위 '좌파밴드'로 분류되는 이들 중 세계적 인기를 누린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미덕이었다.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죽는다. 대신 엄청난 추종세력을 거느린다. 이들 중 극히 적은 일부라도 이들의 메시지에 공감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누군가는 인생 노선을 바꿀수도 있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Postcards From A Young Man] ⓒ소니뮤직 제공

2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들을 일관되게 지지하는 팬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밴드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선명하고도 우직한 곡쓰기 솜씨였다. 특유의 '예쁜 멜로디와 강성 사운드'의 조합은 메시지와 상관없이 대중적이었다. 메시지가 머리를 때려도 멜로디는 가슴을 울렸다. 앨범 전체가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했던 역작 [더 홀리 바이블(The Holy Bible)]에서도 이들 특유의 솜씨는 금세 귀를 사로잡았다.

10월 발매된 열 번째 앨범 [포스트카즈 프럼 어 영 맨(Postcards From A Young Man)]에서도 이들은 기존 노선을 버리지 않았다. 단번에 귀를 잡아채는(그러나 이젠 구닥다리 스타일인) 멜로디와 펑크(Punk)의 조합,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의 내지르는 보컬, 짧은 시간 안에 절정으로 치닫는 곡 전개, 군데군데 숨겨진 서정성까지 과거 스타일 그대로다. 그만큼 새로운 음악적 성취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회색이 짙은 메시지 대신 성찰하는 곡들의 비중이 늘어났다. (퍼니 게임에 출연한) 배우 팀 로스가 스스로를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앨범 커버로 쓰인 게 이를 상징한다.

에코 앤드 더 버니맨의 이언 맥클럭의 목소리가 가세한 <섬 카인드 오브 너싱니스(Some Kind Of Nothingness)>는 무대에서 싱얼롱을 연출하는 모습이 쉽게 연상되는 곡이다. <(잇츠 낫 워) 저스트 디 엔드 오브 러브((It's Not War) Just The End Of Love)>는 이들이 이른바 '브릿팝군'에 포함돼 롱런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에브리싱 머스트 고(Everything Must Go)] 시절을 곧바로 연상시킨다.

전설적인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존 케일이 피아노를 연주한 <오토-인톡시케이션(Auto-Intoxication)>는 [The Holy Bible]을 연상시키고, 건스 앤드 로지즈, 벨벳 리볼버의 더프 맥케이건이 베이스를 연주한 <어 빌리언 발코니즈 페이싱 더 선(A Billion Balconies Facing The Sun)>은 이들의 성공적 재기작 [센드 어웨이 더 타이거즈(Send Away The Tigers)] 시절 만든 곡이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게 한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지독할 정도로 우직하다. 상당수 뮤지션들이 변화의 계기를 외부에서 찾는다면, 이들은 끊임없이 과거를 되 파들어 간다. [노 유어 에너미(Know Your Enemy)], [라이프블러드(Lifeblood)] 등이 하강곡선을 그릴 때도 이들은 과거시절의 사운드에서 해답을 찾았고, 급기야는 리치 제임스가 남긴 메모를 모아 초기 앨범의 탐미주의를 되살린 후기 역작 [저널 포 플레이그 러버즈(Journal For Plague Lovers)]를 만들었다.

[저널…]이 [더 홀리 바이블]의 강경함을 되살렸다면 이 앨범은 [에브리싱 머스트 고]의 대중성을 가져왔다. 앞으로도 이들의 이율배반적 행보는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 같다. 밴드명(미친 거리의 전도사들)이 이처럼 어울리는 팀도 흔치 않다.

▲왕년의 꽃미남들도 세월의 흔적을 거스르진 못한다. ⓒ소니뮤직 제공

/이대희 기자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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