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아들은 지난 7월 한여름 거리에 나앉았다. 얼마 후 비정규직 어머니는 해고당하고 암을 얻었다. 건설 일용직 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산재로 숨졌다. 슬픈 소설이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비정규직 가족의 기막힌 현실이다.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의 조합원 김 모 씨는 지난 7월부터 서울 서초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동희오토 사업장은 일명 '기아차 서산공장'이라고 불리면서 기아차의 '모닝'을 생산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로 100% 채워진 곳이다. 이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노조를 결성하려던 김 씨는 업체 폐업 등의 형식으로 해고됐고, 이에 해고 노동자들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직접 복직을 요구하며 현대차 본사 앞을 떠나지 않고 있다.
김 씨가 부친의 사고 소식을 접한 건 지난달 13일. 7년 전부터 건설 일용직에 뛰어든 부친은 한진중공업이 시공하는 충북 충주의 귀례-목계간 국도 확장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지반이 붕괴되는 사고를 당했다. 바닥의 흙을 다지는 장비인 타이어롤러에 타고 있던 그는 장비와 함께 추락해 횡격막이 파열되고 늑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가 지난 2일 숨졌다.
김 씨와 유족들은 한진중공업 측에 사고 원인과 사 측의 안전관리체계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부친이 사용한 장비는 한진중공업의 하청을 받은 한진건설기계에서 임대받았기에 산재 신청은 하청업체를 사용주로 할 수밖에 없었지만 현장의 안전을 감독하는 책임은 원청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족과 함께 협상에 참여한 이청우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은 "올해 여름에 유독 비가 많이 와서 사고가 일어난 전날에도 공사가 중단됐었다"며 "일부 토사가 유실되는 등 지반이 약해졌는데도 작업 가능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가 강행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 조사 과정에서도 진술이 엇갈렸다. 숨진 부친의 동료들은 공사 현장의 신호수가 멀리 떨어져 있어 자신들이 사고를 처음으로 목격하고 부친을 장비에서 끌어냈다고 하는 반면, 사측은 신호수가 제대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부친이 경고를 무시하고 사고 지역으로 장비를 끌고 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족들은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 등에 사측이 공사를 강행하면서 진술을 조작하고 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4일로 예정됐던 발인식도 연기한 상태다.
이청우 조합원은 "비정규직 아들과 어머니는 해고 통보를 받고, 아버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원청회사의 책임있는 답변 하나 듣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한 집안이 모두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현실 자체가 슬프고 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이 임금을 덜 받고 고용이 불안하다는 문제를 떠나 한 가정을 사실상 파탄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며 "돈이 많은 대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집안이 싸움을 벌인다는 사실 자체가 불공평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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