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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본주의는 소련 붕괴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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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본주의는 소련 붕괴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기고] "금융시장, 심장 박동이 멎었다"

세계 금융 위기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났다. 그 이후 전 세계에 우글거리는 경제 '전문가'들은 한 달 아니 때로는 1주일 단위로 세계 경제의 전망에 대해 정신 분열에 가까운 '예측'을 쏟아놓았다. 회복세가 분명하니 '출구 전략'을 고민할 때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가 다음 주에는 '더블딥'의 공포 이야기가 나왔다가 등.

이 '전문가'들이 태워주는 롤러코스터에 실려 빙빙 돌다 지친 이들은 이제 경제 위기 따위는 차라리 잊고 살기로 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금융 위기는 착실히 자라나서 올해 초 그리스와 유럽을 시작으로 하여 지구적인 재정 위기로 비화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금융 위기도 재정 위기도 전혀 새로운 사건도 끔찍한 위기도 아니라고. 맞다.

하지만 지구적 차원에서 금융 위기와 재정 위기가 터진 것은 20세기뿐이었고, 그때마다 세계 경제 전체가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21세기의 벽두가 되자 1) 지구적 차원에서 2) 금융 위기와 3) 재정 위기가 함께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세 가지의 조건이 한꺼번에 맞물린 것은, 단언컨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미증유의 사태이다. 이제 우리의 세상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지난 30년간 지구를 지배해왔던 지구적 금융 자본주의는 이제 어떻게 바뀌어 가는 것일까.

토론토의 요크 대학(York University)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조나단 닛잔(Jonathan Nitzan) 교수가 방한해 강연회를 갖는다. 오는 29일 오후 4시 서강대학교 다산관 101호에서 서강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소와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 공동 주최로 강연이 있을 예정이며, 다음날인 9월 30일 오전 10시에는 서울시 정동 프란치스코 강당에서 '금융개혁과 투기자본과세를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경제정의실천연합, 사무금융연맹, 새세상연구소, 상상연구소,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투기자본감시센터, 참여연대(참관))'가 준비한 심포지엄의 1부로 다시 한번 강연회를 갖는다.

닛잔 교수는 심숀 비클러(Shimshon Bichler)와 함께 <Capital As Power: A Study of Creorder (London: Routledge, 2009)> 등을 통하여 신고전파 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모두 기각하고 자본주의를 하나의 권력 양식(mode of power)으로 파악하는 새로운 이론적 시각을 개진한 바 있다. (국내에는 <권력자본론: 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을 넘어서> (홍기빈 역, 삼인, 2004)가 소개된 바 있다.)

이번에 닛잔 교수가 발표할 최근 논문 "체제적 공포, 현대 금융, 자본주의의 미래(Systemic Fear, Modern Finance and the Future of Capitalism)"는 그러한 "권력 자본 이론(Capital as Power)"에 근거하여 2008년 이후에 전면화된 세계 경제 위기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우리의 세계가 지금 어떤 국면에 처해 있는지에 대해서 독특하고 흥미로운 논지를 펼치고 있다.

이틀에 걸쳐 진행될 강연과 그 근간이 되는 그 논문의 내용은 닛잔 교수의 정교하고 복잡한 논리를 담고 있기에 짧게 요약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논리를 따라가는 데에도 상당한 참을성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럴 가치는 충분하다. 그 글을 끝까지 따라가 보면 참으로 충격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결론에 도달할 것이며, 그 결론은 논리적 치밀함과 경험적 증거로 뒷받침되고 있어 등골이 오싹한 한기를 느낄 것이다.

요컨대, 2008년 이후 아니 이미 2000년 이후 미국과 세계의 자본 시장은 온갖 자산의 미래 수익성을 현재가치로 할인하여 가격을 매기고 그에 근거하여 전 세계의 자원 배분을 결정한다는 역동적 역할을 멈춘 상태이다. 현대 금융이 자리를 잡은 20세기에 있어서 이와 같은 시대는 단 한번, 금융 자본주의가 실제로 종말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미래조차 풍전등화였던 1930년대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현재 지구적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투자가 등 지배 세력이 이 금융 자본주의라는 권력 양식을 계속 유지하는 데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이며, 이에 대한 피지배 계층의 복종을 얻어낼 자신감 또한 잃어버린 상태임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금융)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체제적 공포'가 지배하는 현재의 상태는 다른 역사적 사례들 - 1989년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이나 이스터 섬의 환경 재난 등 - 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권력 양식이 근본적으로 몰락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증후라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실제로 (금융)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붕괴의 가능성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닛잔 교수의 복잡하고 정교한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들의 논문은 http://bnarchives.yorku.ca/289/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는 이 논문의 전문 번역을 누리집(http://gpe.or.kr)에 올릴 것이다.)

여기에서는 양일 간에 있을 닛잔 교수의 강연으로 독자들을 모셔(혹은 꼬셔) 들이기 위한 '티저' 예고편으로서, 1930년대와 2000년대의 미국 및 세계 주식 시장의 동향의 놀라운 일치를 보여주는 차트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자본화: 현대 금융 자본주의의 알고리즘

지금은 거의 사라진 공산주의 체제와 현대 금융 자본주의 체제는 대극점의 경제 질서로 여겨진다. 그 핵심적인 차이점은, 공산주의에서는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 조직, 배분이 중앙 관료 기구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이것이 무수한 시장의 자발적인 가격 형성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 금융 자본주의의 실상과는 어긋나는 관찰이다. 그렇게 "무수하고도 자발적인 가격 형성 시장"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로 경제 질서의 변동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대규모 생산 조직들 - 대기업과 정부 - 이다.

그리고 이들의 행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금융 시장 특히 지구적 규모의 자본 시장 - 오늘날 '시장'이라고 하면 보통 이를 일컫는다 - 에서의 가격 변동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공산주의 체제에서 공산당의 중앙 계획 기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현대 금융 자본주의에서는 지구적 자본 시장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의 자본 시장의 작동 알고리즘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본화"이다. 즉, 특정한 자산이 미래에 가져올 수익의 흐름을 리스크와 미래가치(hype) 그리고 현행 이자율을 감안하여 현재가치로 할인하는 하나의 의식(ritual)이다. 이것이 20세기 중반 이후 이론적 제도적으로 현실화된 금융 자본주의가 그 이전의 금융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예전의 금융이 과거에 이루어진 경제의 실적을 보면서 이를 행동의 근거로 삼아 작동하는 것이었다면, 현대 금융은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미리 예견하여 그것을 현재가치로 포착하는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이것이 지구적 자본 시장이 지구적 경제를 지난 몇십년 동안 엄청난 힘으로 재구조화하며 지도해올 수 있었던 이유이다. 리스크와 미래가치를 계산으로 포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굳건한 신앙에 근거하여 그것에 현재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를 '가격 신호'로 삼아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 조직, 배분을 지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스트리트>의 속편인 <월스트리트-머니 네버 슬립스>의 한 장면. <월스트리트>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금융인들의 탐욕이 잘 묘사돼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시장은 옛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기구와 비슷한 역할을 담당한다. 금융자본주의는 옛 사회주의 체제의운명을 피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체제적 공포

그런데 이 무적의 아킬레스처럼 보이는 현대 금융 자본주의에도 뒤꿈치는 있다. 미래의 불안정성에 대한 취약성이 그것이다. 물론 미래는 본래 불확실한 것이기에 이런저런 개별적 위험 요소는 항상 있게 마련이며, 이는 리스크로 포착하여 자산 가격에 반영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체제(system) 전체에 대한 불안정성은 어떻게 되는가? 석유가 떨어져 버린다면? 지구 온난화의 악몽이 현실이 되어버린다면? 지정학적 불안 요소가 정도를 넘어선다면? 피지배 계층이 지구적 차원에서 광범위한 저항을 벌인다면?

이렇게 '개별' 수익의 흐름이 아닌 '모든' 수익의 흐름을 그것도 근본적으로 흔들어버릴 사회적 정치적 생태적 요인들은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자본화는 미래 수익의 흐름을 영원(perpetuity)이라는 시간 지평으로 놓을 때에 작동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다. 그런데 미래 어느 시점에 아예 수익 흐름의 존재 자체를 좌우할 사건이 존재한다면? 이 경우, 단순히 자산 가격의 하락이 아니라 아예 자본화라는 의식 자체가 붕괴되어 버릴 것이다.

이러한 '체제적 공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역사상 존재한 모든 사회 체제는 예외없이 이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현대 금융 자본주의가 특히 이에 취약하게 되는 원인이 있다. 바로 자본화 자체의 '미래 지향성'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지구적 자본 시장이 미래 수익의 모든 가능성을 포착하여 즉시 현재가치로 반영하여 현재의 세상을 역동적으로 재구조화하는 위력의 원천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런데 그 가능성이 '불안과 공포'일 때에도 이 장치가 똑같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대규모 투자가들의 마음 속에서는, 올지 어떨지조차 알 수 없는 미래의 걱정거리도 감지되는 그 즉시 가장 심각한 현재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이는 이들의 투자 행태에 결정적 영향을 주어 '현재의' 경제 전체의 작동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뒷서 가는 자본 시장: 1930년대와 2000년대

이렇게 '체제적 공포'로 인해 자본화라는 알고리즘 자체가 작동을 멈추고 현대 금융 자본주의가 19세기 이전의 그것처럼 힘없는 수동적인 과거 지향적 체제로 돌아가는 일이 정말 벌어질 수 있을까? 닛잔과 비클러는 그런 일이 20세기 이후 단 두 번뿐이지만 실제로 벌어졌었음을 보여준다. 1930년대,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이다.

▲ ⓒ프레시안

위에 있는 그래프는 187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미국 S&P 500대 기업의 주가와 주당수익(EPS)의 두 시계열을 나타내고 있다. '미래 지향적' 자본화 알고리즘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면 주가의 형성은 실제의 주당수익 흐름과 상당한 분산을 보여야 마땅하다. '현재' 발표되는 주당수익이 어떠하든, 투자자들이 정말로 미래의 여러 가능성을 미리 내다보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면 주가로 반영되는 그 현재가치는 항상 주당수익과 괴리할 수밖에 없고, 주가의 변동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주당 수익의 변동을 미리 앞서가는 특징을 보여야 할 것이다.

먼저 1919년까지의 기간은 아직 이러한 '미래지향적' 현대 금융이 자본 시장의 규범이 되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 기간의 투자자들은 대부분 주식 배당금에 주된 관심을 두어 행동하는 '과거 지향적' 행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두 개의 시계열은 그 등락이 대단히 긴밀하게 함께 가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1차 대전이 끝나고 이 자본화라는 의식이 자본 시장의 작동을 지배하는 알고리즘으로 자리잡고 난 뒤부터는 그 패턴이 명확하게 달라진다. 주가의 변동은 주당수익의 변동과 거칠게 괴리하기 시작하면서 자본 시장이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심장 박동(vital sign)을 보여준다.

이는 1940년 이후 2000년까지의 기간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나 자본화의 이론적 제도적 장치가 발달하면서 그 분산도 점점 더 커져서, 닛잔과 비클러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40년에서 2000년까지의 기간 동안 그 두 시계열의 변화율의 상관계수(coefficient)는 실제로 마이너스로까지 떨어진다.

그런데 1930년대와 2000년대는 그러한 괴리가 사라짐을 볼 수 있다. 자본 시장의 역동적인 심장 박동이 멈추어버린 셈이다. 이 기간 동안 투자자들은 실제 수익의 발표가 벌어지면 그것을 뒤따라 가면서 행동했던 패턴이 명백하게 보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1930년과 2008년의 극단적인 수익 하락이 나타났을 때에도 주가는 자신있는 미래 전망에 근거하여 힘차게 저항하기는커녕 이를 순순히 따라서 그 깊은 심연으로의 고행으로 끌려가는 "매가리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미국 자본주의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지면의 한계로 여기 싣지 못하지만, 닛잔과 비클러가 보여주는 2000년대를 전후한 전 세계 주식 시장에서의 두 시계열의 관계 또한 이와 완전히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30년대와 같은 상황일까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점을 볼 수 있다. 2008년에 벌어졌던 패닉이 아무리 요란하고 극적인 것이었다고 해도, 자본 시장의 심장 박동이 극히 약해진 것은 이미 2000년 닷컴버블의 붕괴 이후 10년간 지속되어 온 현상이며, 2008년의 사태는 단지 그것에 치명적 타격을 안겨 준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21세기로 접어든 지난 10년간 이미 지구적 자본 시장은 1930년대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미래 지향적인 성격을 상실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 금융 자본주의에서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 조직, 배분을 결정하는 최고 기구라고 할 지구적 자본 시장이 사실상 미래의 구상과 조직의 기능을 멈춘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닛잔 비클러는 1980년대 말 소련 경제가 이미 그 전 10년간 기능부전이 누적되어 온 중앙 계획 기구의 개혁에 실패하면서 붕괴하던 상황에 주의를 환기한다.

2000년대가 도대체 어떤 상황이었길래 이런 일이 지속되어 온 것일까? 그 성격은 1930년대와 비교 속에서 짚어볼 수 있다. 그 시대는 한마디로 앞에서 말한 '체제적 공포'가 투자자들을 지배하여 자본화라는 자본 시장의 알고리즘이 거의 붕괴하였던 때였다. 대공황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 도처에서의 사회적 정치적 불안,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대두, 뉴딜과 국가 개입으로 인한 경제의 구조 변환, 세계대전의 가능성 - 은 그야말로 투자자들로 하여금 미래의 시간 지평을 도저히 '영원'으로 놓아 그것에 기초하여 안심하고 미래 수익을 현재 가치로 고친다는 자본화의 의식에 아무런 신뢰를 가질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담론들 - 9.11 사태, 지구 온난화, 오일 피크, 지정학적 불안, WTO의 한계 등 - 이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그렇다면 우리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앨런 그린스펀을 필두로 하여 온 세계의 유력한 인사들이 하나같이 내어놓고 있는 '자본주의의 미래' - 이는 <파이낸셜 타임즈>지가 2009년 연재했던 칼럼 시리즈의 제목이다 - 에 대한 불안한 전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여러 질문들이 샘솟듯 나오게 될 것이다. 체제적 공포의 본질과 성격은 무엇인가? 무엇이 2000년대에 그것을 극대화시키고 있는가? 그리고, 이렇게 되었을 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어떠한 것인가? 이들의 논문을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29일과 30일에 있을 닛잔 교수의 강연에 와서 그에게 직접 듣고 묻기를 권한다.

(이 글의 요약본은 <이코노미 인사이트> 10월호에도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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