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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능력 뛰어난 투애니원의 데뷔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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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능력 뛰어난 투애니원의 데뷔앨범

[김봉현의 블랙비트] 명석한 절충 돋보이는 [To Anyone]

YG 엔터테인먼트의 여성 아이돌 그룹 2NE1이 첫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여기서는 코너 이름도 '블랙비트'인 만큼 철저히 흑인음악적인 관점에서 이 앨범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분명히 일러두었다. 흑인음악적인 관점!

2NE1의 등장이 신선했던 까닭에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그들이 들고 나온 음악이 그러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이돌'의 데뷔곡이 <Fire>같은 곡이라는 점이 신선했다. 물론 2NE1이 90년대 미국 본토를 떠올리게 하는 소위 '정통힙합'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Fire>는 당장 빌보드에 올려도 될 정도로 동시대성과 세련미를 갖춘 몰입도 최강의 댄서블한 힙합 곡이었고, 2NE1 멤버들은 '예쁜 척'은 휴지통에 살포시 버려둔 채 무대를 마구 휘젓고 다녔다. '귀여운 척'과 '섹시한 척'이 양분하는 여성 아이돌 동네에서 신선한 충격이라면 충격이었다.

또한 미니 앨범 [2NE1]은 <Fire>를 비롯해 흑인음악으로 분류 가능한 곡들이 대부분 채워져 있었다. 소프트 알앤비 <In Da Club>이 있었고 <Fire>보다 더 강력한 <Pretty Boy>가 존재했다. 아이돌 그룹 멤버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치를 뛰어넘는 CL의 스타일리시한 랩 솜씨가 그들의 흑인음악적인 이미지를 한층 더 강화했음은 물론이다(지-드래곤의 <The Leaders>를 들어보라). 즉 2NE1은 미국 메인스트림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여성 아이돌 그룹이었다.

▲투애니원의 풀-렝스 데뷔앨범 [To Anyone] ⓒYG엔터테인먼트
이러한 그들의 첫 정규 앨범을 흑인음악 애호가 입장에서 바라보면, 사실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이미 디지털 싱글로 공개되었던 앨범 후반부 곡들이 대체로 흑인음악의 스타일을 지키고 있는 반면 새롭게 공개된 앨범 전반부 신곡들은 일렉트로닉-팝 혹은 댄스-팝에 가깝기 때문이다. 철저히 흑인음악적인 관점에서 글을 쓰고 있으므로 <Can't Nobody>, <Go Away>, <난 바빠>같은 곡의 완성도 따위는 중요치 않다. 솔직히 말해 그냥 존재 자체가 마땅치 않다. 왜 2NE1까지 이런 곡들을 불러야 하는가? 세븐의 일렉트로닉 풀-파워 장전으로도 모자라단 말인가?

새롭게 뚜껑이 열린 곡 중에서 이 고독한 흑인음악 애호가를 가장 만족시킨 곡은 <박수쳐>다. 험난한 음악계에서 이리떼 같은 경쟁자들에게 밀려 비록 지금은 패배자로 살고 있지만 한 때 세계를 재패했던 래퍼 자 룰(Ja Rule)의 2003년작 <Niggas And Bitches>가 단번에 떠오르기도 하는 이 곡은, 그보다 더 정교하고 변화무쌍하다. 후렴이 약한 게 흠이나 비트 자체는 튼실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자 룰의 곡을 감상하고 넘어가자. 판단은 듣는 이의 몫이다(노파심에 말하면, 당연히 표절은 아닐지어다).



흑인음악적인 관점에서 글을 쓰고 있으므로(대체 이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거냐), 아무래도 앨범 후반부 곡 중심으로 말할 수밖에 없겠다. 박봄의 솔로곡 <You & I>는 한 2년 전만 해도 빌보드를 휩쓸었던 프로듀싱 팀 스타게이트(Stargate) 류의 알앤비-발라드 곡이고. CL과 민지의 듀오 곡 <Please Don't Go>는 엘엘 쿨 제이(LL Cool J)와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의 합작 <Control Myself>가 생각나는 전자음 가득한 클럽 트랙이다. 그런가하면 <날 따라해봐요>는 비트 자체만 본다면 여성 아이돌 그룹의 곡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앨범 내에서 가장 극단(혹은 최첨단)에 놓여 있는 곡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바로 '절충'이다. 기본적으로 2NE1(과 그들의 프로듀서들)은 본토의 메인스트림 흑인음악을 거의 동시대에 한국에서 충실하게 '재현'한다. 눈여겨볼 점은 거기에 더해 자기 식으로 소화해내려는 흔적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먼저 앞서 자 룰의 곡에서 보았듯이 언뜻 거친 남성 래퍼에게 최적화된 비트처럼 들리는 <박수쳐>는 후렴에 삽입된 박수소리와 간결한 멜로디, 특유의 가사로 격려가 혹은 응원가(?)로 다시 태어났다. <Please Don't Go> 역시 비트만 듣자면 영락없는 더리 사우스(dirty south) 스타일의 클럽 찬가로 분류할 수 있으나 후렴과 후반부에 도사리고 있는 멜로디 메이킹이 곡을 '대중가요'의 길목으로 이끈다. 또한 <날 따라해봐요>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친숙한 콘셉트 설정으로 곡의 감상을 한층 용이하게 한다.

▲투애니원의 데뷔앨범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뉴시스

마치 태양의 <나만 바라봐>가 사운드는 본토의 그것을 따르면서도 멜로디와 가사에 한국적 요소를 (잘) 부여해 '재현+α'라는 평가를 받았듯 이 곡들은 저마다 흑인음악의 본질과 대중가요의 감수성을 적절히 배합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성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계로 다가갈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YG 엔터테인먼트가 자신들의 포지션을 인지하고 그를 바탕으로 일정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디즈(Deez)와 진보 같은 알앤비/소울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면서 "아니, 한국인이 본토의 느낌을 이렇게까지 살릴 수 있다니!"라는 감탄사를 뱉을 수 있다면, 2NE1은 나로 하여금 "아니, <박수쳐>같은 비트가 음원차트 1위를 했다구?" 또는 "아니, <날 따라해봐요>같은 곡을 대중이 좋아한단 말이야?"라는 놀라움을 뱉게 한다.

컵에 물은 절반쯤 담겨 있다. 문제는 어떻게 보느냐다. 일단 나는 "컵에 물이 절반이나 남았네?"라고 중얼거리기로 했다. 하나씩 하나씩 벗겨 먹는 엑설런트처럼 하나씩 하나씩 익숙하게 만드는 거다. 후후.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결국 컵은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 세상은 흑인음악이 될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 흑인음악인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공자의 정명정신을 받들어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도록 하자. 끝.



*필자의 블로그에서 더 많은 음악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http://kbhm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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