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힙합과 농구의 관계를 다룬 최초의 랩 싱글과 마주하게 된다. 메이저 레이블과 최초로 계약한 래퍼 중 한 명이자 힙합 원로들을 언급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인 커티스 블로우(Kurtis Blow)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84년 발표한 앨범 [Ego Trip]에 <Basketball>이라는 싱글을 실었다. 잠시 가사를 살펴보자.
Basketball is my favorite sport
I like the way they dribble up and down the court
Just like I'm the King on the microphone so is Dr. J and Moses Malone
I like Slam dunks take me to the hoop
My favorite play is the alley oop
I like the pick-and-roll, I like the give-and-go,
Cause it's Basketball, uh, Mister Kurtis Blow
굳이 해석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닥터 제이와 모제스 말론이 위대한 NBA 선수였으며 '앨리 웁'이나 '픽-앤-롤' 등이 농구용어라는 것만 안다면 말이다. 무엇보다 지금 와서 보면 정말 깜찍한 가사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뮤직비디오는 앙증맞기까지 하다. 이 곡을 발표하면서 커티스 블로우는 NBA의 초청을 받았고 한동안 농구경기가 끝난 후 코트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윈-윈이다.
이 곡의 또 다른 가치는 바로 1984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NBA 애호가라면 누구나 알듯 1984년은 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가 이루어진 해라고 평가받는다.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하킴 올라주원, 존 스탁턴 등이 모두 이 해에 데뷔했다. 또, 매직 존슨의 LA 레이커스와 래리 버드의 보스턴 셀틱스 간 라이벌 구도 속에 치러진 1984년 결승 7차전은 최고의 명승부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규정짓기 좋아하는 혹자들은 1984년을 가리켜 NBA가 '과대평가된 검은 약물 중독자들(overpaid black drug addicts)'의 리그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걸출한 리그'로 거듭나게 된 시작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10년 뒤인 1994년에는 농구선수들이 모여 최초의 랩 컴필레이션 앨범 [B-Ball's Best Kept Secret]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샤킬 오닐, 제이슨 키드, 다나 바로스, 게리 페이튼, 세드릭 세발로스 등 90년대 NBA 팬들에게 반가운 이름들이 참여해 '랩'을 하고 있다.
▲NBA 스타들이 참여한 컴필레이션 앨범 [B-Ball's Best Kept Secret] ⓒImmortal |
물론 NBA 선수들의 랩 실력만을 가지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열린(?) 마음을 가진다면, 이들의 랩뿐 아니라 힙합과 농구의 공통점을 논하거나 멋진 삶에 대해 말하는 가사까지도 즐겁게 듣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솔로 앨범을 발표한 농구선수들도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역시 샤킬 오닐이다. NBA에 데뷔하기가 무섭게 래퍼로서의 커리어도 동시에 시작한 그는 1990년대 후반까지 4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로 많은 힙합 씬의 빅 스타들이 그를 도왔다. 특히 워렌 지가 참여한 감미로운 지-펑크 트랙 <My Dear>는 지금도 즐겨듣는 곡 중 하나다. 그러나 그는 언론과 팬에게 '랩할 시간에 자유투 연습이라 하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그의 자유투를 기억하는 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을지니).
워싱턴과 새크라멘토의 파워포워드 크리스 웨버는 C. Webb.이라는 예명으로 웨스트코스트 힙합 듀오 도그 파운드(Dogg Pound)의 래퍼 커럽트(Kurupt)를 대동해 <Gangsta! Gangsta! (How U Do It)>(1999)란 곡을 발표했다. 웨버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 하나는 그가 훗날 나스(Nas)의 2006년 작 [Hiphop is Dead]에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올린다는 사실이다.
이밖에도 '래퍼가 된 농구선수'는 많다. 앨런 아이버슨, 론 아테스트, 토니 파커 등등. 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여기서 멈추도록 하자. 21세기 최고의 힙합 아이콘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의 곧 나올 새 앨범 첫 싱글인 <Power>의 리믹스 버전에 코비 브라이언트가 참여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농구선수가 되고 싶은 래퍼도 있었다. 지금은 쇠락했지만 한 때 부흥했던 레이블 노 리밋(No Limit)을 이끌었던 마스터 피(Master P)는 샬럿 호네츠와 토론토 랩터스 입단에 도전해 시범경기에는 출전했지만 정규시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CBA와 ABA에서 뛰었다.
한편 영리한 라임 플레이로 알려져 있는 래퍼 캠론(Cam'ron)은 고교 시절 전도유망한 농구선수로 이름을 떨쳤다. 실제로 그는 듀크, 노스캐롤라이나 등의 대학에서 농구 장학생 제안을 받았으나 낮은 성적 때문에 진학하지 못했다. 아래 링크된 영상에서 그의 고교 시절 활약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다(참고로 이 영상에는 래퍼 메이스(Mase)도 나온다).
래퍼들의 가사 속에도 농구와 관련한 표현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거의 일상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ABA에서 뛰었던 농구선수 로니 린의 아들이기도 한 래퍼 커먼(Common)은 <Nuthin' To Do>(1994)에서 이런 구절(We use to hoop in my yard but now I dribble the rhyme/ It's like rain drops couldn't make our game stop)을 남겼고, 뉴저지 네츠의 공동 구단주이기도 한 제이-지(Jay-Z)는 <Hola Hovito>(2001)에서 절묘한 비유(I ball for real, y'all niggaz is Sam Bowie/ And with the third pick - I made the earth sick/ M.J., hem Jay, fade away perfect)를 선보였다. 이밖에도 수없이 많지만 역시 지면 관계상 패스.
최근 사례를 보자면, 이번 시즌 NBA 우승 트로피가 LA 레이커스에 돌아가자 서부 출신 래퍼들이 모여 <Lakers Anthem 2010>이라는 축가를 만든 적이 있다. 로이드 뱅스(Lloyd Banks)의 히트 싱글 <Beamer, Benz Or Bentley>를 활용해 만든 이 노래에서 그들은 보스턴 셀틱스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그리고 래리 버드와 르브론 제임스를 언급하며 자축과 조롱을 동시에 행한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거의 유일하게 주석이 눈에 들어온다. 실제로도 농구를 즐겨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자신의 세 번째 앨범 [Superior Vol.1 - This Iz My Life](2003)에 농구를 소재로 한 <Ballin' 2K3>를 이현도와 함께 작업해 수록했고, 길거리 농구 온라인 게임 '프리스타일' 주제곡 <Neva Lose>를 맡아 부르기도 했다.
여기까지. 이것으로 글을 마치기로 한다. 솔직히, 너무 많다. 체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다양하고도 중요한 사례들을 얼추 소개했다고 생각한다. 흥미를 가졌다면, 그 다음은 여러분의 몫이다.
흑인에게 힙합과 농구가 갖는 상징성과 존재감을 바탕으로 그 성공 신화(판타지)의 허와 실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관련한 것은 다음 기회에 보다 본격적인 주제를 잡고 논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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