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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우리를 버렸지만…"

[기고] "진실화해위, '한통련 진실'에 눈 감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서 강제 징용돼 일본에 끌려갔던 이들이 살던 곳에는 정식 지명이 없었다. 대신 이카이노(猪飼野)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돼지를 기르는 들판'이라는 뜻이다. 거대한 빈민가였던 그곳에서 고물 수집을 하며 살아갔던 조선인들은 사람이 아닌 돼지 취급을 받았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뒤에도, 재일 조선인들의 사정은 나아진 게 없었다. 여전히 그들은 극심한 차별에 시달렸다. 일본 사회의 전통적인 천민집단인 '부락민'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그들의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은 것은 조국의 분단이었다.

한반도가 둘로 갈리고, 서로 총을 겨누게 되면서 재일조선인 사회도 둘로 나뉘어 서로 삿대질 했다. 남한을 지지하는 민단과 북한을 지지하는 총련 사이에선 걸핏하면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 들려온 4·19 혁명 소식은 민단 청년들에게 새 바람을 일으켰다. 이승만 독재가 무조건 옳다고 믿었던 이들은 민주주의에 눈을 떴고, 이들은 독재를 지지하는 민단 지도부에 맞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5·16쿠데타가 바로 이어졌고, 박정희 정권의 조종을 받는 민단 지도부는 이들 청년들을 제명했다. 이들이 만든 단체가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이다.

이후 한청 회원들은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을 결성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의장으로 추대했다. 김 전 대통령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근거가 된 사건이다. 박정희 정권은 한민통을 이적단체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는 당시 정권이 간첩 사건을 조작한 결과였다. 해외교포 사회의 민주화 운동에서 구심점 역할을 했던 한민통은 훗날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으로 개편됐다. 한통련 활동의 주축 역시 재일 교포 1세에서 2, 3세로 바뀌었다.

그러나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이들에게 씌워진 '이적단체'라는 굴레는 여전했다. 그리고 얼마 전 진실화해위원회는 '한민통 반국가단체 규명사건'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가 한민통(현 한통련) 관련자들의 누명을 벗기는 일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진실화해위의 최근 행보를 떠올리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관련 기사: 진실화해위, 진실을 감추다) '이적단체'라는 굴레 속에서 평생 괴로워했던 이들은 다시 절망에 빠졌다. 손형근 한통련 의장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 '한통련의 진실' 관련 기사 모음
"조선 사람도 맞으면 아파하는구나"
유리창의 테이프 자국이 뜻하는 것은?
"조갑제 씨 저서가 민단-총련 화해 막았다"

부당한 진실화해위원회의 '각하' 결정

'각하'라는 문자를 보고 너무 심한 처사에 나는 나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난 7월 7일 진실화해위원회가 '한민통 반국가단체 규명사건'에 대한 '결정통지서'를 한통련에 보내왔다. '결정통지서' 내용을 요약하면 한통련 '반국가단체' 규정으로 한통련의 조직과 구성원이 심각한 인권침해를 받은 사실이 없으므로 '반국가단체' 규정의 부당성을 조사할 필요가 없다, 즉 '각하'라는 것이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 대해 한통련은 2006년 한통련에 대한 '반국가단체' 규정의 부당성을 조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요청을 받아들여 조사가 개시되었다. 2008년 5월 나(당시 한통련 부의장)는 서울 진실화해위원회 사무소에 가서 조사에 응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가 일본에 와서 곽동의 씨(한통련 최고고문), 김정부 씨(당시 한통련 의장·현 상임고문) 등 관련자에 대한 사정청취를 했다.

조사에 대해 우리들 한통련 간부는 한통련의 운동사, 강령, 규약을 설명함으로써 1973년 결성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통련이 자주적인 입장에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해왔음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북한 또는 조선총련으로부터 지시나 지원을 일체 받지 않았다는 것도 설명하였다. 아울러 구체적 자료를 토대로 한민통(한통련 전신)을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1978년 대법원 판시가 아무런 근거 없는 부당한 것임을 호소했다.

그리고 4년에 걸친 조사 결과가 '각하'였다. 나는 이 부당한 판결에 강한 분노를 느끼면서 한통련 의장으로서 '각하' 결정에 대한 이의서를 8월 26일 진실화해위원회에 보냈는데 여기 그 취지와 함께 나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고자 한다.

'결정통지서'와 함께 첨부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개요'를 꼼꼼히 읽어보면 한통련이 '반국가단체'라는 근거나 증거는 아무것도 없으며 조사결과로서는 자연히 "한통련에 대한 '반국가단체' 규정은 부당하다"라는 판정이 나와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실화해위원회가 그러한 올바른 판정을 내리지 않았던 배경에는 보수정권의 영향아래 적절하지 못한 정치적 판단이 있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가령 과거에 인권침해 사건이 없었다하더라도 한통련을 아무런 근거 없이 '반국가단체'로 조작한 대법원의 '판시'는 그것 자체가 부당하며 중대한 인권침해이다.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반국단체'의 수괴의 최고형은 사형이며 구성원은 물론 구성원과 대화하거나 통신한 사람도 엄벌에 처한다는 것이다. 부당한 규정으로 한통련은 정치적으로 손발이 묶여있는 상태이다.

▲ 김대중 구명 운동에 동참한 일본 노동조합 총평의회(왼쪽) 한민통이 제작한 영화 어머니의 한 장면(오른쪽). 전태일 분신을 소재로 한국의 노동 현실을 고발했다. ⓒMBC

현 정권 출범 후 인권탄압이 빈발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한통련 구성원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사건이 없다고 판정했으나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이후 한통련 구성원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가 잇따르고 있다. 작년 4월에는 방한한 나와 이정수 조직차장이 인천공항에서 국가정보원의 강제 압수수색을 받는 심각한 인권침해사건이 발생하였다. 1년전부터 '반국가단체' 규정을 이유로 한통련 간부의 여권발급에 엄격한 제한이 가해지고 있으며 한통련 구성원이 참가하는 각종 방한계획에 대해 국가정보원이 강제수사를 시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통련 활동가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국가정보원의 탄압의 마수가 뻗치고 있다. 한통련 회원단체인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이 운영하는 한국어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재일한국인 청년이 영사관에 여권발급을 신청하자 면접한 영사가 그 청년에게 "반국가단체 한통련의 청년조직인 한청에서 탈퇴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통련 간부 가족이 여권발급을 신청하면 그 가족에게 영사는 "한통련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하고 조사가 시작된다. 실지로 한통련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여권 유효기간이 절반으로 단축된 사례도 있다.

곽동의 한통련 최고고문은 국가유공자(6.25 전쟁 지원병)으로서 국가의 연금이 지급되고 있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국가유공자의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여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성립되려 하고 있다. 동아일보 등에 의하면 이 법률을 발의한 의원들은 '반국가단체'인 한통련 구성원인 곽 최고고문을 연금지불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해 이 법률을 발의했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명박 정권 아래서 한통련 구성원에 대한 인권침해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참여정부' 아래 2003년과 다음해 2004년, 2회에 걸쳐 한통련 '해외민주인사 방한단'이 실현되었고 또 그 직후에 정부로부터 한통련 구성원에게 정식 여권이 발급됨으로써 사실상 한통련은 명예를 회복하였다. 효력을 잃고 유명무실해진 한통련 '반국가단체' 규정을 또다시 소생시켜 그것을 탄압책동에 이용하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권이다. 현재의 한통련 구성원에 대한 치안당국의 감시·탄압 양상을 보면 과거 독재시대와 전혀 다름이 없다.
따라서 이번 진실화해위원회의 '각하' 결정은 전적으로 틀렸으며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한통련 구성원에 대한 심각한 인권탄압을 재조사하고 한통련 '반국가단체' 규정의 부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통련은 굴복하지 않는다

부당한 '각하' 결정에 대해 우리는 억울한 심정으로 가득하지만 굴복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한통련 '반국가단체' 규정을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김재화, 배동호, 곽동의 씨(역대 의장) 등 한민통 운동을 지도한 1세 선생님들의 업적과 명예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통련의 민주화와 통일실현을 위한 투쟁이 훌륭한 애국운동으로서 국가의 표창을 받는 일이 있을지언정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로 간주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1세의 투쟁을 계승하는 우리들 2세, 3세들의 해외에서의 헌신적인 애국운동이 올바르게 평가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인으로 동화, 귀화 흐름이 진행되는 가운데에서도 한통련은 조국과 민족에 철저하게 의거하여 민족운동을 계속해왔다.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고 통일운동을 하는 것이 왜 범죄가 되고 탄압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이 부조리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에게 국가보안법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계속 짊어지게 한다면 국가보안법을 이용하는 정권이 얼마나 반민족적, 반통일적인 정권인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1세들이 남긴 업적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투쟁해온 한통련은 또다시 당당하게 서울로 귀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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