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협회는 흡연 관련 질환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총 사회경제적 비용이 1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 남성 흡연율은 42.3%로 OECD 회원국 평균(28.4%)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게다가 청소년 흡연율은 세계 최고수준이며 여성 흡연율도 꾸준히 높아가고 있다고 한다. 반면 담뱃값은 OECD회원국 중에서 가장 싸서 노르웨이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담뱃값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이와 같이 외국에 비해서 담뱃값이 낮은데다가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는데 큰 효과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2002년과 2005년에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크게 낮추었다고 한다.
하지만, 담뱃값 인상에 반대하는 측은 이미 흡연율이 꾸준히 줄고 있으며,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담뱃값의 수요탄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옳다면, 담뱃값 인상은 흡연율을 낮추지 못하면서 세수만 크게 늘리게 된다. 정부나 담배인삼공사의 입장에서는 아주 구미당기는 일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연합, 호주 등 선진국에서 담뱃값 인상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서라면 다른 방법들도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담뱃값 인상을 고집하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지금 얘기되고 있듯이 담뱃값을 2000원대에서 8000원대로 대폭 올린다면, 담배나 피우면서 시름을 달래야 할 가난한 사람들은 이제 담배도 못 피우는 서러움을 당하게 된다. 그러니 불공평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만 하다.
담뱃값이나 담뱃세는 경제적인 문제다. 따라서 경제학자가 떠들어야 할 문제요 경제학자의 얘기부터 들어봐야 할 문제다. 실제로 담뱃세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연구가 여러 편 있다. 그렇다면, 과연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경제학자들은 일반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생뚱한 주장을 해대서 빈축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담뱃값에 대한 경제학자의 주장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담뱃값이나 담뱃세에 대한 연구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많이 알려진 연구는 미국 NBER(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미국 경제연구소)의 비스쿠시(W. Kip Viscusi)의 연구일 것이다. NBER은 9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최고의 경제연구기관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31명의 미국 경제학자들 중에서 16명이 이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고 한다. 과연 세계 최고의 경제연구소에 걸맞게 비스쿠시의 연구는 무척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수행되었다.
그의 연구는 우선 왜 담뱃세의 부과가 필요한지부터 짚어보고 있다. 경제학의 기본가정에 따라 비스쿠시는 흡연자들이 흡연으로 병에 걸려 사망할 확률, 흡연으로부터의 즐거움, 그리고 질병 걸렸을 때의 고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득실계산을 한 다음 흡연 여부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기로 결정했다면 그 이유는 득이 실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흡연자의 흡연행위는 아주 합리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제3자가 흡연에 대하여 가타부타 떠들 사항이 아니다.
다만, 흡연자가 생각하는 사망 확률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보다 낮을 수가 있다. 실제로 우리 주위 흡연자들을 보면 담배의 해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럴 경우, 흡연자는 담배를 과소비하게 된다. 따라서 흡연자로 하여금 오직 적정량의 담배만 피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는데 이때 효과적인 방법은 담뱃세를 부과하거나 담배가격을 높이는 것이다.
담뱃세를 부과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흡연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흡연자의 담배연기가 다른 사람들의 건강에도 해롭다는 사실이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이런 간접흡연 피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담배연기 냄새나 흡연자의 몸에서 나는 꼬린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흡연자들은 많은 경우 제3자에게 미치는 이런 악영향(이른바 외부효과)을 무시한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외부효과를 무시한다는 것은 흡연자들이 사회적 적정수준보다 더 많은 담배를 핀다는 뜻이다. 따라서 흡연자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적정량만큼의 담배를 피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담배세를 부과하거나 담배값을 올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담뱃세 부과의 필요성에 대한 얘기는 비스쿠시 연구에서 단순히 운을 떼기 위한 서두에 불과하다. 그의 연구는 담뱃세의 필요성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는 주장을 거쳐 담뱃세를 오히려 인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비스쿠시는 많은 자료를 동원하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담배회사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 담배의 유해물질 함유량이 크게 감소하였음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흡연으로 인한 사망률을 필요 이상 높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만일 이런 주장이 옳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합리적이라면 지금보다 담배를 오히려 더 많이 즐기도록 여건을 조성해주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최소한 경제학적으로는 그렇다.
▲ ⓒclimateshifts.org |
그렇다고 흡연이 무해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흡연이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은 확실하다. 비스쿠시의 연구는 이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미국 정부는 국민의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노인들에 대한 의료비용 역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식물인간 상태에서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미국에서 한 해에 쓰이고 있는 의료비가 천문학적 숫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흡연은 인간생명을 단축시키기 때문에 개인의 의료비 지출을 줄일 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 관리에 투입되는 국가재정의 규모도 크게 줄여준다. 물론 흡연이 질병에 걸릴 확률을 높이고 그럼으로써 개인이나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비도 늘어난다. 그러나 이에 비하면 생명단축으로 인한 국가재정 부담이 경감되는 정도가 훨씬 크다. 비스쿠시는 흡연이 국가재정 감축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를 꼼꼼하게 계산해냈다. 이런 긍정적인(?) 효과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담배세를 올리기는커녕 오히려 내려야 한다고 비스쿠시는 결론짓고 있다. 이런 결론이 옳다면 흡연자는 나라의 돈을 절약해주는 애국자인 셈이다.
결론은 어떻든 비스쿠시의 연구는 고도의 수학과 통계기법을 이용하고 있어서 보통 사람들은 읽기도 힘들지만,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보기에는 우수한 논문의 요건을 잘 갖추고 있어서 경제학 학도들에게 추천할만한 논문으로 보인다.
비스쿠시의 연구와 매우 흡사한 연구가 또 있다. 담배재벌회사인 필립 모리스(Philip Morris)회사가 경제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수행한 담뱃세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연구가 바로 그것이다.
이 연구의 내용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도 인용되어 있다. 이 연구는 체코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 나라에서는 담배가 아직도 인기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있다고 한다. 흡연으로 인한 의료보건 비용의 증가를 우려한 체코정부는 최근 담배세 인상을 고려하였다. 담배세 인상을 막기 위해서 필립 모리스 회사는 흡연이 체코 정부예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비용-편익분석을 시도하였다. 연구 결과,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흡연으로 사회적 손실보다는 사회적 이익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뻔하다. 비록 흡연자들은 생전에 많은 의료비용을 초래하지만 이들은 빨리 죽기 때문에 정부가 노인을 위해서 지출하는 의료보건, 연금, 주거 등의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담뱃세 세수와 흡연자의 조기 사망으로 인한 비용절감 등 흡연의 긍정적 효과를 고려하면, 재정 상의 순이익이 매년 1억4700만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하였다.
과거 담배제조회사들은 흡연이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에 급급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을 과장하고 있다. 필립 모리스 회사의 연구에 의하면, 결국 흡연으로 죽은 사람당 1227달러의 비용절감 효과가 체코 정부에게 돌아가는 셈인데, 흡연반대운동단체들은 흡연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 발가락에 1227달러의 딱지를 붙인 광고를 냈다. 이 광고를 보고 필립 모리스회사의 연구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이 회사의 간부는 드디어 이 연구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했다고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경제학자들이 생뚱하고 때로는 어이없는 주장을 자주 늘어놓는 한 가지 이유는 너무 경제적인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전문화의 시대에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적인 것이 사회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생각할 때, 경제학자가 경제적인 것만 생각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그래도 경제학은 명색이 사회과학이 아닌가.
폭넓은 교양교육을 받지 못한 탓으로 젊은 경제학자들에게 철학이 없음을 케인스가 크게 개탄하였다는 말이 생각난다. 케인스는 우리가 왜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하며, 경제학은 어떤 학문이 되어야 하고, 우리 삶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경제학과 연결시켰다. 그러나 요즈음 경제학자들에게는 그런 근원적 성찰이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경제학은 철학이 담긴, 인간적인 경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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