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첫 번째 주제는 이른바 '바가지요금'에 대한 것이다. 2004 여름 허리케인이 미국 플로리다주를 강타했을 때 약삭빠른 상인들이 황망한 이재민들을 상대로 생필품에 평소가격의 5배내지 10배씩이나 높은 바가지요금을 씌웠다는 것이다. 평소 40달러 하던 모텔숙박비가 160달러로 뛰었다. 더욱이나 풀로리다주에는 바가지요금을 금지하는 법까지 있는데도 그랬으니 비난의 여론이 비등할 수밖에 없었다. 요즈음 바캉스 철이라서 우리나라에서도 피서지마다 바가지요금이 극성을 부릴 때다.
이런 바가지요금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마도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좋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행위라고 보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주의 바가지요금 금지법도 일반인들의 이런 정서를 반영한 조치일 것이다.
그러나 유독 시장주의자들이나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들은 바가지요금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따라서 바가지요금을 금지하는 조치에도 반대한다. 이들의 주장은 시장의 거래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거한 것이므로 결국 거래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바가지요금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면 거래하지 않으면 그만이 아닌가. 만일 바가지요금으로 거래를 했다면 그 요금을 지불하고 남는 이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며, 따라서 결과적으로 거래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갔을 터인데 그것을 금지한다는 것은 시장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바가지요금이 평소보다 더 비싸다는 것은 그만큼 공급이 달리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가격이 충분히 높아야 공급이 늘어나면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듣고 보면 일리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시장주의자들이나 보수성향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현실의 시장을 도외시하고 교과서 속 시장에서나 통함직한 얘기만 늘어놓는다는 인상을 준다.
이들은 늘 선택의 자유가 풍부하다는 점을 자본주의 시장의 최대 장점의 하나로 꼽는다. 정말이지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에 가보면 없는 것이 없다. 소비자들은 그 많은 상품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어 좋고, 상인들은 그 많은 소비자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 거래할 수 있어 좋다. 거래 당사자 모두에게 선택의 자유가 이렇게 풍부하게 주어진 상황에서 이루어진 거래에 대하여는 아무런 불만이 제기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격은 거래 당사자들 모두의 진정한 자유를 바탕으로 합의된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 지난해 여름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풍경. 휴가철, 피서지를 찾은 이들이 종종 호소하는 어려움이 '바가지요금' 문제다. ⓒ뉴시스 |
그러나 바가지요금은 대체로 선택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사실상 일방적으로 강요된 것이다. 말하자면, 시장의 장점이 최대한 실현되지 않는 상황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폭설로 고립된 마을의 철물점 주인이 눈삽의 가격을 2배로 올렸다고 해보자. 마을 사람들은 다른 곳에 갈 수가 없으므로 이들의 선택은 마을의 철물점으로 제한된다. 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눈삽의 가격이 2배로 올랐다고 해서 눈삽의 공급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공급 길이 눈으로 막혀있기 때문이다. 허리케인을 피해 도망가는 피난민들 역시 선택의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이다. 마음에 드는 거래처를 고를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바가지요금을 지불하는 피난민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거래하게 된다. 사실상 강요된 거래다. 따라서 바가지요금 아래 이루어진 거래는 참된 자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설령, 바가지요금을 치르고 거래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바가지요금이 너무 비싸서 거래를 포기한 사람들, 달리 말하면 시장으로부터 갑자기 쫓겨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도 고려한다면 과연 바가지요금의 사회적 득이 손실을 상쇄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마르크스는 과연 바가지요금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그는 자본주의 시장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간성에 미치는 악영향, 특히 인간을 탐욕스럽게 만드는 면을 극히 우려하였다. 아마도 그는 바가지요금을 요구하는 상인의 탐욕 그 자체를 더 심각하게 문제 삼았을 것이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보려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탐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과연 살기 좋은 사회인가, 아니면 피난민들에게 오히려 평소보다도 더 싸게 상품을 공급하려고 하며 곤궁에 처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려고 서로 노력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더 살기 좋은 사회인가?
재난을 당한 피난민들에게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이들을 도와주는 일은 정부가 할 일이지 상인이 할 일이 아니라고 시장주의자들이나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들은 주장할 것이다. 상인이나 기업가의 역할은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며, 이들의 사회적 책무는 세금을 바치는 것으로 끝난다고 이들은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국민 모두의 책무로 느끼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아니면 그런 일은 정부가 할 일이고 나는 내 이익만 추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으로 구성된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나라를 지키는 일은 국민 모두가 나누어야 할 책무라고 느끼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아니면 국방은 외국인 용병에게 맡기고 국민 각자는 돈이나 열심히 벌고 세금만 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바로 이런 취지의 질문들이 마르크스가 이미 150여 년 전에 던진 질문들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격에는 인간의 욕망이 잔뜩 묻어 있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은 흔히 미친 가격이라고 하는데, 부동산에 대한 수요곡선에는 투기 한 방으로 큰 돈을 쥐어보려는 탐욕이 실려 있으며, 따라서 부동산가격에는 인간의 탐욕이 잔뜩 끼어 있다. 흔히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많은 학자들이 2008년 세계를 휩쓴 미국 발 불경기가 바로 이런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의 탐욕에 의해서 시장에서 잔뜩 부풀려진 가격이 한 나라의 경제를 좀 먹고 드디어 그 뿌리조차 흔든다고 하면, 과연 그런 가격이 올바른 가격인가?
어떻든 2008년 미국 발 세계경제위기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가격의 성격 및 역할에 대하여 심각하게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올바른 가격이나 건전한 가격이라는 단어는 잘 나오지 않지만,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가격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인간의 탐욕이 잔뜩 묻어있는 가격은 분명 건전한 가격은 아니다.
보통 상식에 따른다면, 오직 각자가 땀 흘리고 노력한 만큼에 대해서만 보상해주는 가격을 건전한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탐욕이나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 가격을 건전한 가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건전한 가격이 지배하는 경제가 건전한 경제다. 그리고 경제가 건전해야 사회도 건전해진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는 마르크스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신통하게도 마르크스가 생각한 것과 아주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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