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연구원이 "이산가족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보고서 내용은 현대그룹 내부 문제와 맞물려 눈길을 끈다.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처음 시작되었고, 2000년 8월 15일 당국의 지원 하에 본격 활성화되었다. 2000년 이후 10년간 총 17차례에 걸쳐 2만848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으나, 작년 9월 금강산 상봉을 끝으로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중단된 상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9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현재 등록된 이산가족 전체가 50대 이상이며, 70대 이상 고령층이 전체의 77.3%"라며 "현재의 모든 생존자들이 생애 한번이라도 상봉하기 위해서는 매년 상봉 규모를 77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하며, 70세 이상 고령자는 10년간 매년 6900명이 상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연간 3800여 명의 이산가족이 사망하고 있으며, 단 한 번도 상봉기회를 갖지 못하고 사망하는 이도 1500여 명에 달한다. 연구원은 "사망률과 평균기대여명으로 미뤄볼 때 앞으로 23년이면 이산가족이 모두 사망한다"며 "하루 속히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연구원은 올해 추석에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할 필요가 있으며, 상봉 인원 또한 대규모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직접 상봉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이 정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지적은 이명박 정부 들어 급속도로 냉각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적절한 조언이지만, 한편으로는 현대그룹 내부의 속사정도 일정 부분 관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그룹 지배구조는 지주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을 소유하고, 현대상선이 나머지 주력 계열사를 보유한 형태로, 현대택배를 비롯한 계열사들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나눠 갖는 순환출자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최대주주는 지분 35.4%를 보유한 현대상선이다.
비록 그룹의 캐시카우(확실히 돈벌이가 되는 사업)는 상선과 증권, 엘리베이터, 택배 등이지만 가장 상징적인 사업은 바로 금강산 관광 사업이다. 정몽헌 전 회장이 인생을 걸다시피한 사업이며, 현정은 회장도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은 그룹의 사업구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현 정권 들어 냉각된 남북관계가 풀려야 그룹의 미래상을 예측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관계 완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자금조달 부문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은 그룹에 필수적이다. 현대그룹은 최근 들어 현대건설 인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현대그룹은 향후 대북 건설사업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
그러나 자금조달이 문제다. 현대그룹은 최근 재무구조 개선약정 체결을 두고 채권단과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채권단과의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현대건설 인수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지고, 이는 대북사업 구상에 또 하나의 암초로 작용한다.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면 자연히 그룹의 미래가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며, 이는 지난 10일 시작된 채권단과의 법정공방에서 현대그룹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결국 남북관계 정상화는 현정은 회장 체제 현대그룹의 명운을 가를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돼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금강산 관광도 재개될 수 있으니 그룹에도 호재임은 분명하다"면서도 "어디까지나 이 사업은 적십자가 주관하는 인도적 사업이며, 현대그룹이 이산가족 상봉으로 큰 수익을 얻은 것도 아니다"라며 확대해석은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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