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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음악인의 오바마 지지는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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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음악인의 오바마 지지는 타당한가

[김봉현의 블랙비트] 키워드로 보는 힙합-오바마②

(지난 회에 이어 계속) 윌아이엠 뿐이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굵직한 힙합 뮤지션들이 오바마의 당선을 위해 발 벗고 뛰었다. 래퍼 나스(Nas)는 자신의 정규앨범 마지막 곡을 기꺼이 오바마에게 선사했다. 그의 아홉 번째 정규앨범 [Untitled](2008)의 마지막 곡 제목은 <Black President>다. 말 그대로 흑인 대통령이다. 나스는 이 곡에서 특유의 역사적 성찰을 바탕으로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에 대한 기대를 담담하지만 또렷하게 풀어낸다. 시작과 끝에 삽입된 연설 현장 실황은 곡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또 나스는 대통령 선거 당일에도 투표 장려 캠페인 송 <Election Night>을 공개하는 등 오바마의 당선에 올인했다.

남부 힙합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게 된 래퍼 영 지지(Young Jeezy)도 자신의 정규 앨범에 <My President>라는 곡을 실었다. 앞서 언급한 나스가 참여하기도 한 이 곡에서 영 지지는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엄한 비트 위에 비록 나스 만큼 격조 있지는 않지만 직설적인 진솔한 가사로 오바마의 당선을 염원한다. 그에게 부시(Bush)는 원흉이고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은 영원한 정신적 지주다.


▲지난 대선에서 오바마의 상징성을 생각해볼 때 흑인 힙합 뮤지션들이 오바마에 열광한 건 당연해보인다. 그러나 '대통령' 오바마와 힙합 뮤지션이 영원한 밀월을 즐기리라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래퍼 나스가 신보 발매 후 홍보용 사진을 찍었다. ⓒ로이터=뉴시스

제이-지(Jay-Z)를 빠뜨릴 수 없다. 제이-지는 티.아이.(T.I.), 티-페인(T-Pain) 등과 함께 'Respect My Vote' 캠페인을 벌였고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History>라는 곡을 무료 배포하며 역사적 승리를 자축했다. 커먼(Common) 역시 <Changes>라는 곡을 공개했으며, 브라더 알리(Brother Ali)는 <Mr. President (You're The Man)>라는 가슴 뜨거운(?) 제목의 노래를 오바마에게 띄웠다. 이밖에도 '힙합 재벌' 디디(Diddy)가 'Vote or Die'라는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선거운동을 펼친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더 많지만 이쯤 해두자. 지금껏 열거한 것만으로도 내로라하는 힙합 뮤지션들이 오바마의 당선에 열과 성의를 다했으며 그의 당선을 진심으로 기뻐했다는 '팩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하니 이제 오바마는 진정한 힙합 대통령이 된 것일까? 실제로 '젊고, 흑인이며, 힙합음악을 좋아하고, 힙합 뮤지션들이 그를 지지했으니 오바마는 힙합 대통령이다'라는 시각에 대해 일부에서는 우려와 비판을 드러낸다. 논거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언뜻 그렇다. 유치하지만 하나씩 따져보자.

오바마의 아이팟에 제이-지의 앨범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가 힙합 대통령이라면, 빌 클린턴(Bill Clinton)의 아이팟에 제이-지의 앨범이 들어 있지 않다는 보장이 있나? 만약 그렇다면 빌 클린턴도 힙합 대통령이 되는 건가? 퀸 라티파(Queen Latifah)와 엘엘 쿨 제이(LL Cool J)같은 유명 래퍼 겸 배우들이 빌 클린턴 지지운동을 벌였던 것은 어떻게 봐야하는 거지? 그럼 둘 다 힙합 대통령인가? 아니면, 오바마는 피부색이 검기 때문에 그만 힙합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건가?

더욱이 오바마는 "힙합 뮤지션들은 때때로 여성을 비하하고 'Nigga'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쓴다. 또한 그들은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오직 더 많은 돈과 차를 얻기 위해서만 골몰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는데, 이런 괘씸한(?) 사람을 힙합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잠깐, 힙합 대통령이라는 것부터가 일단 어떤 개념이지? 힙합을 좋아하는 대통령인가, 힙합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인가, 힙합을 위해 일하는 대통령인가. 그러고 보니, 무언가 이미지만 있을 뿐 정작 실체가 없다.

이에 대해 혹자들은 보다 냉정해지기를 요구한다. 먼저 저명한 힙합 원로 케이알에스-원(Krs-One)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통제받아왔음을 인정한다면, 왜 이제는 더 이상 통제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뉴 월드 오더(New World Order: 참 광범위한 개념이지만 여기서는 부시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질서의 연장으로 이해하자)에 검은 얼굴을 덧씌웠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만으로 이미 행복해진 듯하다." 한마디로 지레 들뜨지 마라는 이야기다.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아프로-아메리칸)의 필요와 희망사항에 오바마를 끼워 맞추지 말자'는 의견도 있다. 오바마는 힙합만을 위해 일하는 대통령이 아니며, 실제로 그가 힙합 커뮤니티에 구체적인 관심을 보이거나 힙합 뮤지션들과 힙합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나눈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근거로 제시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프레임 전환이다. 오바마가 정말 최초의 힙합 대통령인지 왈가왈부하며 그가 힙합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기대하는 대신에, 힙합은 오바마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진실을 좇고 기성체제에 저항하는 힙합의 본질에 대한 일종의 환기다.

오바마가 아프로-아메리칸의, 힙합의 꿈을 이루어준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얼굴만 검은' 대통령에 불과하더라도 힙합은 개의치 않아야 한다(비단 힙합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그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는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모든 대통령의 운명일 수도 있지만). 아니, 그럴 때 오히려 힙합은 더 원대한 꿈으로 이 '백악관 안의 흑인'을 뛰어넘어야 한다. 확실히, 힙합은 오바마보다 더 큰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오바마를 힙합의 끝이자 힙합의 운명을 좌우하는 존재로 여기는 순간 힙합은 기성체제에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오바마의 실패와 좌절이 힙합의 실패와 좌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최초의 힙합 대통령'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물음의 대답을 굳이 찾으려 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힙합을 구하는 것은, 오바마나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힙합 자신이다.





*필자의 블로그에서 더 많은 음악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http://kbhm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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