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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드립'이 어때서?"

[기고] 차명진 의원 관련 민주노총 논평 후기

최근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은 최저임금으로 하루체험을 해보니 황제식사에 기부에 문화생활까지 할 수 있었다며 '개드립'에 '자랑질'을 늘어놓고는, 그러니 앞으로는 국가에 손 벌릴 생각은 하지 말라며 빈곤계층에 대한 충고까지 덧붙였다.

그런데 이후 이를 비난한 민주노총 논평이 화제가 됐다. 누리꾼들은 폭발적인 지지와 공감을 표시했고, 그 결과 차명진 의원에게 사과까지 받아냈다. 반면 <동아일보>는 표현의 격(格)을 운운하고 "단체의 수준을 의심해도 할 말이 없지 않을 것"이라며 기사까지 썼다. <동아일보>처럼 굳이 민주노총의 수준을 시비 삼는 경우는 아니더라도, 이번 논평의 표현방식에 물음표를 던질 기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동아일보>에 공식적으로 대응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희일비하는 모습이야말로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접었다. 그러나 고민은 가시질 않는다. 보수언론은 그렇다 치고 악의 없이 들려오는 안팎의 문제제기는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나름 이른바 '표현의 격과 권위'에 대한 평소고민을 적어보았다.

논평 논란의 핵심이고 일부러 서두에서도 다시 썼지만 '개드립'이나 '자랑질' 등은 인터넷 공간에서 쓰이는 신종언어들이다. 물론 '개드립'이나 '자랑질'은 부정적이고 공격적 의미의 말이지만 욕설도 아니다. 더욱이 이들 인터넷 신종어들은 인터넷이 우리의 깊은 일상이 된 것처럼 상당부분 생활언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품격이 없다? 글쎄다. 난 이 대목에서 뭔가 모를 부적절한 권위를 느낀다.

격을 말하는데 도대체 격이란 것이 의심스럽다. 노동자답게 대중적 유대감과 비주류의 저항성을 지향해 온 민주노총이 언제부터 대중적 감성과 결별하고 관료들이나 보수언론들, 이른바 주류 세계가 요구하는 권위와 품격에 신경을 썼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건데 주류세계의 품격이란 대체로 냉혹한 착취와 지배본능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거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점잔을 빼는 일이다. 이도 아니면 생존의 절박함을 느끼지 못한 가진 자의 여유에서 나오는 나른함이라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자고로 지배층들은 그런 식의 품격으로 대중을 소외시켜 권위를 세우고 가증스러운 온화한 표정으로 착취를 일삼아 왔다.

<동아일보> 식의 품격이 바로 그러리라 추측한다. 아니 한껏 품격을 갖추고 왜곡과 비방을 일삼고 있다. 그런 식의 품격에는 파격으로 맞서고 싶은 심정 간절하다. 공식적 표현에 대한 충고를 하려거든 "보다 예의 있는 표현을 썼으면 좋았다" 정도면 새겨들을 생각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차명진이란 분은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는 짓을 하셨기에 "개드립"을 헌사한 것에 후회는 없다.

물론 민주노총 논평과 성명에 내용과 대상을 막론하고 인터넷 신조어들을 들이대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언어란 것의 본래 쓰임이 화자의 권위를 높이기보다는 소통하고 의미를 나누는 일이라면, 우리는 높은 수준을 보여 대중을 소외시키기보다는 우리와 같은 것들이네 하는 동질감을 얻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럼 점에서 '개드립'은 적절한 언어였다.

민주노총은 '거버넌스'네 '아젠더'네 하는 먹물의 품격과 권위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거칠지만 대중과 소통하고 쉬운 말로 생각과 철학을 나누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보다 나은 사회를 얘기하는 일에도 권위가 필요하다면, 그럴 때 권위란 권위를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생겨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지배계급에서 배운 방식으로 권위를 세우고자고 한들 권위가 세워지지도 않고, 권위를 세운들 또 다른 관료세계와 지배방식일 따름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노동부나 보수언론과 같은 주류집단이 인정할 만한 고품격을 갖추는 게 아니다. 대중과 소통하는 언어로 지배집단에 맞설 수 있는 대중적이고 진보적 감각, 그리고 예의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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