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힙합은 패러디의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먹잇감이다. 물론 비단 힙합만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장르이든, 아니면 음악이 아닌 무엇이 되었든 마음만 먹으면 패러디할 소재를 찾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힙합만큼 패러디할 소재를 찾기 쉬운 분야는 없으리라고 나는 장담한다. 힙합 안에서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기는커녕 뒤통수로 패러디 소재를 득템한다.
힙합은 가장 편견을 가지기 쉬운 음악 장르이자 문화다. 힙합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늘 의문을 품는다. 다음은 트위터(@kbhman)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내게 궁금해 했던 내용이다.
힙합 뮤지션은 왜 그렇게 금이랑 다이아몬드를 좋아하나요? (@ophellia99님)
왜 헐벗은 여인들이 콘셉트가 되나요? (@raretracks님)
힙합은 왜 주로 떼로 나와요? (@_thehole님)
등등. 추가하자면 '힙합 뮤지션은 왜 그렇게 자기자랑을 늘어놓나요?', '힙합은 왜 그렇게 진짜/가짜를 나누기 좋아해요?' 등도 있을 것이다. 즉 힙합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보편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힙합은 '정상이 아니'다. 힙합 특유의 속성과 태도는 우리네 보편과는 분명 거리가 있으며, 일종의 본질적 생경함과도 같은 힙합의 이 '정상이 아닌 듯 보이는' 면모는 패러디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론리 아일랜드는 힙합을 패러디한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
이들의 싱글 <I'm on a Boat>를 보자. 헐, 아무런 내용이 없다. 그냥 '나 지금 보트 탔는데 부럽냐? ㅋㅋ.' ←이 말을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기발하거나 더러운 비유로 변주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곡이 힙합의 '허세'를 재치 있게 패러디해내고 있음을 깨닫는다.
또 다른 싱글 <Like a Boss> 역시 마찬가지다. <Like a Boss>는 래퍼 슬림 석(Slim Thug>의 노래 제목인 동시에 스스로 '보스'를 자처하는 래퍼들의 거들먹거림을 드러내는 전통적인 표현방식이기도 한데, 론리 아일랜드는 이것을 일상화해 '사장'으로서 겪는 애환과 사장임에도 저지르는 얼간이 짓을 곡에 차례차례 담는다.
그런가 하면 <Lazy Sunday>는 일요일의 평범한 일상을 힙합의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풀어내고, <We Like Sportz>는 스포츠에 대한 남자들의 사랑을 힙합의 '누가 뭐라던 난 신경 안 써'(I don't give a f*ck !!) 마인드로 엮어낸 걸작(?)이다. 즉 론리 아일랜드는 힙합의 특성을 정확히 집어내 패러디한다. 패러디는 웃음을 주는 것이 목적인데, 힙합 고유의 멋은 이들의 재치를 통해 순식간에 큰 재미를 선사하는 장치로 둔갑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천재 뮤지션(!) 유세윤의 듀오 유브이(UV)는 론리 아일랜드의 이러한 방식을 흡수해 한국적으로 재창조한다. '한국적으로 재창조'했다고 말한 이유는 이들이 본토힙합의 분위기와 감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한국의 특수한 정서를 기반으로 패러디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가 90년대 알앤비 스타일의 음악 위에 필요 이상으로 무게 잡는 묵직한 랩으로 이별을 인정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찌질한' 상황을 묘사했다면, 얼마 전 발표한 미니 앨범 [천상유애]는 아예 대놓고 90년대 가요의 모든 것을 재현한다.
이 앨범에는 90년대에 가요 테이프를 열심히 사 모으던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여러 추억의 소리, 장치, 정서가 가득하다. 그래도 굳이 설명하자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대략 R.EF, 유승준, DJ DOC, Solid, '~구' 라임, 테크노 댄스, 펌디스파뤼 등등이다.
타이틀곡 <집행유애>는 90년대 초중반 듀스(Deux)가 선보였던 뉴잭스윙에 대한 유브이 식 헌사다. 비트, 효과음, 멜로디, 창법, 랩 스타일까지 완벽하다. 심지어 가사 전개와 표현방식까지 듀스의 특정 곡들을 참고한 흔적이 보인다. 즉 유브이의 음악은 랩을 바탕으로 한 복고+패러디의 조합이다. 또한 좀 과장해 이 앨범은 90년대 한국가요의 기록사적 의미로도 바라볼 만하다.
▲유브이는 90년대 한국 가요의 모든 것을 재현한다. ⓒ소니뮤직코리아 제공 |
결론적으로, 어쩌면 힙합은 패러디 당할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이렇게 패러디하기 좋은 장르를 재주꾼들이 가만히 놔두는 것이 더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힙합의 패러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 힙합 뮤지션(혹은 그냥 한국 뮤지션)이 유브이를 수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유브이의 존재와 음악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또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와 에픽 하이(Epik High)가 무한도전을 통해 보여준 전례가 있기도 하다.
다만, 그냥 궁금해진다. 론리 아일랜드는 지금껏 비욘세(Beyonce), 리아나(Rihanna),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 티-페인(T-Pain) 등 정상급 스타들과 함께 다양한 즐길 거리를 만들어왔다. 유브이를 통해 한국에서도 그러한 광경을 볼 수 있을까? 호기심이 솟아나는 순간이다.
*필자의 블로그에서 더 많은 음악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http://kbhm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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