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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무용지물? 놀기 좋아한 케인스의 독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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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무용지물? 놀기 좋아한 케인스의 독설"

[이정전 칼럼] "자본주의는 창의력 뛰어난 말썽꾸러기"

2008년 미국 발 세계경제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서 경제학자들이 욕을 진탕 얻어먹은 이래 경제학 무용론이 가시지 않고 있다. 사실, 세계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를 당하고 있다는데 이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니 비난받아 싸다. 미국 발 세계경제 위기로 우리나라 경제도 크게 흔들릴 무렵 모 일간신문에는 "미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이번 금융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진단도 처방도 시원스럽지 못하다.…"는 말로 시작되는 시사 논평이 실렸다. 2010년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또 다른 어떤 일간신문에는 "시대에 뒤처진 경제학 교과서를 리콜 하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토요타자동차도 리콜하는 판에 한물간 경제학 교과서는 왜 리콜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글이다.

하지만 이미 70여 년 전에 케인스도 이와 비슷한 독설을 퍼부으면서 당시 경제학자들에게 경고하였다. 경제학자들이 너무 수학적으로 아름다운 이론을 만드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서 현실을 도외시하다보니 계속 헛소리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은 케인스로부터 똑같은 꾸중을 다시 듣는 꼴이 됐다.

케인스가 나타나기 전에만 해도 경제학에서는 불황과 실업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불황이나 실업은 발생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은 가격, 특히 임금과 금리가 경제여건에 맞추어 신축성 있게 잘 변한다는 뜻이다. 가격이 그렇게 잘 움직여준다면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항상 착착 맞아 떨어질 것이니 불황과 실업이 발생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오늘날까지도 많은 경제학자들을 지배하고 있다.

케인스가 특히 강조한 것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시장은 경제학자들이 떠드는 시장과 사뭇 다르다. 실제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경제학 교과서가 얘기하듯이 그렇게 손익계산에 의거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손익계산을 해가며 합리적으로 행동할 여지는 별로 많지 않아 보인다. 원래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였고 확률에 대한 책을 썼던 케인스는 불확실성과 경제의 연관성에 크게 주목한 학자다.

그렇다면, 실제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까? 케인스에 의하면, 많은 기업가들이 직감과 주먹구구에 따라서 경제적 결정을 내리고 행동한다. 역대 경제학자들 중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었다고 알려진 케인스 자신도 그랬으며, 오늘날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나 워렌 버핏 등도 그랬다. 우리나라 대재벌의 창업자들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온 대로 손익계산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했다면, 아마도 평생 싸전 주인이나 철공소 주인 신세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공한 기업가는 확률이나 짐작하고 손익계산이나 하는 쩨쩨한 인물들이 아닌 것 같다.

케인스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라는 말을 썼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야성적 충동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성적 충동은 변덕이 심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기업가들과 소비자들은 이 변덕스러운 야성적 충동에 따라 행동하게 되며, 그러면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도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워 진다. 세계 대공황을 몸소 겪었던 케인스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왜 그렇게 수시로 호황과 불황을 오락가락 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지를 불확실성과 야성적 충동에 입각해서 설명하였다.

▲ 주식시장 전광판. 놀기도 잘했고 인문학적 소양도 풍부했던 케인스는 재테크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은 케인스가 현실감각을 갖춘 경제학자가 될 수 있도록 한 밑거름이었다. ⓒ로이터=뉴시스

요컨대, 자유방임 경제에서는 불황과 대량 실업은 고질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일반 서민들이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 나서서 경제를 안정화시킴으로써 일반 서민들을 실업과 가난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케인스는 그 구체적인 대책까지 제시하였다. 이런 점에서 케인스는 실업과 빈곤 등 우리 사회의 그늘을 경제학의 본격적 연구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경제학자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케인스는 영국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도 꽤 알려진 경제학자였고 어머니는 정치가였다. 케인스가 태어난 해에 마르크스가 런던에서 죽었다. 불세출의 천재였던 마르크스의 영혼이 케인스에게로 옮겨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케인스 역시 천재였다. 그러나 케인스는 상아탑의 고고한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공무원으로부터 출발해서 다양한 현실 경험을 가졌다. 그는 수학과 경제학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연극, 미술 등 다방면에 아주 조예가 깊었으며 재기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무용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는데 관심이 너무 깊었던 탓이었을까, 마흔이 넘은 불혹의 나이에 그는 그만 러시아 출신 발레리나와 결혼하고 말았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케인스는 어릴 적부터 노는 데에도 아주 열심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공부 안 하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싸돌아다녔으면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가 된 사람은 케인스가 역사상 처음일 거라고 어느 학자가 비꼬았는데, 은근히 케인스를 경박한 학자로 폄하 하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말이 옳다면, 결국 케인스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올린 셈이다. 경제학의 목표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 효과를 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점이나 경제학의 목표를 몸소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케인스야 말로 진짜 경제학자라는 평을 듣기에 손색이 없다.

케인스는 무작정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올바른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몸소 가르쳤다고 할 수 있다. 밤낮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열심히 공부하는 경제학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수없이 많다. 허나, 유독 놀기를 좋아했던 케인스만이 오늘날까지 그토록 찬란한 빛을 발하는 이유는 그가 위대한 문제의식과 높은 수준의 인문학 지식 그리고 현실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케인스를 사회주의자라고 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사회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공산주의를 극렬이 비난하였다. 그는 자본주의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굳게 믿었다.

비유한다면, 자본주의 시장은 창의력이 높은 말썽꾸러기 어린애와 같다. 내버려 두면, 말썽꾸러기 어린애는 충동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큰 사고를 치기 십상이다. 창의력이 높을수록 더욱 더 그렇다. 자본주의 시장도 내버려두면, 1930년대 세계 대공황과 2008년 세계 경제위기에서 보듯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미국 부시대통령조차도 "뉴욕 금융가가 술에 만취했다"고 말했다지 않는가. 마치 부모가 잘 보살펴주어야만 어린애가 자신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듯이, 자본주의 시장도 정부가 잘 통제해 주어야만 술에 곯아떨어지지 않고 높은 생산력을 달성할 수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케인스의 기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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