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한겨레>, <경향신문>에 대한 저열한 광고통제를 즉각 중단하라
시민의 힘으로 언론다운 언론을 지키자
'광고'를 무기삼아 비판 언론을 '손보는' 삼성의 언론 통제가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불법적인 삼성 비자금 의혹을 낱낱이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기자 회견이 있은 지난해 10월 29일부터 두 달이 더 지난 현재까지 <한겨레>는 11월 14일 모든 신문에 의례적으로 실린 삼성중공업 광고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단 한 건의 삼성 광고도 수주하지 못했다. <경향신문> 역시 11월 23일부터 삼성 관련 광고가 뚝 끊겼다. 심지어 지난 1월 10일,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진료 개시' 광고가 전국 종합일간지에 전면광고로 게재됐지만 유독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반면 조ㆍ중ㆍ동 등 족벌신문과 경제지 등은 아무런 문제없이 삼성광고를 수주하고 있다. 민언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일부터 올해 1월 7일까지, 조선일보는 45건의 삼성 관련 광고를 게재했고, 삼성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각각 29건과 15건의 광고를 게재했다.
삼성전자, 삼성증권, 삼성화재, 삼성물산, 삼성투신, 삼성생명 등 삼성의 주요계열사들은 조선ㆍ중앙ㆍ동아에 골고루 광고를 집행했지만, 한겨레와 경향에는 단 한 건도 싣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냉장고, 세탁기, 프린터, 노트북, 핸드폰, TV 등 주요 가전브랜드 광고를 조ㆍ중ㆍ동에 보란 듯이 넉넉하게 집행하면서도 한겨레와 경향은 철저히 제외시켰다.
심지어 삼성만으로도 부족했는지 삼성 이건희 일가와 친족관계에 있는 그룹들과 관계기관들도 '삼성 비판 언론'에 대한 '광고 통제'에 동참하고 있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물론 어떤 신문에 광고를 집행하느냐는 전적으로 광고주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주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매체에 자기 돈을 들여 광고를 게재하는 것을 꺼릴 수 있다는 것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 삼성이 한겨레와 경향에 대해 보이고 있는 행태는 단순한 호불호나 선택의 수준을 넘어 '비판 언론 손보기' 내지는 '길들이기'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나아가 그룹 차원에서 비자금을 조성해 온 일련의 과정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음에도, 삼성 이건희 일가 등 경영진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에 대한 비판 또한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비판 언론 탄압'이라는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겨레>는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 초기부터 인터뷰와 심층취재 등 끈질긴 보도로 삼성비자금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한 신문이다. <경향신문> 또한 <한겨레>에 버금갈 정도였다. 이들 신문의 보도는 독자와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매체로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이었다. 또한 '삼성공화국', '이건희 왕국'이라는 오명이 당연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온갖 불법과 부정부패로 점철된 재벌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일은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언론의 사회적 책무를 고민하는 매체라면 누구나 나서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언론으로서 당연한 역할을 했을 뿐인데 '보복'을 당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언론의 책임을 다한 신문은 위기에 처한 반면, 삼성을 비판하기는커녕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을 비하ㆍ협박하고, 특검 도입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며 심지어 '자기 침실에 CCTV를 설치할 용기가 없으면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하길 삼가야 한다'느니, '그 어떤 비자금도 정당방위'임을 부르짖는 신문 아닌 신문들은 도리어 상대적 특수를 누리는 지금의 사태가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삼성은 거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신문ㆍ방송ㆍ잡지 가릴 것 없이 모든 매체의 최대광고주로 등극한 지 오래다. 그 동안 삼성의 과다한 광고비 지출은 기업홍보나 제품홍보 본연의 기능보다는 구린 곳이 많다보니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06년 국감에서 드러난 삼성의 '언론우군화 전략'이나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회장 지시사항'이라는 문건 등이 그 결정적 증거다.
우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삼성의 <한겨레>ㆍ<경향신문> 광고 통제를 자본력을 앞세운 재벌권력의 유치하면서도 저열한 '사적보복'으로 규정한다. '우리의 대표브랜드'를 내세우며 글로벌기업을 지향한다는 삼성이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책임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오로지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벌이고 있는 지금의 행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단지 두 신문이 부당한 보복을 당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언론들이 앞으로 삼성에다 대고 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언론의 비판기능을 아예 말살시키려는 삼성의 광고통제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 자체를 위협하는 끔찍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삼성에게 지금 당장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대한 광고탄압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비자금 조성', '불법 경영권 승계', '비정상적 순환출자구조' 등 정상궤도를 한참 이탈한 기업경영 행태를 보이는 삼성이 대언론 관계에서 광고를 앞세워 언론을 장악하려는 것은 삼성에게도, 언론에게도, 우리 사회 전체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삼성이 경영구조를 정상화하고, 언론과 여론의 비판에 대해 성숙하고 겸허한 자세를 가지게 된다면, 삼성이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더욱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삼성이 지금과 같이 광고를 댓가로 언론에 재갈을 물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삼성의 이와 같은 오만방자한 언론 탄압을 묵과한다면, 우리는 제대로 된 신문이 하나도 없는 암울한 암흑시대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삼성의 구시대적인 언론탄압을 분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시민의 힘과 도움이 절실하다. 삼성 광고가 아니더라도 한겨레와 경향이 먹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주변곳곳에 삼성의 언론통제 실상을 널리 알리는 일에서부터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구독하는 일까지,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길 기대한다. 오늘 기자회견에 참석한 우리부터 그 일에 앞장 설 것이다.
2008년 1월 16일
기자 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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