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명 가까운 자원봉사자가 태안반도에 유출된 기름을 정화하고자 나섰으나 그 중 상당수는 기본적인 안전 교육은커녕 방제 복장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기름에 직접 노출됐다. 이렇게 정화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호흡기 통증, 구토, 두통 등을 호소하는 것으로 확인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기름 정화 후 호흡기 통증, 구토, 두통 호소
녹색연합, 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소장 최재욱)는 태안군 천리포, 만리포의 기름 정화 작업 참여자 211명(남성 128명, 여성 83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이 조사 결과는 지난 15일부터 16일까지 양일간에 걸쳐 증상을 설문해 얻은 것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주민ㆍ자원봉사자를 막론하고 응답자의 97.6%(206명)가 정화 작업 전에 화학 물질에 노출됐을 때 대응 방법과 같은 안전 교육을 받지 못했다. 특히 방제 작업에 참여한 이의 과반수인 55%(116명)가 기름, 증기가 손, 얼굴, 눈에 직접 노출되었다. 보호 안경을 지급받아 착용한 이는 단 3%(7명)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름 정화 작업에 참여했던 이들은 여러 가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들은 호흡기 통증, 구토, 두통 등의 증상을 호소해 왔으며, 정화 작업 기간이 늘수록 이런 증상의 발생 빈도가 높아졌다. 특히 이틀 이상 정화 작업에 나선 이들이 느끼는 고통은 더욱 심했다.
녹색연합 등은 "특히 지역 주민의 건강이 걱정된다"며 "나이가 많은 주민은 사고 초기 적절한 방제 장비도 없이 현장에 투입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들 주민은 정화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과 비교했을 때 호흡 곤란, 전신 피로와 같은 증상이 훨씬 더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1~2년 후까지 증상 지속…'선의'의 보답이 '질병'이라니
외국의 기름 유출 사고 때를 참고했을 때 이런 조사 결과는 우려스럽다. 2002년 스페인 프리스티지 호 기름 유출 사고 때, 기름 정화 작업에 참여했던 이들의 건강을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1~2년이 지난 후에도 만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즉 기름을 정화하던 이들이 호소한 고통이 일시적인 것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녹색연합 등은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6일이 지나서야 태안군 의료원이 자체 인력을 현장에 배치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낙후된 재난 구조 체계의 문제점은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확인되었다"며 "더구나 자원봉사자의 인적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앞으로 발생할 건강 피해를 추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녹색연합 등은 "수많은 이들이 선의로 사고 지역에서 방제 활동을 펼쳤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만성적으로 건강상의 위험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며 "지금이라도 자원봉사자의 인적 사항을 확보해 중·장기적인 보건 관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 기관은 "필요하다면 이 역학조사 및 치료ㆍ예방 비용을 피해 보상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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