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우리 농업 살리기에 애정이 남다른 세 전문가가 농업 대안을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 참석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 농림부 장관을 역임한 김성훈 상지대 총장,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박세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이다.
참석자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지속 가능한 국민농업의 모색 차원에서 새사연이 펴낸<우리 농업, 희망의 대안>(박세길 외, 시대의창 펴냄)을 화두로 농업 위기의 근본 원인 진단에서부터 대안의 모색과 실천 방안까지 폭넓게 토론을 이어갔다.
<우리 농업, 희망의 대안>은 국민 모두가 농업의 이해 당사자가 되어 위기를 극복하자는 대안을 담은 실천서다. 이 책은 박세길 부원장이 <프레시안>에 초고를 연재해 많은 관심을 얻기도 했다. 이 대담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최정은 연구원이 정리했다. <편집자>
"농산물은 경쟁력 따라 퇴출할 수 있는 '상품' 아니다"
박세길 : 농업은 인간의 생명을 책임지는 1차 산업이에요. 1차 산업이란 근본 되고 원초적인 산업인데도 한국 사회에서 농업은 배척당하며 문을 닫을 위기마저 처해있어요.
김성훈 : 농업이 근본이라는 인식이 사라진 데 문제가 있어요. 국가가 농업을 상품 생산 산업으로 규정하고, 시장경제 내에서 상품으로만 강조하고 있죠. 가격과 생산력으로만 경쟁력의 평가 기준으로 삼으면서 말이죠. 우리같이 땅은 좁고, 인건비는 높은 시장 내에서 가격과 생산비 대비 경쟁력이 낮은 농산물은 퇴장 당하게 되요. 농업 종사자마저 경쟁력이 없는 사람이 되고, 지역도 선진화에 반하는 낡은 지역으로 전락하고요. 정부, 재계, 정계, 언론 모두가 농업은 없어져야 한다고 공모를 하고 있는 셈이죠. 한마디로 농업 '축출'에 앞장서고 있어요. 이래서 생길 비극과 재앙은 후손들이 받게 될 텐데…. 위기의식마저 없어 더 두려워요.
문경식 : 맞아요. 정부가 농업을 상품으로 인식하며 경제발전을 위해 없어져야 할 비경쟁적인 산업으로 간주하고 있어요. 농업은 생명의 근본이고, 전통문화와 지역사회를 유지하는 다원적 기능을 갖고 있어요. 이런 다원성을 국민들과 공유해야 해요. '식량 주권(food sovereignty)'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국민과 함께 사업을 진행해야 해요.
박세길 : 농업도 시장논리로 구조조정 되어야 한다? 농업을 상품으로 보는 전형적인 모습이죠?
김성훈 : 식량 주권이 나와서 말인데, 이거 '식량 안보(food security)'와 구분해야 해요. 식량 안보가 무역 자유화를 부추기는 수단으로 역이용되고 있어요. 다국적기업과 미국이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수요를 위해 '안보'를 강조하고 있거든요. 식량 주권은 생태계를 보전하고 발전시키면서 먹을 농산물을 재배할 권리를 주권 차원에서 확보하면서 배고픔도 해결하고, 지역사회와 전통문화도 발전시킨다는 의미가 있어요. 하지만 이런 다원적 기능의 혜택은 식량 수출국에만 가능한 것이죠. 수입국들은 오히려 점점 더 예속되어 가요.
박세길 : 그렇죠. 예를 들면, 논농사가 해당되죠.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가치들이 쌀 수입과 함께 들어오지는 않아요.
문경식 : 식량생산, 농민의 권리, 소비자의 안전한 먹을 권리 등 모두를 현재 선택할 권리는 사라지고 있어요.
"국민 모두가 농업의 이해 당사자 되는 '국민농업'이 대안"
박세길 : 농촌을 농업인에게만 맡기는 건 도리가 아니에요. 국민 모두가 이해당사자로 참여하는 국민농업이 대안이 되어야 해요.
문경식 : 박세길 부원장이 국민농업 대안을 담은 책 <우리 농업, 희망의 대안>의 많은 부분에 동의해요. 현재 국민들은 싸면 사먹어요.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 물량을 한정해서 팔아도 끊임없이 팔리죠. 국민을 설득해서 함께하는 농업으로 발전시켜야 해요. 예를 들어, 자매결연이나 체험 농업 등을 통해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정책을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국민과 함께하는 대안이 무엇이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죠.
김성훈 : 국민의 정부 초대 농림부 장관 시절에 '국민을 움직여야 농업이 산다' '소비자를 감동시켜야 농업이 산다'며 국민 농업을 공식화했는데 이제 사라졌어요. 이제 농민을 위한 농업 정책을 펴지 말라는 것이죠. 농민이 사라지면 누가 손해를 보나요? 농촌이 사라진 도시를 상상할 수 있겠어요? 농민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할 경우 필요한 주택과 투자비용이 오히려 17배나 증가한다고 해요. 국가가 손해를 봐요. 이제 소비자인 국민을 감동시키는 친환경농업, 유기농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이제 농민운동도 부채 청산에만 매몰되지 말고 변해야 하죠.
"지역 내 협업농업, 우리도 가능하다"
박세길 : 안전한 먹을거리와 환경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있어요. 과감히 관행농업에서 탈피해야 하지 않나요.
문경식 : 유기농업을 반대한 적은 없어요. 기업농과 전업농으로 규모화하라는 정책적 요구가 있지만 전농은 가족농 중심의 지역 사회 협업과 친환경이 핵심이라고 여겨 지원하고 있어요. 한 사례로 경북 예천군 지보면에서 농기계를 공동으로 이용해서 협업농을 하고 있어요. 20여 명이 보유한 농기계를 함께 이용하고, 쇠고기도 공동 출하하여 인근에 판매하고 있어요. 효과가 좋아요. 이런 사례를 연구해서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정책 대안으로 만들면 좋을 것이죠. 더불어 가족농 중심으로 도시민에게 감동을 주는 농업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어요.
김성훈 : 맞아요. 이게 바로 사람 중심의 농업이고 농정이 아니겠어요? 가족농이 사람이 사는 농업이에요.
박세길 : 농가 평균 경작 면적을 봤을 때 친환경 농업에 우리에게 적합하죠. 그 방향으로 가야 성공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동의할 수 있을까요? 절대다수가 시장에서 거래를 하고 농업에 대한 인식이 없잖아요. 이를 위해 도시농업이 필요한대 말이죠.
김성훈 : 기농업 도시로는 쿠바가 대표적이죠. 2002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럼 쿠바식 유기농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나? 한국의 도시농업은 베란다 수준이죠. 이것으로는 성공할 수가 없어요. 대안적으로 도농 복합적 중소도시 내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해요. 일본에서는 지산지소(地産地消) 동이 있어요.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취지에요. 게다가 한국의 농가가 술과 음료 등을 가공해 판매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어야 농민의 소득도 높아질 것이에요. 지금은 대기업 중심의 가공업으로만 한정하고 있죠. 앞으로 지역 내 협업을 위해서는 지자체 단체장,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국민농업을 꽃피워 도농이 상생 발전할 수 있는 연대의 노력이 필요해요.
박세길 : 관련 단체들과 개인 모두가 관심을 갖고 네트워크를 맺을 수 있을 수 있는 현실적 인 방안이 없을까요?
문경식 : 화분에 토마토나 고추를 가꾸는 사람은 농업에 대한 인식부터가 달라요. 그래서 도시농업은 가능성이 커요. 큰 성과가 없을지라도 말이죠. 농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접근 차원에서 동사무소가 도시민이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종자를 제공하는 방법도 있어요. 옥상에 텃밭 만들기를 지원하는 정책을 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소비자, 학교급식, 환경, NGO 관계인들과 국민농업을 토론하고 대안을 발전시키는 노력에 공을 더 들여야 해요.
박세길 : 서로 소홀한 관계였지만 최근 협력 관계로 발전되어 고무적이에요. 정부의 가능한 지원에 대해 듣고 싶은데요.
김성훈 : 도시민에게 농업은 생명과도 같아요. 농업 관련 단체를 지원하고 농촌의 주말농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죠. 그린 투어리즘이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약해요.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 지도층이 수입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거죠. 대통령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해요. 국민의 생명을 희생양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선결조건으로 이면합의를 하는 결정구조에서 어떻게 농업에 희망을 걸 수 있겠어요? 경각심을 가질 단계에요.
문경식 :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농업이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으로는 농업을 살릴 수가 없어요. 농업 정책 입안자는 물론 소비자도 함께 참여해 혼연일체가 될 때 농업 정책에 미래가 있어요.
"남북 농업협의기구 만들어 통일농업 안착시켜야"
박세길 : 사실 통일농업과 식량주권 문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죠? 남북한이 전방위적으로 협력이 가능하고, 남북경협에서도 농업이 주 협력 대상이 될 수 있지 않나요?
김성훈 : 우리는 논농사 중심이고, 북한은 밭농사 중심으로 상호 보완관계에 있어요. 외국의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 남북한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요. 금강산 관광에만 국한되지 말고, 농업에 기술을 투자하고 상품화하는 것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정착할 필요가 있어요. 북한에 밭작물을 위탁하고 우리는 쌀을 교환하는 등 남북한이 교류해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어요. 이제 농업협력에서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문경식 : 전농은 9월 초 평양 방문을 앞두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남북 농업은 보완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쪽 정부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통 크게 지원하고 개방할 필요가 있어요. 평양에 방문해서 '남북농업지구' 설정을 제안할 계획이에요. 남북한이 함께 발전하는 틀을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매년 북한 쌀 지원을 법제화해서 남북한 쌀 수급을 안정화하는 문제도 중요해요.
박세길 : 전농에서는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이 있나요?
문경식 : 자금 지원이 필요해요. 한우농장을 북한과 함께 200여 평 정도 운영할 계획도 있어요. 기술과 우수 품종 한우를 지원하며 교류하는 것이죠. 또 북한 수해가 심각한 상태인데, 대대적으로 북한의 나무심기를 정부가 지원하고 우리 정부는 탄소배출권을 행사해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어요. 또 비료나 농약 대신으로 북한이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우리의 가축 분뇨를 국제적 기준에 맞는 퇴비로 만들어 지원하는 방향도 있어요. 거듭 강조하지만 남북한 농업 교류가 가능하게 통일기구를 구체화하는 노력이 시급해요. 예를 들면 북한의 청정지역에 돼지를 지원해서 키우면 남북한 모두 자원을 활용하여 이득이 돼요. 하지만 국가 내부 간 거래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라 한계가 있어요. 민간교류도 중요하지만 정부 간 합의에 진전이 있어야 수월해지죠.
박세길 : 통일농업 기구가 만들어지는 게 중요하겠군요.
문경식 : 개성공단처럼 남북농업교류촉진협의기구가 필요해요. 남북협력이 정치적 반대에 부딪힐 수도 있거든요.
박세길 : 맞아요. 지금이 우리 농업의 전환기라고 생각해요. 위기이지만 대안적 농업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죠.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농민뿐 아니라 국민에게 제안하는 한 말씀 부탁드려요.
김성훈 : 지금 정치 체제에서 농업은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죠. 대통령, 재계, 언론 그리고 다음 후보자들마저도 그렇죠. 그러나 단체나 정부만 믿고 농사를 지었나요? 진정성을 갖고 지역사회와 남북농업의 발전을 지향한다면 소비자, 국민, 정부 모두 변화할 수 있어요.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문경식 : 농업이 더 이상 이대로 가서는 안 되죠. 함께 노력이 필요해요. 농업이 끝장나면 그 파장은 고스란히 국민의 피해로 돌아가요. 그래서 전농은 소비자, 농업 모두를 지키는 지속적인 안정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국민의 이해를 모아나갈 계획이에요. 올해 부각된 국민농업을 안착시켜 농업의 희망을 만들겠어요.
박세길 : 국민 모두가 농업의 이해당사자에요. 그간 농업 관계인들의 네트워크가 소원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단체, 개인, 정부의 실천과 호응 그리고 노력을 본격화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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