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며칠 뒤, 그 환자가 다시 병원에 왔다. 방광염 증세가 호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열 등 전신 증상이 새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상부 요로로 감염이 퍼져 간 것은 확실했지만,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내게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 "약이 바뀌었어요."
당시(1989년)는 의약분업이 실시되기 이전으로, 의사가 처방을 하면 병원 약국에서 환자에게 약을 내주던 시절이다. 그래서 병원 약국에 문의하니, 공교롭게도 내가 처방한 항생제의 공급 도매상이 바뀌었단다. 결국 환자가 전해 받은 약은, 원래 그녀가 복용하던 약과 성분은 같았지만 다른 회사의 제품이었다. 당연히 약 모양(캡슐의 크기와 색깔)이 달랐고, 환자는 이를 '다른 약'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뒤, 응대하던 병원 약사가 덧붙였다. "바뀐 약이 잘 안 듣는다는 항의를 많이 받아요."
정말이었다. 주위 의사들에게 내 경험을 말하자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비슷한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동일한 성분이지만 제약회사가 바뀐 뒤 혈압이 도로 올라간 고혈압 환자, 혈당이 증가한 당뇨 환자들도 있었다. 한 선배 의사는 다른 회사의 디기탈리스(강심제)를 처방한 뒤, 심부전 증세가 갑자기 악화돼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했던 환자의 가족에게 멱살을 잡힌 경험담을 전해 주었다. 디기탈리스는 치료역이 좁고 혈중 농도의 변이가 큰 약물의 대표적인 예라 그럴 만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던 우리는 농담처럼 말했다. "확실히 회사마다 약발이 다르긴 다른가 봐."
하지만 집단휴진의 정당성 여부 및 부당한 리베이트 관행 근절 등을 둘러싼 논의에 파묻혀, 정작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성분명 처방이 과연 환자들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이 그것이다. ⓒ뉴시스 |
성분명 처방 논란, 누구 말이 맞나?
정부와 의료계가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놓고 대립 중이다. 정부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성분명 처방으로 환자의 알 권리와 약 선택권이 넓어져 의료 소비자의 편익이 증대되고, 성분은 같지만 가격이 싼 약-제네릭 의약품-을 구입하도록 동기 부여가 됨으로써 결국 보험 재정의 안정화를 가져온다는 것.
하지만 의료계의 반박 논리도 만만치 않다. 연전에 불거졌던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 자료 조작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제네릭 허가 제도의 신뢰성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분명 처방은 환자의 건강에 심대한 위해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더군다나 그렇게도 의료계가 보험재정의 부실화를 내세워 반대하던 의약분업을 강행해 이전에 없던 조제료 지출 등으로 막대한 재정 압박을 자초한 것은 다름 아닌 정부. 따라서 이제 와서 정부가 보험 재정의 부실을 운운하며 성분명 처방을 들먹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내가 의사라는 사실은, '성분명 처방'에 관련된 이런 저런 논의에 끼어드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주장의 진위에 관계없이 의도의 순수성이 의심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계의 집단 휴진과 정부의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무대응을 보며, 의심을 사더라도 잘못은 바루어야 한다고 느꼈다. 왜냐 하면, 이 문제가 단순히 정부 대 의료계의 대립으로 끝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허가 과정을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저가' 제네릭이 더 많이 사용돼야 한다는 대원칙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의료계 역시 이 상황을 각종 불공정 거래의 관행에서 스스로를 절연(絶緣)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전 연재에서도 강조했지만, 한 직종이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장사꾼'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성분명 처방은 절대로 이 상황의 해답이 아니다. 성분명 처방의 효과라며 정부가 내세운 주장의 근거가 너무나 희박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알 권리, 약 선택권, 의료 소비자의 편익이 증대된다는 정부의 기대는 지금처럼 부실한 제네릭 허가 제도와 정부 주도의 단일 의료보험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말 그대로 '기대'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약가 결정권을 행사하는 반시장주의적 시스템에서는 성분명 처방에 의한 보험 재정 절감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
앞으로 두 번에 걸쳐 정부 주장의 근거가 희박하다고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성분명 처방의 허와 실에 대한 '과학적' 또는 '제도적' 측면에서의 분석은 이번 회에, 그리고 '경제적' 또는 '사회-문화적' 관점에서의 분석은 다음 회에 다루겠다.
원료가 같으면 의약품의 효과도 같을까?
사람들은 원료가 같으면 최종 산물인 의약품의 효과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왜냐 하면, 먹는 약이 효과를 나타내기까지는 위장관에서 잘게 부수어져(붕해), 녹아야 하고(용해), 점막을 통과해 전신혈에 들어온 뒤(흡수), 원하는 체내 기관이나 조직에 제대로 도달돼(분포), 효과기(效果器, effector site)에서 폭로-반응 관계(exposure-response relationship)에 따른 작용 발현 과정을 모두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과정 중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아무리 원료가 같더라도 약효는 전혀 딴판이 된다.
생동성은 이러한 다섯 단계 중, 중간에 해당하는 '흡수' 과정까지만 검토한 것이다. 요컨대, 생동성으로 제네릭을 허가해 주는 이면에는, 혈중 농도로 계산한 약물의 흡수 정도가 같으면 제네릭의 안전성 및 유효성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같을 것이라는 '가정'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가정은 항고혈압제, 항암제, 항생제처럼 약물의 흡수 정도와 함께 흡수의 경시적 변화 양상이 효과 및 독성, 내성 발현(항생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또는 항우울제처럼 혈중 농도와 효과의 연관성이 잘 확립돼 있지 않은 경우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문제는 또 있다. 현재의 생동성 기준은 집단의 '평균'적인 흡수 양상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환자 간 변이 정도가 크게 달라도 문제가 안 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혈중 농도가 90에서 110으로 비교적 좁은 범위에서 잘 조절되는 약이나, 50에서 150 사이로 넓게 분포해 용량 조절에 더 많은 주의가 필요한 약이나, 평균이 모두 100으로 같기 때문에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게 현재의 생동성 기준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생동성 기준을 통과했더라도 같은 환자에서 오리지날을 제네릭으로 교체할 때-반대의경우도 마찬가지- 수 정도가 유사함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나, 한 환자는 혈중 농도가 50(오리지널)에서 100(제네릭)으로 두 배 증가했고, 다른 환자는 100(오리지널)에서 50(제네릭)로 절반이 감소했다고 하더라도 평균은 모두 75로 동일하기 때문에 생동성 입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런 약을 성분명 처방이랍시고 실제로 환자를 진료한 의사가 아닌, 임상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비의료인이 임의로 교체한다면 어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지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하나의 오리지널에 대해 제네릭이 수십 개에 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네릭들 '사이'의 생동성은 아예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고 있다.
주먹구구식 생동성 시험, 어떻게 신뢰하나?
그것만이 아니다. 생동성 시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므로 반드시 의사의 감독 하에 실시돼야 한다. 그러나 의약분업 이전에 실시된 생동성 시험에는 아예 의사의 참여를 명문화하지 않았다. 현재도 의사가 일정 부분을 관여한다는 조건하에 임상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연구책임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매우 기형적인 규정을 갖고 있다. '위탁 생동'이니 '공동 생동'이니 하면서 실제 제조 시설 및 공정과는 전혀 무관한, 정말이지 '기발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비과학적 규정으로 붕어빵 찍어내듯 제네릭을 허가한 것도 정부였다.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의약분업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다른 모든 임상시험이 임상시험관리기준에 맞추어 엄정한 질 보증(quality assurance) 시스템을 갖추어 온 것에 비해 생동성 시험은 한 번도 규제기관(식약청)의 면밀한 감시 하에 있지 않았다. 병원의 약제부나 약학대학에 선심 쓰듯 나누어 준 생동성 프로젝트에서 피험자의 인권이 얼마나 형편없이 유린됐는지, 이들이 의뢰자인 제약회사의 비위를 맞추느라 문제가 될 만한 피험자의 자료를 어떤 식으로 '미리 미리' 조정했는지, 이 바닥에서 조금이라도 일을 해 본 사람에게는 더 이상 비밀도 아닌 이야기다. 생동성 자료 조작 사건은 이처럼 부실한 제도 또는 시스템의 부재에 따른 문제의 일단이 조금 불거져 나온 것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들이 제네릭 또는 성분명 처방에 대해 갖는 불신은 결코 과다한 것이 아니다. 모든 의사들이 위에서 내가 지적한 생동성 시험의 한계와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진료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믿음이기에 오히려 그 뿌리가 깊다. 앞에서 '제약회사마다 약발이 다르다'며 의사들이 농담처럼 말했던 것도 실은 이러한 불신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드러내는 언중유골인 셈이다.
따라서 정부의 주장처럼 환자의 '알 권리' 신장이 그렇게도 중요했다면, 우선 우리나라의 생동성 허가 제도의 문제점을 소상히 밝히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며,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일이 선행됐어야 한다. 하다못해 정부는 각 제약회사의 제네릭이 어떤 식으로 허가를 받았는지 국민에게 알리기라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어떤 정보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놓고서 이제 와 도대체 무슨 낯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언급한단 말인가?
진짜 환자 위한 길은 무엇인가?
환자의 약 선택권 증대 운운에는 더 기가 막힌다. 다른 소비재와 달리 의료는 최종 소비자(환자)와 소비재의 선택자(의사)가 동일하지 않다. 이러한 보건의료의 기본도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에게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예외 없이 성분명 처방을 강제화하면 의약품의 선택자가 전문가인 의료인에서 비전문가로 넘어갈 뿐이다. 개악(改惡)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백 번을 양보해, 정부의 주장처럼 환자의 약 선택권을 늘여야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제일 중요한 전제 조건은, 성분명 처방전을 들고 찾아간 약국마다 모든 제네릭과 거기에 대한 자료들이 구비돼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재고 문제로 허덕이는 약국 각각이 무슨 수로 이러한 요구를 맞출 수 있는가? 요컨대, 정부의 주장은 정책 타당성 홍보만을 염두에 둔 비현실적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편익 증대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정부가 이것을 원했다면 벌써부터 진료를 받은 병원의 약국에서도 약을 구입할 있게끔 의료분업이 이루어졌어야 한다. 더군다나, 진정으로 정부가 소비자의 편익을 고려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일반약이 자유롭게 판매되도록 해야 한다. 자기네 안방이 지저분한 것은 놔둔 채, 왜 남의 집 마당을 치우라고 성화를 부리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시범사업에 불과하고, 문제가 될 만한 약은 제외했다는 정부의 강변에서도 이들의 비전문성 또는 준비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성능 테스트는 가혹 조건에서 실시하는 것이 정상이다. 링 밖에서 섀도복싱만 해 놓고 상대방의 실력이 어느 수준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시범사업을 해 놓고 '자 이제 문제가 없으니 전면 실시하자'고 하는 게 어디 이번뿐이던가? 한 두 번이라면 모를까, 이솝 우화에 '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우화가 포함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다시 결론을 내자. 어떤 경우에도 의사는 환자에게 가장 최선의 것을 고르고, 이를 집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의사의 약 선택은 성분명이냐 상품명이냐 하는 것 이외에도 의사-환자 관계, 상호 신뢰성, 환자 개개인의 병력과 임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고도의 의사 결정 행위다.
양질의 저가 제네릭이 더 많이 사용되길 원한다면 제도와 시스템의 정비를 먼저 논할 일이다. 이런 책임은 미루어 둔 채, 비전문가인 정부가 어쭙잖게 나서서 성분명 처방 강제화로 밀어붙일 일은 결코 아니다. (계속)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