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범여권'이 이명박을 못 이기는 이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범여권'이 이명박을 못 이기는 이유?"

[화제의 책] <히든 파워>

미국 민주당은 왜 공화당을 이기지 못하는가? 남의 나라 일까지 신경 쓸 정도로 여유가 없다면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둔 시점에서 왜 이른바 '범여권'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의 반도 안 되는가? 최근 출간된 찰스 더버(Charles Derber)의 <히든 파워(Hidden Power)>(김형주 옮김, 두리미디어 펴냄)는 그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선거의 덫'에서 헤어나야

이미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던 그의 책(<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프레임 전쟁>)을 통해 이 질문에 답한 적이 있다. 레이코프는 민주당이 공화당이 설정해 놓은 '세상을 보는 방식' 즉 '프레임(frame)'에 갇혀 있기 때문에 매번 선거에서 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계속 "'테러와의 전쟁'을 반대한다"는 식으로 공화당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반복한다면 결코 대중을 사로잡기 어렵다는 이런 지적은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더버는 <히든 파워>에서 이런 레이코프의 '프레임 재구성'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2004년 이후부터 수많은 대화는 주로 '프레임의 재구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문제는 프레임의 재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비전, 정책 자체에 있다. 프레임의 재구성 정도로는 민주당을 구원해 내지 못한다. 소극적인 경제 정책, 외교 정책이 언어 안에서만 웅크리고 있다면 민주당은 기성 체제에 더욱 더 얽매일 것이다."

더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지금 민주당의 위기는 선거에서 매번 패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공화당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경제 정책, 외교 정책을 내세우면서 정작 선거에서 손쉽게 이기는 데만 골몰하는 것이야말로 민주당이 처한 위기의 진짜 원인이다. 즉, '선거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민주당은 설사 정권을 잡더라도 '무늬만' 민주당일 뿐이다.
▲ <히든 파워>(찰스 더버 지음, 김형주 옮김, 두리미디어 펴냄). ⓒ프레시안

'보이지 않는 정부'가 지배하는 미국


실제로 민주당은 1990년대 '신민주당(New Democrat)'을 내세우면서 선거 승리만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내세웠다. 1930년대부터 민주당의 옷이었던 '뉴딜'을 벗어던진 민주당은 공화당과 점점 닮아가면서 기존에 민주당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노동조합 대신 기업의 지원을 업게 된다.

그 결과 민주당은 자신의 지지자였던 노동자·서민과의 연계 고리를 잃어버렸다. 클린턴이 두 번의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그것은 민주당의 승리라기보다는 "아칸소 주 출신의 제법 괜찮은 촌놈"이었던 클린턴 개인의 승리였을 뿐이다.

그 와중에 클린턴은 계속 공화당과 닮은 경제 정책, 외교 정책을 내세우면서 공화당이 자신의 기반을 탄탄히 굳히는 데 힘을 보태줬다. 클린턴 시절 지속적으로 해체된 사회 안전망은 대표적인 예다. 그 결과, 지금 미국은 1980년대 레이건 정부부터 시작된 세 번째 '법인체 체제(corporate regime)'의 문제점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겉으로 보이는 정부 뒤에는 '보이지 않는 정부'가 있다. 기업과 그에 유착한 정치의 부정한 동맹으로 유지되는 이 체제는 미국 역사에서 과거에도 나타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훨씬 더 세련된 방식으로 지배한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정부'가 힘이 세지면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며 '퇴출되는 계급'으로 전락한 시민의 분노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온갖 대중매체를 활용한 흑색선전에 현혹돼 정작 그 분노가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당의 역할이라는 게 더버의 지적이다.



한나라당과 한나라당이 싸우는 선거…결과는 뻔하다

이런 미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금 미국의 현실을 설명한 '법인체 체제'라는 개념은 최근 사회학자 김동춘이 한국 사회를 설명하고자 내놓은 '기업 사회'라는 개념과 흡사하다. '삼성 공화국'이 일상어가 되고, 여야를 막론하고 기업 경영자가 대놓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상황은 미국보다 한 술 더 뜬다고 볼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살림살이도 미국보다 낫지 않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미국보다도 높다. 이른바 대형 할인 점포들이 동네 상권을 장악하면서 노골화된 자영업의 몰락은 중산층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오죽하면 평생을 100만 원 안팎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88만 원 세대'의 등장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왔겠는가?

자,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범여권'이 보이는 모습은 어떤가? 여야의 유력한 대선 후보의 경제 정책은 사실 '판박이'다. 우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똑같이 찬성하고 있다. 이른바 국민 소득 '몇 만 달러'로 표현되는 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진화' 논의를 되뇌는 것마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상 한나라당과 한나라당이 싸우는 꼴이다. 이래서는 범여권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이길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더버가 미국 민주당의 실패를 설명한 것과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이른바 '문국현 대안론'도 이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기존 정당의 행태가 얼마나 한심했으면 최근까지 대다수 시민이 이름도 알지 못 했던 경영자가 마치 대한민국을 구할 개혁 세력의 '상징'인 양 일부 언론을 통해서 떠받들여지고 있겠는가?

같은 경영자 출신의 이명박 후보는 서울시장을 하면서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검증'이라도 받았다. 하지만 문국현 후보에 대해서는 그의 주장만 단편적으로 알려졌을 뿐, 경영자로서의 행적이나 삶의 이력이 그의 주장과 얼마나 부합하는지조차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마치 2004년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과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명박만 꺾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좋아."

'일상의 정치'에 성공해야, 승리한다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는 민주당의 린든 존슨에게 압도적인 표차로 패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대선 패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상의 정치'를 내세우며 10년 이상 미국의 남부, 중부를 공략했다. 기업, 교회와 유착한 공화당은 양손에 '성경(복음주의)'과 '성조기(애국주의)'를 들고 대중을 선동했고, 경제 위기에 신음하던 가난한 사람은 그들에게 열광했다. 오늘날 공화당의 표밭은 이렇게 탄생했다.

지금 그 공화당의 표밭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불안에 떨면서 엉뚱한 곳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더버는 미국 민주당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려면, 더 나아가 균열의 조짐의 보이는 '법인체 체제'를 대신할 대안 체제를 수립하려면 40여 년 전 공화당이 했던 것처럼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대중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궈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도처에서 곡소리가 들리는 대한민국의 개혁을 고민하는 정치인은 과연 이런 지적에서 자유로운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