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도 보여주지 못한 진실
<화려한 휴가>가 보여주는 진실은 전체의 부분일 뿐이다. 영화에서 생생히 묘사된 계엄군의 무지막지한 탄압만 해도 그렇다. 그들 역시 광주에 투입되기 전에는 평범한 젊은이였을 뿐이다. 그들을 '악의 화신'으로 만든 이들은 따로 있다. 바로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획득한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이다.
이렇게 영화가 생략한 진실을 정면으로 거론한 책이 나왔다. 백무현이 쓰고 그린 <만화 전두환>(전2권, 시대의창 펴냄)이다. 백무현은 이미 독재자의 진실을 바로 알리고자 2005년 <만화 박정희>를 발표해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만화 전두환>의 유일한 목표도 바로 '진실'을 알리는 데 있다.
"(한 포털 사이트 백과사전의 설명대로라면) 전두환은 "물가 안정과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고 무역 흑자를 이룬" 대통령이다. 넓게 보면 크게 잘못한 점도 없다. 그렇다면 전두환을 반대하고 타도하고자 하는 세력은? 이상한 사람들이다. (…) 역사는 이 순간부터 뒤죽박죽이 된다. 해방 이후 우리 현대사의 몰골이 이렇다. 정의가 없는 사회다.
불의가 정의를 심판하는 블랙 코미디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전두환'을 그렇게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도 하등 이상한 노릇이 아니다. 이상하게 생각지도 않는다. 과연 현대사는 '전두환'을 이렇게 기록해도 되는가? <만화 전두환>은 이런 자문에서 시작했다. '전두환의 역사'와 맞짱을 뜨기로 했다."
'광주'는 여전히 슬프다
<만화 전두환>을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는 핵심 단어는 '광주'다. 백무현은 아예 1권의 제목을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야기했던 군사 작전 '화려한 휴가'에서 따왔다.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약 열흘간을 묘사한 부분은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쉽지 않다. 바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간" 원혼들의 무게 때문이다.
18일 12시부터 전국으로 확대한 계엄은 애초부터 광주를 희생양으로 지목했다. 계엄군이 광주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시민을 향한 공격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굳이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1980~90년대 많이 불렸던 노래, '5월의 노래'의 한 구절("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도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광주 시민은 총까지 난사하는 계엄군을 향해 결국 총을 들고 맞선다. 거리로 나서는 제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차라리 나를 밟고 가라"며 교문을 막아선 교사,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결국 총을 들고 나선 교사, "지금 내게도 총이 있다면 쏘고 싶은 심정"이라며 하느님을 향해 절규하는 신부….
그러나 광주 시민의 저항은 애초 역부족이었다. 비록 도청을 장악했지만 '해방 광주'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시민 상당수는 부산에 도착한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의 항공모함이 그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말이다. 결국 계엄군은 27일 새벽 도청에서 마지막 학살을 벌인다. 당시 도청에 남아있던 시민군은 300명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계속 불려야 한다
이 책은 두 부분에서 5월 광주를 상징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길게 인용한다. 바로 1980년 5월 27일 도청에서 시민군이 계엄군을 향해 끝까지 저항하다 죽임을 당할 때, 그리고 1987년 6월 한 목소리로 '군부독재 타도, 민주정부 수립'을 외치던 시민을 묘사할 때. 오늘날 모두가 향유하는 민주주의가 바로 5월 광주에서 시작된 것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러나 5월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영화 <화려한 휴가>로 광주를 처음 접한 학생들은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마다 "<화려한 휴가>에 나온 내용이 진짜인가요?"를 묻는다. 경상남도 합천군은 전두환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을 짓는 방침을 여전히 밀어붙이고 있다.
1980년 5월 29일 "계엄군으로서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고 말했던 한 신문은 '일등신문'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전두환에 부역했던 여러 지식인은 여전히 원로로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그 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그렇게 희생당한 이들은 이제 '용서'와 '화해'를 강요받는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끝난다. 그러나 아직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가 아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다시 불려야 한다. 청와대나 기념식장이 아니라 여전히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투쟁하는 현장에서 말이다. 27년 전 광주도청에서 그랬듯, 20년 전 서울시청에서 그랬듯…. 이 책을 덮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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