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DS 펠로우 교육 과정의 마지막 단계는 '신약허가 워크샵'이라고 불리는 프로젝트다. 이것은 FDA의 허가를 받은 의약품을 선정해 초기 개발 단계부터 허가까지의 전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종의 사례연구다.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 심의에 참여했던 FDA의 전문요원이 초청돼 패널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2001년에는 '액토스'라는 당뇨병 치료제가 신약허가 워크샵의 대상 약물 중 하나로 선정됐다. 비교를 위해 비슷한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인 '아반디아'도 함께 검토됐다. 이 검토를 통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액토스의 개발 과정에 허점이 많았던 사실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아반디아의 경우 허가를 전제로 FDA가 요청한 추가 임상시험의 숫자는 단 하나였다. 하지만, 액토스의 경우에 이 숫자는 무려 일곱이었다. 액토스의 허가 시점도 아반디아보다 약 두 달 정도 늦었다.
액토스는 원래 일본의 다케다 사(社)가 개발을 시작한 약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다케다 사는 일본(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제약회사다. 따라서 액토스의 신약허가 워크샵에서는 언필칭 아시아 최고라는 제약회사의 의약품 개발 수준에 대한 이런저런 흥미로운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비록 개발과 허가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후 액토스의 판매는 순조로웠다. 보통 연매출액이 10억 달러를 넘으면 '블록버스터' 신약이라고 부른다. 액토스와 아반디아의 2006년 총 매출액은 각각 27억 달러(약 2조5000억 원)과 33억 달러(약 3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품목의 매출액이 우리나라의 1년 '총' 의약품 생산 규모와 맞먹는 셈이다.
당뇨약을 먹으면 심근경색이 증가한다?
이렇게 개발 과정부터 허가 시기와 매출액에 이르기까지 아반디아에게 뒤져 줄곧 2위에 머물러 있던 액토스에게 반격의 기회가 찾아 온 것처럼 보인다. 지난 5월 21일자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의 인터넷판은 '아반디아를 복용한 환자에서 심근경색의 위험이 43% 증가했다'는 니센(Steven E. Nissen)의 논문을 편집자의 특별 논설(editorial)과 함께 게재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 근래 관절염 치료제인 바이옥스를 포함한 몇 건의 의약품 안전성 논란 때문에 신경이 한껏 날카로워져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니센의 논문이 발표되자 의료계와 제약업계에서는 벌집을 쑤신 것 같은 소동이 벌어졌다. 부랴부랴 FDA도 특별 웹사이트를 만들어 의료인과 환자들에게 아반디아의 안전성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친기업적인 부시의 정책에 반감을 갖고 있던 민주당 주도의 미국 의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예 이 참에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FDA의 관리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의원도 여럿 있었다. 청문회가 개최됐고, 니센을 포함한 여러 증인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논란의 시발점을 제공한 니센의 논문에는 개개 환자로부터 얻어진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 그 대신, 니센은 아반디아와 대조약의 효과 및 안전성을 비교한 다른 논문의 요약 결과들을 '모아서'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법을 '메타분석(meta-analysis)'이라고 부르는데, 직접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분석법과 달라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충분하지 않다.
더욱이, 이런 종류의 안전성 자료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생존분석법이라는 통계기법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니센의 논문처럼 다른 연구의 요약 자료를 메타분석하는 경우에는 생존분석법을 적용할 수 없다. 니센도 이러한 문제점을 자신의 논문에서 밝혔다.
한편, 아반디아를 개발한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사는 개개 환자에서 아반디아의 안전성을 장기간 추적-관찰하는 연구를 몇 년 전에 시작해 현재 절반쯤 진행한 상태다. 논란이 불거지자 GSK는 이 연구의 중간 결과에 대한 분석을 실시했지만, 니센의 논문을 뒷받침할 만한 안전성의 문제점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의심은 가지만 아직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셈이었다.
정치 논란에 휩싸인 당뇨약
이 정도면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왜 니센의 논문을 놓고 이렇게까지 소동이 벌어지게 됐는지 의아한 생각이 드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유가 있었다. 아반디아의 안전성 문제를 둘러싼 과학외적-정치적-논란 때문이었다.
GSK는 발매 초기부터 줄곧 아반디아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해 온, 한 당뇨전문의를 은근히 협박(?)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어, GSK는 '공공연히 문제점을 제기해 주가가 떨어지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그 당뇨전문의에게 전달함으로써 외압을 가했다. 더욱이, 그가 소속된 의과대학에 대한 지원이 하향조정될 수도 있다고 GSK연구소의 고위 책임자가 말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나중에 GSK는 협박 건에 대해 사과했다. 해당 당뇨전문의도 자신의 문제 제기가 부정확한 정보에 일부 근거했다는 점을 들어 GSK에 대해 특별한 반감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기는 했다. 하지만, 듣기 싫은 소리 한다고 어떤 형태로든 의사를 협박한 회사의 고압적 자세는 납득하기 힘들다.
안전성 논란을 주도한 니센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우선, 그가 자신의 논문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여러 곳에서 제기됐다. 아반디아의 안전성을 체계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 그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이미 난 것처럼 여론몰이를 한다는 비판인 셈이다.
이러한 비판이 제기된 이유는 니센의 정치적 행보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그는 논문에 사용할 자료를 얻기 위해 정치권을 통해 우회적으로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니센이 차기 정부에서 FDA의 청장이 되려고 공작을 하는 것으로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높은 이 시점에서 문제를 터뜨리면 집중 조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 의견일 뿐이었다고 해명은 했지만, FDA의 공보관도 구설에 올랐다. 그는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니센을 조롱의 의미로 "성자"라고 지칭했다. 또, "도대체 니센의 발은 진흙 대신 (금으로) 만든 것이라도 되느냐"며,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전혀 없어야만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의 비현실적 주장을 비꼬기도 했다.
당뇨약, 먹지 말아야 할까?
이웃 나라 논쟁은 그렇다고 치고,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 당뇨 환자들이다. 과연 아반디아를 계속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 상황에서 아반디아의 안전성에 대한 가장 균형 잡힌 결론은, 심근경색의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구결과와 그렇지 않은 연구결과들이 혼재돼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당뇨병 자체가 심근경색을 포함한 심혈관질환의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 중 하나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대한당뇨병학회의 권고처럼 당뇨 환자들이 임의로 아반디아의 복용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워싱턴포스트>의 6월 4일자 사설, 'Balancing Medical Risks'도 이 권고를 뒷받침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의심만으로 FDA가 의약품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두면 "자국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 있어서 외국 기관의 결정에만 의존한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질타한 시민단체의 비판은 염려스럽다. 충정은 이해하나, 의약품의 안전성은 '주권'이나 '자주'같은 정치 담론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민족적 자존심'으로 국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크게 경계할 일이다.
7월 말로 예정된 FDA의 외부자문회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실히' 밝혀지기까지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자료의 타당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전문성이 우리에게 있다면 금상첨화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전문성을 갖춘 남이 내린 결정을 '기분 나쁘다'고 무시하는 것처럼 바보스러운 일은 또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액토스 또는 아반디아와 관련한 회사의 주식, 유가증권 등을 소유하거나 거래한 적이 없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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