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바람과 달리 이제 우리의 대선정국은 한편에서는 폭로전이, 다른 한편에서는 법리공방이 그야말로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의 행적과 과거의 법률이 정치가들의 발목을 붙잡고, 그를 통해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물불을 안 가리고 달려들다 보니 다시 정책도 비전도 금세 뒷전으로 사라져 버렸다. 폭로전 속에 드러나는 스토리도 역겹기 짝이 없지만, 법리를 둘러싼 공방도 지루하다 못해 아슬아슬하다. 대통령이 임기 말에 선거관리보다 갑작스레 '정치화'에 골몰하는 모습도 안타깝지만, 그런 그의 행동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나타난 헌법기관의 행태는 더욱더 가관이다.
"선관위,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가?"
최근 선거관리위원회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공무원인 대통령이 현행법상 공무원에게 부과되어 있는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해석하고, 청와대를 향해 두 번째 경고를 보냈다. 대통령의 발언이 심했다 아니다라는 식의 판단은 하고 싶지 않다. 내용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을 넘어서 노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정치적이었다는 사실은 주객관적으로 명백한 것 같다. 이 상황을 지켜보며 필자는 다만 첫째, 이에 대한 선관위의 기계적인 판단은 정치 질서 상에 큰 혼돈을 초래할 여지를 지니고 있으며, 둘째, 대통령의 정치화 못지않게 선관위의 정치화도 위험한 일임을 지적하고 싶다.
우선 선관위는 두 번에 걸쳐 대통령이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반복해서 지적했다. 한마디로 총선이든 대선이든 지방의회선거든 선거철에 즈음해 대통령이 야당을 비판하면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엄청난 문제를 지니는 논리다. 왜냐하면 동일한 논리를 따른다면, 대통령은 야당을 비판해서도 안 되지만, 여당을 지지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타당에 대한 비판'이 정치적이라면 '자당에 대한 지지'도 정치적이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자신이 속한 당의 정책을 옹호할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셈이다. 이는 자칫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다가 대통령의 '정책적 무책임' 내지 '정부정책의 번지상실'의 상황을 조장하는 것일 수 있다. 분명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대한 규정은 새롭게 포괄적으로 재조정되고 보다 엄밀하게 재정의돼야 한다.
다음으로 지난 번 선관위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전선거운동이 아니다"라고 판단했으나 이번에는 "잠재적으로 결정을 유보한다"고 했고, 이는 "만일 한 번 더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사전선거운동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선관위의 태도에는 월권과 위선이 담겨 있다. 선관위의 임무라면 대통령이든 누구든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적인 행동에 대해 그것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법리에 비추어 해석하고 판단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과 판단은 누군가 100번 같은 일을 되풀이해도 100번 모두 개별적으로 해석과 판단을 해야 한다. 같은 말도 한 번하면 사전 선거운동이 '아닌데' 두 번째 하면 사전선거운동이 '될 수도 있고' 세 번하면 사전선거운동이 '되는' 것인가?
선관위의 이날 발언을 다시 해석하면, '지난번에도 노 대통령의 행동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되는 일이었으나 우리가 초범이라 봐준 것이었을 뿐이며, 이번에 다시 큰 마음 먹고 한 번 더 봐준다. 그러나 다음에 또 그러면 그땐 가만히 안 둔다'는 식으로 느껴진다. 이런 속내를 지니고 있었다면, 결국 지난번에 선관위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사전선거운동이 아니라고 발언한 것은 이미 거짓말을 한 셈이다.
노대통령의 발언은 지난번에 비해 강도가 줄어들었으나 선관위의 판단은 내용의 수준과 무관하게 발언이 되풀이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오히려 강도가 높아졌다. 이는 이미 대통령을 범죄자 취급하는 태도이며, 객관적인 법리의 해석과 판단을 하는 기관이 아니라 스스로 지극히 정치적인 판단과 행위를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선관위는 자신의 권한과 해석의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정치화보다 선관위의 정치화가 더 우려스럽다"
필자는 1997년 무렵에 아시아의 한 개발도상국의 대학에서 잠시 교편을 잡은 경험이 있다. 당시 우리는 김영삼 정권의 말기에 김현철 비리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상황이었다. 김현철 씨가 끝내 구속이 되었다는 외신을 들은 그 대학의 한 교수는 필자를 찾아와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하였다. 그는 "최고권력자의 아들을 구속하다니! 너희 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구나!"라고 덧붙였다. 필자와 교수휴게실에서 만날 때마다 늘 자신의 나라의 썩고 무능한 정권의 행태에 대해 한숨과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그러나 조용히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개탄하던 인물이었다.
대통령이 누가 되었든지 분명 우리의 역사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던 대통령을 제재하고 견제하는 제도가 숨을 쉬게 되었다 것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일이다. 대통령이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독재시대였다면 꿈도 못 꿨을 제재가 가해지는 광경을 보다 보면 정말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성장했구나"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이른바 체육관선거를 통해 선거의 절차가 형식적이었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일개' 선관위가 '감히' 대통령의 권한을 규제하는 발언을 정식으로 제출하고, 그것이 강한 정치적 성격을 지니게 되는 개명천지가 오다니! 한마디로 감개무량이 아닐 수 없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부러워할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제재의 논리는 더 근본적인 법리와의 모순이 없어야 하며 보다 더 심도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무엇보다도 일관성과 더불어 자기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어야 한다. 어쩌다 우리의 선관위기 이렇게까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고 여야의 정쟁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는지 흥미롭기 그지없지만, 그 정치적인 분위기에 휩쓸려서 엄밀해야 할 법리와 자신의 권한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행여 내부적으로 정치적인 흥정을 하는 식의 판단을 한다면, 이는 자칫 법의 안정성과 헌법기관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위태롭게 할 여지가 있다. 대통령의 정치화보다 선관위의 정치화가 더 우려스러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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