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농업·서비스 협상은 몰라도 자동차·섬유 협상만큼은 한국이 잘했다고?…공개된 협정문 보니, 이 분야의 협상결과마저 참혹한 수준이다!"
300개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한미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와 국회 '한미FTA 졸속협상 반대 비상시국회의'는 8일 오전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한미FTA 자동차·섬유 분야 평가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4월초 타결된 한미 FTA 협상에 대해 이같은 문제점을 제기했다.
현재 자동차와 섬유 등 제조업은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국이 거둘 실익이 가장 많은 분야인 것처럼 선전되고 있다. 우리의 주력상품인 자동차와 섬유제품에 붙는 미국의 관세가 없어지면, 우리 제조업체들의 대미수출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이 정부의 선전 내용이다.
실제로 이 분야의 협상은 한국 측이 한국의 자동차 및 섬유 관련 기술, 표준, 제도 등 이른바 비관세장벽에 관한 협상에서 가능한 한 미국 측 요구들을 수용하고, 미국 측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 분야의 관세를 조기 철폐해주는 방식으로 '딜'이 이뤄졌다.
하지만 6월 말 공개된 협정문을 펼쳐놓고 보니, 그 협상결과는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참혹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범국본과 시국회의는 "관세인하 효과는 미미한 반면 비관세장벽은 우리가 완전히 밑진 협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동차엔 新독소조항까지…섬유도 불평등하긴 마찬가지
자동차 분야의 협상결과와 관련해, 이들은 "정부는 미국 측이 자동차 관세 2.5%를 철폐하기로 했다며 생색내지만, 한국 측도 8%나 되는 자동차 관세를 철폐하기로 해 한국 측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게다가, 현대차, 기아차 등 완성차업체들은 이미 북미 현지에서 생산을 하고 있거나, 2~3년 내에 현지 공장을 가동하게 돼 있는 상황에서 미국 측 관세철폐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자동차 특별 분쟁해결절차인 스냅백(snap-back. 자동차 관련 협정 위반 시 FTA 특혜관세 적용을 없던 일로 하는 것)의 도입 △자동차작업반의 설치로 인한, 한국의 기술표준 독립성 저해 △한국의 자동차세제 개편 △ 한국의 자동차 관련 환경기준의 후퇴 △수입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개선할 의무 부과 등 비관세장벽 협상에서는 한국 측이 일방적으로 양보만 했다고 비판했다.
이 가운데 스냅백은 미국 내에서도 '한미 FTA 최대의 전리품'으로 꼽히며, 미 자동차 업계의 환영을 받고 있는 '신(新)독소조항'이다.
섬유 분야의 협상결과와 관련해서, 이들은 "정부는 섬유제품의 대미수출이 폭발적으로 증대해 현재의 2배 수준으로 흑자를 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면서 "섬유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의 도입과 엄격한 얀포워드(Yarn-forward, 원산 기준의 원산지 기준) 규정 등으로 인해 정부가 과잉 홍보하는 '섬유 효과'가 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한국 측이 얀포워드 규정의 예외품목을 몇 개 받아내겠다고 △소재지, 인적사항, 관련기술, 기계종류 등 국내 섬유업체의 영업비밀을 미국에 제공하기로 한 점 △국내 섬유업체에 대한 미국 조사기관의 불시 조사를 허용하기로 한 점 △우회수출방지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기로 한 점, 심지어는 섬유 협상과 관계없는 △유전자조작생물(GMO)의 검역기준을 완화하기로 한 점 등을 '불평등 협상'의 증거로 꼽았다.
정부가 '가장 잘 했다'는 협상 분야가 이 지경이라면 다른 제조업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범국본과 시국회의는 "심지어 전기전자나 기계, 철강, 석유화학 등 다른 제조업 분야에서는 실익이 없거나 오히려 피해가 예상되기도 한다"면서 "전자계측기(관세율 8%), 레이저기기(8%)에 대한 한국 측 관세가 즉시 철폐되면 미국산 제품의 수입이 대폭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박근태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위원장,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 백일 울산과학대 유통경영학과 교수, 임영국 화학섬유연맹 사무처장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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